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만국 공용어의 외부 효과와 네트워크 효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얼마나 편할까?','그럴 수만 있다면 영어 공부 안 해도 되고 얼마나 편할까?'

이런 상상은 학창 시절 외국어 공부를 하기 싫을 때,영어 단어 외우기가 귀찮을 때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함께 사용하는 만국 공용어를 단순히 공상만 하지 않고 직접 실천에 옮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유대계 안과의사인 자멘호프(L.L. Zamenhof)이다.

현실화 됐던 만국 공용어

자멘호프는 1870년부터 188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에스페란토(Esperanto)라 불리는 만국 공용어를 개발하였다.

에스페란토란 '희망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에스페란토가 상징하는 것은 초록별로서 초록색은 평화를 나타내며,별은 희망을 나타낸다.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에스페란티스토'라고 부른다.

만국 공용어를 개발하고 그 언어의 이름을 희망,평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어원에 기초하여 정했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그는 모든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고 이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길 기대했으며,그로 인해 지역 간의 갈등과 분쟁이 없어지고,상호간의 이해와 신뢰가 형성되길 바랐다.

아무리 만국 공용어라 할지라도 과연 언어 하나가 분쟁과 지역 간의 갈등을 없애고,더 나아가 세계 평화까지 가져올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일언어 문화갈등 없앨까

경제학적 시각으로는 외부효과를 통해서 만국 공용어의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

외부효과란 생산자나 소비자가 어떤 경제 행위를 수행할 때 해당 경제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게 이익이나 손해를 가져다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가나 벌칙을 받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외부효과는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손해를 가져다 주는지에 따라 다시 외부경제와 외부불경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이 독감 예방 접종을 맞는 것은 자신이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한 행동이지만,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독감에 걸릴 확률도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독감 예방을 위한 행위가 다른 사람의 독감 감염 확률을 낮추는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가져다 주었으므로 이는 외부 경제의 사례에 해당한다.

반면,개를 키우는 사람의 경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개를 키우는 것이지 이웃사람에게 피해를 주려고 개를 키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가 시끄럽게 짖어 이웃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피해를 줬다면,개를 키우는 행위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가져오는 외부 불경제의 사례에 해당한다.

자멘호프가 시도했던 만국 공용어 사용이 성공했다면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국 공용어인 에스페란토를 사용한다면 이는 자신들이 편리하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민족을 구분 짓는 주요한 수단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모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면 민족을 구분 짓는 커다란 기준 중에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민족주의 발로 아래서 수행되었던 전쟁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만약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이 모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서로를 구분 짓기 어려워졌다면 세 나라는 지금보다 휠씬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만국 공용어가 통용되어 보다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경우 학문적 교류 역시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외국에서 발간된 서적이 불과 한두 달 뒤에 번역되어 출간되기 일쑤지만,과거의 경우 유럽에서 발간된 책이 우리 말로 전달되기까지는 수개월 내지 수년이 걸린 경우도 허다하다.

즉,언어적 장벽으로 인해서 각 나라의 학문적 성과를 빠르게 이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민족 구분 애매해질수도

물론 언어학자들은 다양한 언어가 공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점 또한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해주고 있지만,만국 공용어를 사용하는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만국 공용어의 경우 '네트워크 효과'까지 더해져 인류 번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란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상품의 사용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파일을 저장하고 상호 교류할 경우 각각 다른 형식으로 파일을 저장하였을 때보다 이용의 편리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 같은 방식으로 파일을 저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형식으로 파일을 저장하였을 때 얻는 효용이 커지게 된다.

언어 파워는 인구에 비례

만국 공용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언어의 사용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우리가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게 되는 이유도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기 때문에 영어를 배웠을 때 얻는 효용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자멘호프 박사가 1887년에 만국 공용어를 발표하면서 그 언어의 이름을 '희망자에 의해 제안된 국제어'라는 명칭의 에스페란토라고 이름 붙인 것도,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만국 공용어가 다양한 긍정적 외부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멘호프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바는 의사소통의 원활화가 아닌 만국공용어 사용으로 인한 외부효과에 있지 않았을까.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