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긴축안 부결로 총리사임…국채5년물 금리 8.2%로 급등

[Global Issue] 또 구제금융?…전세계 휩쓰는 포르투갈發 재정위기 공포
포르투갈발(發) 정치불안이 연쇄 재정위기 확산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포르투갈 의회가 정부의 긴축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포르투갈에 대한 구제금융이 기정사실로 다가오고 있다.

포르투갈 총리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졌다며 사임했고,국채금리까지 치솟아 금융시장의 불안이 높아졌다.

유럽연합(EU)의 향후 대처마저 쉽지 않은 상태다. 불안해진 투자자들은 금이나 은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포르투갈,수렁 속으로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 "포르투갈 정부가 자력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 중이던 긴축안이 여소야대 의회에서 전격 부결 처리됐다"며 "포르투갈이 구제금융 신청에 한발 더 다가섰다"고 보도했다.

이날 포르투갈 제1야당인 중도우파 계열 사회민주당(PSD) 등 5개 야당이 힘을 합쳐 추가 증세와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긴축안을 모두 부결시켰다.

긴축안 부결 직후 주제 소크라테스 총리는 아니발 카바쿠 시우바 포르투갈 대통령과 긴급 회동한 뒤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졌다"며 사임했다.

소크라테스 총리는 TV연설에서 "포르투갈이 자력으로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를 야당이 거부했다"며 "포르투갈이 시장과 외부 기관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긴축안이 부결돼 매우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이 조만간 구제금융 신청 수순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이 많다.

포르투갈발 정치불안은 유럽 변방에 대한 재정위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채값은 폭락했다.

이날 10년물 포르투갈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10bp(1bp=0.01%포인트) 증가한 7.63%를 기록했다.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도 14bp 커진 457bp로 벌어졌다. 5년물 국채 수익률도 20bp 늘어난 8.18%를 보였다.

장중 한때 금리가 8.2%까지 치솟았다.

아일랜드 2년물 국채수익률은 38bp 오른 10.25%로 뛰었다.

아일랜드 국채수익률이 10%를 넘어선 것은 1999년 아일랜드가 유로존에 가입한 이래 처음이다.

그리스 10년물 국채수익률도 4bp 오른 12.46%에 거래를 마쳤다.

유로화도 약세를 보여 런던외환시장 등에서 유로화는 16개 주요 통화 중 15개 통화에 비해 약세를 보였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유럽의 소국 포르투갈이 전 유럽을 불안과 우려 속에 몰아 넣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포르투갈 당국으로부터 금융지원 요청을 받지 않았다"며 포르투갈과 IMF가 관련 합의를 벌이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을 부인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 금 · 은 사상 최고치…안전자산 쏠림

중동 · 리비아 정치불안과 일본 강진 · 쓰나미 · 원전사고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가 재연되자 금이나 은 같은 안전자산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이날 금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은가격은 31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였다.

유가도 30개월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물 금값은 전날보다 10.40달러(0.7%) 상승한 온스당 1438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종전 금값 최고치는 지난 2일의 1437.70달러였다. 금현물 가격도 전일 대비 온스당 9.80달러 오르는 등 강세를 보였다.

금가격이 5거래일 연속 상승하자 금값이 온스당 15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은가격도 동반 상승하며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5월물 은값은 9센트(2.6%) 오른 온스당 37.20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온스당 37.29달러까지 값이 뛰기도 했다.

산업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구리도 값이 12센트(2.7%) 오른 파운드당 4.4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 4일 이후 최고치다. 백금과 백금 대용으로 애용되는 팔라듐 가격도 각각 1.2%,1.6% 상승했다.

데이브 미저 비전파이낸셜마켓 부사장은 "세계 정세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안전자산에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지 지로 RBC캐피털마켓 수석부사장도 "포르투갈 정치 사태로 인해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재연되면서 금 · 은 등 귀금속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거들었다.

⊙ 불협화음 내며 삐걱이는 유럽

이처럼 포르투갈발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재정위기 전염방어 역할을 할 EU는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유럽 각국이 중차대한 시기에 연쇄 정치불안에 빠져 24~25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포르투갈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당장 그리스,아일랜드에 이어 구제금융을 받을 대상으로 유력한 포르투갈을 대표할 주체가 없는 것도 문제다.

24~25일 EU 정상회의에서 포르투갈 문제가 핫이슈가 될 전망이지만,이 문제를 EU회원국들과 논의하고 구제금융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할 정권이 공백상태를 맞았기 때문이다.

핀란드 역시 4월 총선을 앞두고 의회가 해산돼 EU 공동결정 라인에서 빠져 있다.

2013년부터 현행 유로존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할 5000억유로 규모의 유럽안정화기금(ESM)의 자금조달 방식이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점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포르투갈 정권 공백으로 유럽 공동의 재정위기 합의안 마련도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유로존 최대 경제대국 독일은 EU 재무장관회의에서 합의를 봤던 ESM 출범 관련 일정을 재조정하자고 태도까지 바꿨다.

지난해 말 EU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수용한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조건을 완화해 달라며 독일 프랑스 등과 마찰을 빚는 등 EU는 재정위기 대처에서 일사불란함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