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난해 11월,뇌출혈로 사망한 인디 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이듬해 1월,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요절한 '최고은' 작가의 공통점은 '극심한 생활고'라는 배경이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그는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1인 밴드였다.

자신의 골방에 앉아 작사와 작곡,녹음을 혼자 다해 스스로를 '가내수공업 뮤지션'이라 불렀던 그는 2004년 'Infield Fly'라는 제목으로 1집 앨범을 냈다.

영화배우 설경구가 철로 위에서 "나,다시 돌아갈래"를 외쳤던 유명한 영화 '박하사탕'을 보다가 주인공 김영호가 절룩거리는 장면에 감동한 그는 '내 인생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절름발이 인생이구나.

나는 이 나라에서 절름발이 인생일 뿐이야'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1집 앨범의 주제곡 '절룩거리네'였다.

"이제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세상도 날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미친 게 아니라면." 이런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무언의 힘이 생긴다.

마치 네 맘 다 안다는 듯 말없이 어깨를 툭 치며 위로해 주는 친구같이 말이다.

그렇게 달빛요정은 1집으로 인기를 누렸지만 인디음악은 배고픔의 일상이었다.

급기야 그는 3집 앨범을 내며 "월 100만원 이상을 못 벌면 음악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는 월 100만원 이상 벌어 음악 활동을 접지는 않았으나 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가난이라는 일직선상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인디에서 음악을 한다는 건,잘사는 집 아들이 취미로 하는 게 아니면 정말 먹고 살기 어려워요. 한 달에 50만원도 못 버는 친구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저도 아마 부양가족이 있으면 못했겠죠.

그래도 그만두지 못하는 건 가수를 하는 데 희열이 있어요.

무대에서 노래하며 느끼는 희열.그 재미를 맛보면 그만두기 어렵죠."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그는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난해 11월 뇌출혈로 쓰러진 채 30시간 만에 발견되었고 5일간의 투병 끝에 사망했다.

그리고 2개월 후 또 한 명의 예술가가 요절했다.

단편영화 '격정소나타'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이 그 안타까운 죽음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실제 영화 제작까지 이어지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웃에게 밥과 김치를 얻어먹고 있었던 그녀는 "번번이 정말 죄송하다"며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고 쓴 쪽지를 이웃집 문에 붙여놨다.

그러나 일이 있어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이웃에 의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후 아사(영양실조)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던 그녀의 사인은 스승인 소설가 김영하에 의해 바로 잡히기도 했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이 고은이가 굶어 죽었다고 믿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라며 "물론 그녀가 풍족하게 살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꾸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직접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들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지고 몸은 바싹 말라가는 병"이라며 "고은이는 재능있는 작가였습니다.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다가 간 무능한 작가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 달간 가난이라는 배경 아래 숨진 두 예술가의 요절을 두고 사회에서는 '말도 안 되게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음원 문제'와 '비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영화계의 인건비 문제' 등의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곡당 60~125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 아까워 불법 다운로드를 서슴지 않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의식'이 아닐까 싶다.

현재 국내에서 음원 하나를 내려받으면 60~125원이다. 심지어 스트리밍은 2~3원이다.

이런 식의 음원 수익구조로 인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건당 1원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돈이 아까워 불법다운로드를 하는 것이다.

또한 스타의 모습만 바라보고 좇는 우리들의 태도도 지양해야 할 것 중 하나다.

우리가 스타성만을 강조하고 그들의 모습만을 좇는다면 그 뒤의 사람들은 치고 올라올 자리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생존의 위협이 생계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예술가에게 있어서 가난은 수치가 아니다.

위대하다는 이름 아래 불린 예술가들도 극심한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고(故) 박완서 씨는 눈을 감기 전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했고 소설가 공지영도 TV 오락프로에서 "돈이 없을 때 글이 잘 써진다.

가난은 모든 예술가의 동력"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생계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예술가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우리들의 편향적인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그들을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도 우리의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권기선 생글기자(매괴고 3년) sharp_ros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