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시간 非일관성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뇌

너무 자주 로테를 방문하지 않기로 나는 몇 번이나 결심하였네.

그러나 누가 그것을 지킬 수 있겠는가.

매일매일 나는 그 유혹에 지고 마네.

그러면서도 내일은 꼭 가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하지.

그러나 내일이 되면 또 안 가려야 안 갈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네.

그것이 아차 잘못이었구나 생각됐을 때는 벌써 로테의 곁에 와 있단 말이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봄이 한창 무르익은 5월의 어느 날 발하임(Wahlheim) 마을에서 운명의 여인 로테(Lotte)를 만나게 된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난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지만 로테는 이미 알베르트(Albert)란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였다.

베르테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로테의 천진난만하고 솔직한 성격에 끌려 매일 그녀를 찾아간다.

베르테르에게 로테를 만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약혼자가 있는 그녀와의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베르테르의 고뇌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베르테르의 이러한 딜레마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간비일관성 문제와 연결이 된다.

시간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이란 어느 시점에서는 최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미래에는 최적이 아닌 현상을 말한다.

하루라는 시간만을 놓고 볼 때 베르테르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로테를 만나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결코 최적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여행 중이었던 알베르트가 돌아온 후 베르테르는 공사관 비서를 자청해 발하임 마을을 떠나지만 이미 깊어진 로테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서 지워내지 못해 고통받는다.

흡연자들의 시간비일관성

시간비일관성 문제는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흡연자들은 매일매일 시간비일관성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흡연자들에게 최적의 선택은 하루 동안 흡연을 즐기고 다음날부터는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최적의 선택은 마찬가지로 흡연을 즐기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선택이 반복되면서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을 수 없게 되고,결국에는 건강을 해치게 된다.

지난해 4월 인도양 해역에서는 우리나라 유조선 삼호드림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되는 일이 발생했었다.

정부는 곧바로 청해부대 소속 충무공 이순신함을 급파했지만 해적들이 인질을 쏘겠다고 위협하는 바람에 철수했고,삼호드림호 선원들은 950만달러의 몸값을 지불하고 나서야 석방이 될 수 있었다.

선원들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해적들에게 몸값을 지불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거셌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피랍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협상에 나서 무고한 국민을 구하고,다음부터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그 시점에서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해서 몸값을 지불하면 민간 선박을 노리는 해적들은 더욱 늘어날 뿐이다.

이스라엘이나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납치범들과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당장에는 희생이 뒤따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잠재적 피해자를 줄인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올해 1월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을 때 우리 정부는 그동안 피랍사태를 돈으로 해결하던 관행을 깨고 군사작전을 통해 선원들을 구출했는데,이 같은 강경대응은 우리 선박을 노리는 해적들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최선이 아닌 통화 확장 정책

시간비일관성 문제는 경제정책에서도 나타난다.

경기가 침체돼 실업이 크게 증가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중앙은행은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것이 항상 최선의 정책이 되지는 않는다.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면 총수요가 증가하고 실업은 감소한다.

실업문제를 비교적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은 정책담당자에게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정책담당자가 매번 이러한 유혹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중앙은행이 경기침체 때마다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이를 예상하게 되고,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진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물가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쓰지 않을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오른다.

경제학의 자연실업률 이론에 따르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해도 장기적으로 실업률은 결국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므로 중앙은행의 섣부른 대처는 인플레이션을 키우는 결과만 불러온다.

단기에는 최적으로 보이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장기에는 최적의 정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200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키들랜드(Finn E Kydland)와 프레스콧(Edward C Prescott)은 시간비일관성 문제를 근거로 들어 중앙은행이 경기침체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재량(discretion) 정책을 펴는 것보다는 준칙(rule),즉 특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량보다는 준칙이 바람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돌아오면 베르테르가 발하임을 떠난 사이 알베르트와 로테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훗날 귀국한 베르테르는 큰 상심에 빠져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비일관성의 함정이 비극적 결말을 불러온 것이다.

권총 자살이란 충격적 결말은 수많은 모방 자살자들을 만들어내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였다.

청년 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애독자였던 나폴레옹도 황제가 된 후 괴테를 직접 만나 결말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괴테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폐하께서 소설에 결말이 있는 것을 좋아하신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경제용어 풀이

시간 비일관성 (time inconsistency)

어느 시점에서는 최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미래에는 최적이 아닌 현상을 말한다. 정책에 있어서의 시간비일관성 문제란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최적 대응으로 보이는 정책이 장기에는 최적이 되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