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수장된 '테러의 상징'…빈 라덴 없는 세상은 평화로울까
미국이 고작 한 사람을 잡으려고 10년 동안 각국을 헤집고 다녔다.

돈은 430조원(4000억원)이나 들였다. 그의 목 앞엔 2700만달러라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2001년 미국에서 9 · 11 테러를 주도했던 오사마 빈 라덴 얘기다.

9 · 11 테러 10주년이 된 지난 5월2일 그가 사살됐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테러의 상징'은 바다에 수장됐다.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인 빈 라덴은 국제 사회에서 응징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10년 전 알카에다는 미국 비행기를 납치해 뉴욕 한복판 쌍둥이 건물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펜타곤)를 그대로 들이받는 자살 테러를 저질렀다.

약 3000명의 미국인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과 알카에다는 1990년대부터 질긴 악연을 이어왔다.

빈 라덴의 죽음이 미국과 알카에다의 악연을 매듭지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국제사회와 시장은 빈 라덴의 사망 소식에 환영의 목소리를 보냈지만 보복 테러를 대비해야 할 판이다.

⊙ 미국과 빈 라덴의 20년 '악연'

알카에다는 아랍어로 '기초' 또는 '군사기지'를 뜻한다.

사실 알카에다는 처음부터 반미 단체는 아니었다.

뿌리는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197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빈 라덴은 이 전쟁에 무자헤딘(이슬람 위용군)으로 참여했고 이후 훈련된 위용군들을 모아 알카에다를 만들었다.

목표는 이슬람 국가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태생적으론 냉전시기 반(反)소련 단체였던 것이다.

알카에다가 반미로 돌아선 것은 걸프전쟁 때문이다.

배경은 이렇다. 1990년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가 원유를 과잉 공급해 유가를 하락시켜 이라크의 경제가 크게 악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미국은 연합군을 결성해 1991년 이라크를 공격했다.

빈 라덴은 이를 이슬람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빈 라덴의 자금과 군사력으로 알카에다는 점점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알카에다 활동의 정점은 9 · 11 테러였다. 테러 직후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했다.

아프간 측이 빈 라덴의 신변을 보호하면서 미국에 인도하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군은 계속 빈 라덴을 추적했고 빈 라덴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영상 메시지로 미국의 포위망을 뚫으며 속을 긁었다.

⊙ "평화 세력이 승리했다"

국제사회 지도자들은 축하 및 우려의 메시지를 동시에 보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빈 라덴이 더 이상 세계를 상대로 테러 작전을 전개할 수 없게 된 것은 엄청난 성과"라면서도 "빈 라덴의 죽음으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극단적 테러분자들의 위협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평화 세력이 성공을 거뒀다"며 "빈 라덴은 무고한 수천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전 지구적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희생자들에게는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며 "빈 라덴은 증오 이데올로기의 주창자이자 이슬람 국가들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 조직의 지도자였다"고 지적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연방정부 총리는 "알카에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에다노 유키오 일본 관방장관도 "테러위협이 여전히 심각해 알카에다의 활동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증시가 상승하고 유가가 단기 급락하는 등 시장에서도 '반짝 효과'를 냈다.

2일 닛케이평균주가는 9964엔대에서 거래를 시작해 보합권에 머물다 9945.24엔으로 오전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점심시간을 앞둔 무렵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낮 12시30분 오후 장이 열리자마자 주가는 72엔 급등한 1만17.47엔까지 치솟았다.

이후 잠시 조정을 받았지만 1만4.20엔에 마감해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11일 이후 처음으로 1만엔대를 회복했다.

런던 국제석유시장(ICE)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6월물은 장중 3.35%(4.22달러) 급락한 배럴당 121.67달러까지 밀렸다.

⊙ 알카에다 흔들리지 않을 듯

빈 라덴 사살로 중동지역의 원유 공급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한 덕분이다.

빈 라덴이 사살됐다고 알카에다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빈 라덴 활동이 활발하던 2000년대 초반 때만 해도 알카에다는 중앙집중적 단일 지휘체계로 운영됐지만 이후 미군의 소탕 작전이 진행되면서 점조직 형식으로 분화됐기 때문이다.

알카에다는 현재 40여개국에서 독립채산제 형식으로 운영되며 현지 실정에 따라 전술을 개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아직 건재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빈 라덴이 알카에다의 '몸'이라면 이집트 카이로의 외과 의사 출신인 알자와히리는 '두뇌'로 불려왔다.

알카에다는 1990년대 말부터 생화학 무기를 사모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알카에다의 자금줄도 건재하다.

알카에다의 자금 규모는 50억달러(5조3000억원)에 이르고 조달 방식도 다양하다.

독일 주요 일간지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알카에다 자금원 중 빈 라덴 개인자산은 10%가량으로 추산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프간에서의 마약을 밀거래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전체 자금원의 절반에 이른다.

강유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