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재스민’과 오일쇼크
재스민(jasmine)은 물푸레나무과 영춘화속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이다.

원산지는 히말라야이며 주로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분포한다.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을 뜻하는 재스민은 방향성이 뛰어나 향신료의 원료가 되는 작물이다.

이러한 재스민의 진한 향기가 북아프리카를 넘어 중동을 뒤덮고 있다.

'재스민 혁명'으로 명명된 시민혁명이 24년간 장기 집권해온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을 무너뜨린 데 이어 40년간의 철권통치로 악명 높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도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재스민의 향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리비아로 건너가 카다피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반정부 시위를 발생시켰고,현재는 다국적군의 개입으로 국제전 양상을 띠고 있다.

리비아 사태를 바라보는 각국의 시각은 그들의 입장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의 서방국가들은 일련의 중동사태를 민간인 보호라는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이는 중국과 러시아 역시 중동 대부분의 국가처럼 소수민족 또는 인권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랍국가들은 카다피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서방국가들의 군사 개입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다양한 입장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공통의 관심사는 분명 존재한다. 바로 '검은 황금',석유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중동에 불고 있는 시민혁명의 바람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주요 산유국으로 확산되어 오일쇼크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속 물가 급등)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재스민 혁명'이 발발한 지난 1월 이후 국제유가는 20% 이상 급등하였다.

그렇다면 우려대로 오일쇼크는 발생하게 될까? 발생한다면 우리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혹 오일쇼크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유사한 사례와 그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는 과거에도 몇 차례의 유가 급등기를 경험하였다. '욤키푸르(유대교의 속죄일) 전쟁'으로도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1973년 10월 발발하였다.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은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휴일인 욤키푸르에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였고,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후퇴를 거듭해야만 했다.

그러나 예비군 동원령을 통해 병력을 증원하고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고, 전세는 점차 이스라엘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러자 아랍 국가들은 국제사회의 압박 수단으로 석유의 무기화를 들고 나왔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에는 석유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하였고,산유량도 매월 5%씩 감산한다고 결정하였으며, 원유가격을 담합 인상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로 인해 1973년 배럴당 평균 3.1달러 수준이었던 두바이유 가격이 1974~1975년에는 10.7달러로 3배 이상 급등하였다.

'제4차 중동전쟁'의 영향은 유가 급등에 그치지 않고 세계경제의 침체를 불러왔다.

1973년 6.8%였던 세계경제 성장률은 1974~1975년에는 2.4%로 곤두박질쳤고 교역량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차 오일쇼크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수출 감소로 성장률이 12%에서 6.6%로 5.4%포인트 하락했고, 물가상승률은 무려 21.6%포인트나 상승하였다.

1976년 1차 오일쇼크의 여파가 사그라질 때까지 정부는 예산을 삭감하여 긴축정책을 펼쳤고 에너지절약 정책을 국민들에게 강제해야만 했다.

2차 오일쇼크는 1978년 발생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종교 학생데모가 발단이 된 '이슬람 혁명'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는 성공을 가져왔지만, 혁명 기간 중 발생한 유전 노동자의 파업으로 석유 수출을 전면 중지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하루 560만배럴의 공급 차질이 발생되었다.

여기에 OPEC(석유수출기구) 회원국들의 자원 민족주의 강화와 이란 · 이라크 전쟁 발발, 미국 스리마일 섬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한 석유의존도 강화 등이 더해져 유가는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30달러 선을 넘게 되었다.

선례를 통한 학습에도 불구하고 2차 오일쇼크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는 1차 오일쇼크 때보다 장기화되었다.

2차 오일쇼크는 1978년부터 1982년까지 5년간 지속되었고,이 기간 동안 국제유가는 3배나 올랐으며 세계경제 성장률은 1979년 이후 4년간 하락했다.

한국 역시 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경제성장률은 경제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물가와 실업률은 급등했다.

외환시장마저 불안한 양상을 보여 1980년 1월 초 484원이였던 환율은 같은 해 12월 659원까지 치솟았다.

석유소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석유수급 문제가 완화되어 세계경제가 2차 오일쇼크의 그늘에서 벗어난 후 한국 정부는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경제안정화와 대외개방으로 전환하였다.

세계 각국 역시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에너지절약 운동 장려와 산유국과의 관계 개선 도모에도 적극 나서기 시작하였다.

과거 두 번의 오일쇼크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동정세의 불안이 원유공급 축소와 국제유가 급등을 불러왔고,이로 인해 세계경제가 수년간 침체기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향후 3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고,카다피가 석유 생산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는 있지만,당분간 국제유가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4월4일 현재 국제유가는 108.47달러(뉴욕시장 종가 기준)로,2008년 9월 이후 3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유가는 국내적으로 기업의 제조원가를 상승시켜 기업채산성을 악화시키고 수출경쟁력을 저하시킨다.

또한 수입상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이는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 둔화를 야기한다.

특히 고유가는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GDP 1단위 생산에 필요한 원유량이 경쟁 국가들보다 높은 우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부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유가 수준별 대책을 마련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중동에 집중되어 있는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 · 개발에도 좀 더 높은 관심과 지원이 보내져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에너지 회사이자 이탈리아의 최대 기업인 ENI에서 전략 및 개발 담당 수석 부회장을 지낸 레오나르도 마우게리(Leonardo Maugeri)는 그의 저서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석유의 진실' 머리말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석유는 현대 경제와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역할을 해왔다. 국가 운명을 결정함은 물론, 국가 사이의 군사 및 대외 통상 전략관계의 발전에 있어 석유만큼 중요한 자원은 없었다. 석유는 국가의 복리 증진을 위한 위대한 약속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때로는 불쑥 미래를 뒤덮는 저주로 변하기도 했다. 석유만큼 세계 지형과 사회 상호작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자원도 없었다. 어떤 자원보다도 석유는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석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석유가 근거 없는 이야기,과대망상,공포,현실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집단심리에 대단히 부담되는 무분별한 정책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석유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석유 생산의 불황 및 호황 주기,통제 불가능한 가격 변동,정치적 격변 등에 의해 여러 차례 좌절을 맞보아야 했다."

인류 발전에 석유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마우게리의 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석유가 때로는 인류의 미래에 저주를 내린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져 신생 산유국들이 생겨나고,연료 소비의 효율성 증대로 원유 수요가 감소하여 세계경제가 석유 고갈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정원식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