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시네마 천국'과 한계적 의사결정
몇십 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은 어떤 모습일까?

열정을 쏟는 대상이 동일하고,서로를 깊이 이해한다면 나이는 친구가 됨에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1990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은 영화를 매개로 한 어린 소년과 중년 영사기사의 우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인공 토토는 영화에 푹 빠져있는 소년이다.

토토는 영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마을의 영화관 '시네마 천국'의 영사실까지 찾아가지만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그런 토토를 꾸짖는다.

알프레도는 순박하고 인정이 많은 인물이지만 매일 좁은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영사기사란 직업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토토의 영사실 출입을 막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토토는 결국 알프레도와 친구가 되어 그에게 영사기술을 배우게 된다.

토토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를 잃었고,알프레도는 슬하에 자식이 없다. 둘은 서로에게 부재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세대 초월한 감동적 우정

알프레도는 어느 날 영사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력을 잃게 되고,토토는 그의 뒤를 이어 영사기사가 된다.

화재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토토는 알프레도의 눈 역할을 대신하고,알프레도는 인생의 상담자로서 토토를 챙긴다.

청년으로 성장한 토토는 마을 은행 간부의 딸 엘레나를 본 후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짝사랑으로 괴로워하는 토토를 위해 알프레도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먼 옛날 국왕이 연회를 열었는데,연회에서 공주를 보게 된 국왕의 호위병사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연회 이후 사랑의 열병에 끙끙 앓던 병사는 마침내 공주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게 되고,공주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고백한다.

병사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공주는 발코니 밑에서 100일 밤낮을 기다린다면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대답한다.

병사는 바로 발코니 밑으로 달려가 기다림의 나날을 시작하지만 99일째 밤 의자를 들고 떠나 버린다.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거절당한 토토는 이 이야기의 병사처럼 1954년 4월부터 12월까지 매일 일이 끝난 후 엘레나의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비바람조차도 토토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토토의 지극 정성에 감동한 엘레나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엘레나 아버지의 반대로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엘레나와 결별한 후 토토는 비로소 병사 이야기의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병사가 하루만 더 기다리면 공주가 약속한 시일이 되지만,일개 병사와 공주의 신분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에 둘의 결혼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병사는 공주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어떤 일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의사결정이지만 이것이 우리가 내리는 의사결정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일을 '얼마나' 할지 결정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내리는 의사결정 중 상당수는 '얼마나'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삶은 의사결정의 연속

그렇다면 이러한 의사결정에 답을 구해주는 경제원리는 무엇일까?

경제학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합리적 선택의 기준으로 한계원리를 제시한다.

한계란 말이 아직 생소하게 느껴지는 독자들도 많겠지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다면 한계가 앞에 붙는 용어를 수도 없이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한계원리는 그만큼 중요하다.

한계(marginal)는 간단히 말해 어떠한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씩'이란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독자들을 위해 추가 설명을 하면,한계적 변화는 한 단위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시험공부를 한 시간 더 하거나 상품을 한 개 더 생산하는 것 등이 한계적 변화인 것이다.

한계적 변화로 얻게 되는 편익은 한계편익(marginal benefit)이라 하고,발생하는 비용은 한계비용(marginal cost)이라고 한다.

한계원리(marginal principle)는 추가적 활동에 따른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을 따졌을 때,한계편익이 한계비용보다 크면 그 활동을 계속하라는 것을 뜻한다.

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경제학에서는 왜 한계원리를 강조할까?

한계원리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미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어떠한 경계(margin)에서 눈앞에 직면한 문제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어떤 활동의 한계편익이 한계비용을 초과한다면 그 활동을 계속해야 하며,한계비용이 한계편익을 초과하면 그 활동은 중단돼야 한다. ]

이것이 한계원리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이다.

한계란 조금씩 변하는 것

'시네마 천국'의 병사 이야기에서 병사는 공주를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상관없이 한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것은 큰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병사에게 있어 한계적 의사결정은 하루를 더 기다리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기다림의 나날이 길어짐에 따라 병사의 육체적 고통은 계속 증가했을 것인데,하루를 더 기다릴 때 늘어나는 병사의 고통은 한계비용으로 볼 수 있다.

한계비용은 날로 증가하지만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의 기쁨,즉 한계편익이 한계비용을 계속 초과했기 때문에 병사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참아내며 99일을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병사는 99일째 밤에 기다림을 포기한다.

병사가 99일째 밤에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의 기쁨과 고통이 아니라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에 대한 결과이다.

하루를 더 기다렸을 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이다.

한계비용이 한계편익을 초과하는 순간 병사는 기다림을 포기한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시네마 천국'의 병사 이야기를 한계원리로 풀어보았으나 사랑이란 감정은 분명 경제원리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

경제학에서의 고전적 예를 약간 변형해 한계원리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여객선 타이타닉이 대서양을 한번 횡단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약 20만 파운드이고,총비용을 수용 가능 승객수로 나눈 평균비용이 60파운드라고 가정해보자. 타이타닉이 객실을 몇 개 비운 채로 출항을 할 상황에 처했는데,가난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최대 10파운드를 내고 타이타닉에 탑승할 용의가 있다면 타이타닉 호는 디카프리오를 탑승시켜야 할까?

평균비용이 60파운드이기 때문에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객실을 비워둔 채 출항하는 것보다는 10파운드를 받고 디카프리오를 탑승시키는 것이 타이타닉에는 이득이다. 승객 한 명을 더 탑승시키기 위해 객실을 늘려야 하는 상황도 아니므로 추가적 비용은 식사 제공 비용 정도밖에 없다.

한계수입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므로 그를 탑승시키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이것을 기업의 생산에 적용하면 기업은 한계수입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는 이상 계속 생산을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한계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계 개념의 개발은 경제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의 고전학파 경제학은 물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이지만 가격이 아주 싸고,다이아몬드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지만 가격이 매우 비싼 이율배반적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위기에 처했다.

가치의 역설이라 불린 고전학파 경제학의 풀리지 않는 과제는 1870년대에 한계의 개념이 경제학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고,상품의 가격이 상품 한 단위를 더 소비할 때 늘어나는 만족,즉 한계효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결이 되었다.

한계이론의 등장은 혁명이란 단어를 붙여 보통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이라 부르는데 한계이론이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면 혁명 이상의 단어를 붙여도 전혀 아깝지 않다.

앞으로 한계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면 경제학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