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든 조세 피난처… '은행 비밀주의'의 종언?

역외탈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역외탈세 등
☞ 흔히 세금은 '필요악(必要惡)'이라고한다.

오죽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인간에겐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금이다"라고 했을까.

세상에서 세금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심리는 종종 K씨처럼 탈세의 유혹을 받게 된다.

K씨가 탈세에 사용한 수법은 세금의 천국으로 불리는 조세피난처(tax haven)를 이용한 역외탈세(offshore tax evasion)다.

'역외(域外)'란 '나라 밖'이란 뜻이다.

조세피난처는 세금이 전혀 없거나 세율이 극히 낮은 국가를 말한다.

회사 설립이나 외환 거래에 대한 규제도 거의 없다. 따라서 세금을 피하려는 다국적 기업이나 돈많은 개인들 또는 검은 돈을 숨기거나 자금세탁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조세피난처는 작은 섬나라가 많은데 중남미 카리브해의 케이먼군도와 바하마,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인도양의 모리셔스,지중해의 몰타와 모나코,지브롤터,그리고 유럽 대륙의 소국 리히텐슈타인 등이 대표적이다.

인구가 적은 이들 나라는 대신 회사 설립에 따른 수수료나 금융업,관광업 등의 수입으로 먹고 산다.

조세피난처가 이처럼 세금 천국이 된 것은 국내법상 제한 등을 이유로 외국 과세당국의 자국 은행 정보 접근을 거부하고,외국과 조세정보를 교환하지 않아 세금을 부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처럼 조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불투명한 국가들을 '블랙 리스트'에 올려 발표한다.

현재 OECD가 분류한 조세피난처는 모두 38개국이며 여기에 은닉된 자금은 5조~7조달러(2007년 기준)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역외탈세는 조세피난처에 서류상의 유령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데서 출발한다.

K씨의 사례처럼 실제론 국내에서 사는 내국인이 소득을 올렸는데도 세금을 안내기 위해 비거주자(또는 외국단체)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모든 거래는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가공의 회사를 통해 이뤄지며,이같은 변칙거래로 소득이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다.

미국의 경우 이로 인한 조세수입(세수) 손실이 연간 1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역외탈세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자 OECD는 '투명성과 조세정보 교환에 관한 기준'을 마련, 각국에 이 기준을 지키도록 요청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조세피난처로 분류해 발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 기준에 따라 조세정보교환협정(TIEA)을 체결,탈세를 막고 있다.

2009년말 현재 체결된 TIEA는 195건에 이른다. 협정을 맺으면 협약 체결국은 상대국에 조세 문제에 관한 모든 정보교환을 요청할 수 있으며,요청받은 국가는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없다.

제공되는 정보는 이자,배당,고객 정보,회사의 소유권 현황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선 역외탈세에 대한 단호한 척결의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부유층의 비밀금고로 명성이 나있던 UBS 등 스위스 은행들도 결국 고객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백기를 들었으며,하늘이 무너져도 고객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은행 비밀주의(bank secrecy)'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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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험한 선진국 가는길… 경제 체질 바꿔야

'중진국의 함정'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역외탈세 등
☞아르헨티나브라질등남미의많은나라들은1970년만해도한국보다훨씬많은국민소득을 자랑했다.

1970년 브라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440달러로 한국(280달러)의두배수준이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국민 소득도 380달러로 한국보다 앞섰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2009년 기준 말레이시아는 6700달러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1만7000달러였다.

저소득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한 나라들은 많아도 선진국으로 성장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말레이시아,필리핀 등은 모두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딜레마에 직면했는데 이를 ‘중진국의 함정(middleincometrap)’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경우도 1인당 GDP가1978년 155달러에서 2010년에는 4000달러이상으로 늘었지만 급속한 성장은 소득격차 확대,상대적으로 취약한 내수,높은 환경비용 등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경제평론가인 마틴울프는 “중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향후 20~30년간 생산성 향상과 혁신면에서 근본적인 진전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미국의 모건스탠리가 경제사학자인 엥거스 메디슨의 자료를 활용해 분석해본 결과 20세기 40여개 나라들이 저소득국가에서 탈출해 중진국 수준의 경제성장까지는 이루었으나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는사실이 밝혀졌다.

세계은행(WB)도 수십년동안 남미와 중동의 많은 국가들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왜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경제규모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데 새 동력을 갖추기가 어려워서다.

저소득국가에선 싼임금을 바탕으로 투자를 확대하면 고도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인건비나 토지비용,물류비용 등이 올라 더이상 고도성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저임금에 기반을 둔 고성장이 둔화되는시점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서루이스의 이름을 따 ‘루이스 전환점(Lewisian turning point)’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세계 은행 은무엇보다 경제체질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먼저산업구조를저부가중심에서고부가 중심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에 달려있다’는‘맨큐의경제학’의 지적 처럼 생산성도 높여야 한다.

규제완화와 혁신(innovation)을 통해 투입되는 노동과 자본의 질을 높이는게 중요하다.

OECD는 지속가능한 성장에는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아래 매 년 각국이 필요한 구조 개혁 정책을 권고하는 ‘구조개혁 평가 보고서(Going for Growht)를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