# 고위 공무원 퇴직후 돈 더벌어

[Cover Story] 돈 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 양산하는 공직사회
법조인과 고위직 공무원들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물러나서 돈을 더 버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 월급에 비해 로펌이나 기업에서 주는 월급이 훨씬 많고,한 전 청장 사례처럼 아예 민간인 신분을 이용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지난 1월 전관예우 논란으로 감사원장 후보자를 사퇴한 정동기 전 대검찰청 차장은 2007년 검찰에서 물러나 로펌으로 영입돼 한 달에 1억여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사 월급이 많아야 600만~700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5배가량 오른 셈이다.

대법관의 업무가 고되다는 얘기가 많지만,막상 대법관 숫자를 늘리자고 하면 대법원이 펄쩍 뛰는 이유도 전관예우에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숫자가 늘어나면 전관의 희소성도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퇴직 1년 안에 60억원을 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거의 '도깨비 방망이' 수준이다. 일반 변호사가 맡으면 대법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사건을,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맡으면 어쨌든 성의있게 본다는 이유로 고객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간다.

이처럼 전관예우가 만연해 있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법률이나 각종 규정상으로 이를 막을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이 퇴직 전 3년간의 직무와 관련된 업체에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저축은행 불법대출 사태에서 밝혀졌듯 금융감독원은 임직원들이 취업제한 규정을 피해 관련 기업으로 옮길 수 있도록 '꼼수'를 썼다.

정년을 3년쯤 앞두고 기업 업무와 별로 상관없는 인력개발실이나 소비자보호센터,총무국 등에 보내 '보직 세탁'을 해줬다.

지난해 퇴직자 19명 중 11명이 이런 과정을 거쳐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부산저축은행 등 금융권 감사로 취업했다.

이들은 은행을 감시한 게 아니라 맘껏 비리를 저지르도록 금감원 감시를 피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부산저축은행에서는 조(兆) 단위 불법대출과 분식회계(재무상황이 건전한 것처럼 재무제표를 가짜로 꾸미는 것)가 자행됐다.

전관예우가 '전관범죄'로 된 셈이다.

# 전관예우 금지법 시행

전관예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정부와 국회도 뒤늦게 대응방안을 내놓고 있다.

판사나 검사가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되면 1년 동안은 퇴임 전 1년간 근무했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 변호사법이 17일부터 시행됐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전체 직원이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소속 기관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한상률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국세청은 퇴직 공무원을 위해 고문직 등을 알선하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전면 금지키로 했다.

금감원도 금융회사에 임직원을 감사로 추천해 왔던 관행을 철폐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전관예우가 근절될지는 미지수다.

법조인 전관예우만 해도 법으로 금지했지만 이를 어겨도 형사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변호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법을 위반한 변호사를 자체 징계하는 정도다.

그나마 변협이 변호사를 스스로 징계하는 사례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공무원들의 인식도 문제다. 전관예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거의 없다.

오랜 세월 박봉(?)에도 나라를 위해 봉직했는데 퇴직 후 그 정도 특혜도 누리지 못한다면 억울하다는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법으로 명확히 처벌조항이나 강력한 제재수단을 마련해 전관예우가 범죄나 그와 다를 바 없는 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유선진당은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전관예우 금지를 위반할 경우 처벌규정이 없어 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관예우 금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전관예우 척결을 위해 공직자의 퇴임 후 활동이 현직 시절 관여한 업무와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는 경우 모두 포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임도원 한국경제신문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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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전관예우 금지 위헌시비 가능성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전관예우 금지법'에 대해 위헌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헌법에서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나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헌법은 최상위법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하면 해당 하위법은 무효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1989년 전관 변호사들의 최종 근무지에서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는 변호사법 조항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이 조항은 판사와 검사가 변호사 개업신고 전 2년 이내의 근무지가 속하는 구역 안에서는 퇴직한 날로부터 3년 동안 개업할 수 없다는 게 골자였다.

이에 대해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과,개업은 허용하되 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개정안은 다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정준길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본인이 근무했던 지역의 법원,검찰의 해당 심급 사건만 선임을 못하는 것이어서 직업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조항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 다른 법에도 있다. 여기서도 위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주로 첨단기술 분야에 종사했던 근로자가 퇴직 후 일정기간 경쟁업체에 취직하지 못하도록 약정서를 받는다.

법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 연구개발의 성과가 직원의 이직에 의해 다른 경쟁업체에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건전한 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다만 통상 약정서에서 이직을 제한할 수 있는 기간은 1년 정도만을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