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원 들어가는 대형 국책사업 공약후유증

매니페스토 운동 등 참여로 감시의 눈 부릅떠야

[Cover Story] 지키지도 못할 ' 空約 ' 너무 많아요!
"공약은 유권자에게 한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현실성이 없는 공약이라면 뒤늦게라도 포기해야 한다. "

선거 공약의 이행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이렇게 둘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유권자들이 공약을 믿고 투표한 만큼 공약대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반면 후자는 공약은 공약일 뿐 선거 후 사업타당성이 없다면 철회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 사회적 갈등 초래하는 공약들

최근 문제가 된 동남권 신공항이 대표적인 예다.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 김해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10조원 이상을 투입해야 하는 대형 국책사업.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등 여러 대선 후보자들은 영남 표를 겨냥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구와 경남이 지지하는 밀양과 부산이 밀고 있는 가덕도가 후보지 선정을 놓고 최근까지도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두 후보지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여 "두 곳 모두 투자비 대비 이익(경제성)이 1 이하여서 후보지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약을 철회했다.

공약을 안 지켰다는 비난이 해당 지역에서 쏟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놓은 수도 이전도 당선이후 문제가 된 공약 중 하나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 이전을 공약대로 밀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당선 이후 수도이전을 한 정권 차원에서 다뤄서는 안 된다는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수도이전 공약은 헌법재판소에 제소됐고 헌재는 위헌결정을 내렸다.

공약은 이처럼 실현 가능성을 놓고 극한 대립을 낳는다.

문제는 후보자들이 공약을 할 때 실현 가능성과 경제성을 따지느냐에 있다.

이런 잣대는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지방자치단체장 선거,학교 회장 선거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공약의 대상이 학교,지역,나라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특히 공약은 선거가 달아오를수록 봇물을 이룬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당선 만능주의 앞에 공약의 경제성,실현성 검토는 뒤로 밀리고 만다.

지방공항 건설은 그중 하나다.

지방공항 건설만큼 솔깃한 공약도 드물다.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국제공항,김포,제주,김해공항을 제외한 11개 지방공항이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하루 이용승객보다 공항 직원 수가 더 많은 곳도 있다.

또 활주로가 고추 말리는 마당으로 쓰이는 곳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선거에서 지역표를 얻기 위해 사업성 검토 없이 공약이 추진된 결과다.

지금처럼 도로가 뻥뻥 뚫리고 고속으로 달리는 KTX가 전국에 뻗어 있는 때에 공항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공직 후보자들이 KTX 변수를 고려해 사업 경제성을 따졌다면 막대한 재원이 낭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금은 지방공항 적자를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용인경전철도 마찬가지다.

이미 15개 역이 들어섰지만 수요예측을 잘못해 용인시가 개통을 못하고 있다.

하루평균 승객 수를 14만명으로 잡았으나 실수요는 3만명에 그쳐 개통 즉시 하루에 1억5000만원의 적자가 불가피하다.

적자액만큼 이 사업을 시작한 민간 컨소시엄에 보전해줘야 하지만 용인시는 능력이 없는 상태다.

공약을 위한 공약은 자원낭비와 물적 손질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통합하기보다 국가를 갈라놓고 계층을 융합시키기보다 계층을 더욱 적대시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선거는 국민을 통합할 사람을 뽑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동남권 신공항 공약은 결국 영남권 지자체 간 극한 대립을 불렀다.

◎ 공약이 지켜지려면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할 국민에 대한 약속'이 되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은 공약을 내거는 사람과 이 공약을 잘 판단해야 하는 유권자들이 모두 져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지킬 수 있는 공약을 하고 공약을 내건 뒤에는 반드시 지키려 애쓴다.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칼로스 알바레즈 시장 사건이 그런 사례였다.

알바레즈 시장은 경기침체기에 재산세를 13%나 인상했다가 주민소환 투표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주민 20만4000여 중 88%가 시장 파직에 찬성표를 던졌다.

알바레즈 시장이 주민들로부터 탄핵을 당한 건 잘못된 공약을 내세우고 이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민소환 시스템은 정치인들이 함부로 공약을 하지 못하는 견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약을 감시하려는 유권자들의 노력도 필수다.

정치적 선진화가 덜 된 나라에선 공직자와 유권자 수준은 비슷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엉터리 공약을 가려내지 못하는 유권자는 엉터리 공직자를 뽑게 돼 있다.

유권자들은 선거전이든 선거후든 공약을 검증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유권자 개인은 공약의 실현가능성이나 경제성을 따지기 힘들 수도 있다.

지역주의에 매몰돼 지역 공약을 많이 내놓는 후보자를 뽑을 가능성도 많다.

◎ 공약사업에 지자체도 비용 분담케 해야

이런 경우엔 검증단체에 가입하거나 해당 단체의 검 증결과를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들 단체가 벌이는 공약검증 운동 중 대표적인 것이 매니페스토 운동과 스마트 운동,포퓰리즘 검증운동이다.

매니페스토는 후보의 공약이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어원은 '증거' 또는 '증거물'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마니페스투(manifestus)이다.

이 말이 이탈리아에 들어가 마니페스토(manifesto)가 돼 '과거 행적을 설명하고,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같은 의미로 17세기 영어권 국가에 소개됐다.

언론에 가끔 나오는 스마트(SMART),셀프(SELF),파인(FINE) 등 3가지 평가지표가 매니페스토에 쓰인다.

운동단체들은 공약의 구체성(Specific),측정가능성(Measurable),달성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시간적 가능성(Timed) 등 스마트를 근거로 0~5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공개된 지표는 후보자들의 능력과 공약의 진실성을 대변한다.

셀프 지수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지속가능(Sustainability)한가,자치역량 강화(Empowerment)에 도움이 되는가,지역성(Locality)을 반영하는가,이행(Follow up) 가능한가의 4개 항목별 100점 만점으로 구성된다.

파인은 공약의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살펴보고 유권자의 반응(Intera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을 잣대로 사용한다.

이 같은 평가를 통해 선거에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공약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행 정도에 따라 다음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에서는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계기로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구체성을 띠고 있는지,실현가능한지를 평가하자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운동은 특정 정파와 노선을 벗어나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진보가 보수를,보수가 진보를 비난하기 위해 매니페스토 운동을 전개하면 정치적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유권자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공약을 감시하는 중립적 운동이 필요한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또 지자체들이 개발공약을 남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개발재원을 지자체가 직접 마련하거나 일정 부분을 분담토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래야 자기 돈이 들어가는 공약 사업을 무분별하게 추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