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시장경제 시스템을 최초로 구축한 로마인들
오늘날과 같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발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제도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전개하게 만들어준 가장 기초적인 원동력이 된 사유재산제도라든가,값싼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공급해 주는 회사를 손쉽게 설립할 수 있게 만들어준 주식회사제도 등이 그런 예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련의 제도들이 근현대에 와서야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활용되고 있는 수많은 제도는 이미 로마인들이 도입하여 사용한 것들이 많다.

로마제국은 오늘날의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완벽한 시장경제제도를 갖춘 나라였으며,로마인들 역시 오늘날 그 어떤 CEO 못지않게 유럽 대륙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수행하였다.

로마 역시 오늘날 영국 런던이나 미국 뉴욕과 같은 금융 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렇다면 왜 로마인들은 이처럼 시장경제 원리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다양한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게 되었을까? 그 출발선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제도에 있다.

로마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중해 지역 전체를 통일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지중해 지역 전체를 장악한 것은 오늘날로 치면 전 세계를 지배한 것과 같이 취급되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으로부터 많은 노예와 전리품을 얻게 되었는데,이 전리품과 노예를 어떻게 나누어가져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또한 새로이 점령한 지역은 누가 지배를 해야 하는지,그리고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과실이나 곡식 등은 누구의 소유여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유재산은 라틴어로 '프리바투스'라고 부른다. 이 프리바투스는 '나누었다'와 '약탈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역시 사유재산 제도가 전쟁으로 인해 얻은 전리품을 나누어가지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마인들이 시장경제제도를 정비해야 할 이유는 급속히 증가하는 교역량에도 기인한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여러 지역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들을 거점으로 하여 많은 특산물을 로마 시민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도로망을 구축하였다.

라인강에서부터 도나우강까지,게르만 민족부터 켈트 민족까지 모든 지역에서 로마인들의 풍족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량과 교역량은 시장경제제도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제반 인프라 구축을 더 필요하게 만들었다.

먼저 로마인은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률을 재정한다.

오늘날에도 원활한 교역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법률적으로 그러한 경제행위를 보호받을 방법이 있기 때문인데,로마인들 역시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로마법에는 자유로운 자산 이전을 보장하고,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초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로마법은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여러 다른 제국들의 법률 재정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되었다.

로마인들은 주식회사도 설립하였다. 로마에는 퍼블리카니(Publicani)라는 조직이 있었는데,이 조직은 현재의 주식회사처럼 주식에 해당하는 파르테스를 통해서 소유권을 다수의 사람이 분산하여 보유하고 있는 법인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임원을 선임하여 조직을 경영하는 역할을 위임하였으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이를 파르테스를 보유한 사람들에게 공시하는 오늘날로 치면 주주총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주식은 우선주,보통주,후배주 등 그 권리와 의무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분류되어 거래되고 있다. 이는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부자들이 분배받는 금액과 일반인이 분배받는 금액을 나누어 지급한 기록이 있으며,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권리를 서로 주고 받으며 거래한 흔적도 남아 있다.

이는 오늘날 주식시장에서 개별 주주들이 자신들의 주식을 사고 파는 것과 동일한 모습이다.

로마인들은 현대의 화폐제도와도 비견할 만큼 정밀한 화폐제도를 사용하였다.

당시 로마인들이 썼던 화폐를 '디나르'라고 하는데 지금도 유고슬라비아에서는 화폐 단위를 '디나르'라고 부른다.

이것은 로마인들이 갖춘 화폐의 개념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수되어 오고 있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신용거래의 개념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환어음을 거래한 바 있다.

선박 등 재산의 안전을 위해 원시적인 형태의 보험의 개념을 사용한 흔적도 남아 있으며,외환 거래가 최초로 등장한 시기 역시 로마시대이다.

당시의 문학 작품에서도 부자와 대부업자,상인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경매라든가 투기를 통해서 돈을 번 사람들을 악덕 업자로 묘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흔적들은 당시 로마시대에 시장경제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고,일상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엿볼 수 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에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도 로마와 함께 잠시 성장을 멈추게 된다.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중세의 경제 단위는 봉건제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봉건제 아래서는 로마시대와 같은 활발한 상거래와 경제 행위들이 전개되기 힘든 특성이 있다.

영주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 단위로 경제 활동이 제한되었으며,실질적으로 영지 내부의 거래만을 통해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여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제 활동은 위축되게 된다.

또한 중세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기독교는 물건을 본연의 가치보다 비싸게 판매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죄악시 여기게 되었다.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공동체와 내 형제 자매에 손해를 입히는 행위라고 여긴 것이다.

중세라는 시대로 인해 로마인들이 자본주의의 초석을 다졌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근 · 현대에 들어서 전개된 시장경제 시스템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최초의 주식회사는 동인도 회사로 기억하고 있으며,경제학의 아버지는 애덤 스미스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경제 금융 시스템을 도입한 공훈은 아마 로마인들에게 돌아가야 합당할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