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고대의 모든 왕들은 화폐 발행권에 관심이 많았다
인류 역사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동서양이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해 가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인 특성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야기되는 측면도 많지만, 이에 못지 않게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유사한 진화과정을 보여 왔다.

단적으로 동서양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거래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물물교환으로는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시기에 얻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때문에 보다 원활히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교환도구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쉽게 교환이 가능한 물건들을 화폐로 이용하게 된다. 초창기 유통되던 원시 화폐의 종류는 다양했다.

가죽,구슬,의류,노예 등 그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화폐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물건 자체에 대한 고유의 수요가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물건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격감하게 되면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화살촉을 화폐로 사용하던 부족에서 갑자기 화살촉에 대한 수요가 격감하게 되면 더 이상 화살촉으로는 교환이 성립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목격한 인류는 거의 대부분 원시 화폐로 필수재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필수재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재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필수재는 언제든지 사람들이 원하는 재화이기 때문에 쉽게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초창기 원시 화폐에는 화폐로서의 고유의 권한을 부여해 줄 정부나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폐로 통용되는 재화가 가진 본연의 가치에 의존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쌀이, 그리고 서양에서는 밀이 화폐의 수단으로 등장하게 된다.

기원전 5000년께의 토기들을 살펴보면,밀이나 쌀이 시장에서 상품 교환에 사용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필수재인 소금 역시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에서 널리 화폐로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로마시대에는 군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급하기도 하였다.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인 살라디움(saladium)이 봉급을 의미하는 salary의 어원이 된 경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인류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대 왕들이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신분제가 세분화되고,사유재산제도가 발달하면서 많은 귀족들이 밀이나 쌀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소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는 곧 곡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화폐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모든 귀족 계급은 각자 조폐공사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형국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오늘날의 경제정책에 있어 통화량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화의 양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시중에 너무 많은 통화가 유통되면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는데,이때 만일 상품의 공급이 수요가 증가한 만큼 늘어나지 못한다면 통화량 증가는 곧바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게 되고,이는 국민경제에 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이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그 기능을 전담하게 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각종 금융정책수단을 이용하여 통화량을 조절하여 물가안정,완전고용,경제성장,국제수지 균형 등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능을 담당한다.

고대 왕들도 이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아직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지배계층은 자신이 생산해 낸 곡식을 맘대로 화폐로 남발하여 사용하였을 것이고, 이로 인한 많은 사회적 혼란과 비용이 유발되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을 여러 사람이 갖고 있게 되어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통제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결국 귀족들이 생산한 곡물이 마음대로 화폐로 사용됨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고대 왕들은 화폐를 발행하는 모든 권한을 자신이 갖기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금속 화폐의 주조이다. 철과 구리와 같은 금속으로 화폐를 만들게 된 것은 당시 금속 광산은 전부 왕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금속은 얼마든지 무기 제작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을 지속하고 싶은 고대 왕들은 모든 금속 광산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때문에 금속을 사용해 화폐를 제작할 경우 화폐를 제작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은 자신만 갖게 된다.

또한 당시 일반 백성들도 이러한 구리나 철과 같은 금속들을 장식품의 원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때문에 백성들에게 금속을 사용해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켜도 이에 가치를 부여하고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어 있었다.

금속으로 제작한 화폐를 유통시킴으로써 왕들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 막강한 권력을 뽐내기라도 하듯,로마시대에는 자신의 얼굴을 금속화폐에 주조하여 유통시키기도 하였다.

통화량을 공급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자신만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일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축제 기간에는 많은 금속화폐를 거리에 뿌리면서 자신의 자비로움과 권위를 마음껏 표현하였을 것이다.

또한 전쟁기간에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보다는 금속 광산에서 더 많은 양을 채광하여 이를 화폐로 주조하여 유통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발될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고대 왕들이 곤욕을 치른 기록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가가 폭등하였다는 기록은 고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지방의 설형문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1792년께의 바빌론 왕 함무라비의 법전에서 화폐와 임금,물가 등을 다루는 별도의 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미 그 시절에는 고대의 왕들에게 물가 관리와 화폐 유통량 결정은 중요한 문제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고대 왕들에게는 화폐 발행에 대한 독점적 권한이 커다란 책임감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막강한 권력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금속 화폐의 유통 권한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왕들이 누려왔던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금속화폐는 BC 6세기께의 명도전(明刀錢)인데,이는 중국 북쪽에 있던 연(燕)나라에서 만든 금속화폐가 교역과정에서 국내에서 유통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대 왕들 역시 금속화폐의 주조 권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 최초로 주조된 금속화폐는 996년(고려 성종 15)에 만든 철전(鐵錢)인 건원중보(乾元重寶)이다.

그 뒤 금속화폐의 유통을 장려하고자 1102년(숙종 7)에 해동통보(海東通寶)가 주조된다.

비록 유럽이나 동양에서 유통되는 금속화폐의 모양이나 크기는 천차만별이지만,모두 금속을 사용해서 화폐를 주조하게 된 과정은 비슷한 고민과 목적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류의 발달사를 조망하는 데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설명 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