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올 예산안 ‘인플레잡기’에 올인…중동發 유가폭등이 최대 난제
[Global Issue] 인플레 '덫'에 빠진 아시아… "성난 民心 어떻게 달래지?"
아시아 지역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각국 정부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물가상승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의 물가상승률도 껑충 뛰었다.

긴장감이 고조되자 인도 정부는 지난달 재정적자 폭을 예상보다 큰 폭으로 줄이는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예산안을 발표했다.

홍콩,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도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동의 소요 사태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함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인도,인플레 잡기 총력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라나브 무케르지 인도 재무장관은 지난달 28일 공개한 2011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정부 지출을 12조5800억루피(2779억달러)로 잡았다.

이는 현재 2010회계연도의 예상 지출(수정치 기준)에 비해 3.4% 늘어난 것이다. 현 회계연도의 지출이 이전 연도에 비해 19%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정부 지출을 최대한 억제해 물가상승 부담을 줄이고자 했다는 평가다.

또 2010회계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당초 목표치(5.5%)보다 낮은 5.1%로 예상했다.

이를 다가오는 회계연도엔 4.6%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인도는 지난 분기에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감한 2010회계연도 3분기 GDP 증가율은 8.2%에 달했다.

주요국 가운데 9.8% 성장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지난해 4~12월까지 9개월간 도매물가지수(WPI) 상승률은 평균 9.4%로 10년래 최고 수준이다.

지난 1월 역시 WPI 상승률은 8.23%였으며,최근 식품가격 상승률은 11.05%에 달했다.

수도 뉴델리에서 지난달 수십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물가 상승 규탄집회가 열린 배경이다.

인도 정부가 저소득층의 물가 불만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자칫 중동 ·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불안이 인도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 하반기 지방선거를 앞둔 만모한 싱 인도 총리 입장에선 물가안정을 통한 민심 수습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예산안도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농업 부문을 개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짜여졌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인도 정부는 농촌지역의 곡물저장 창고 건설에 4억4500만달러를 지원하고 렌틸콩,야자나무,채소를 생산하는 농업단지 조성에 3억5000만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 亞신흥국 보조금 등 국민 달래기

아시아 지역 내 다른 나라들도 물가상승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보조금 제도를 도입하는 추세다.

홍콩은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4.5%에 근접하자 최근 가정용 전기요금 할인과 공공주택 임대료를 두 달치 면제해 주는 일회성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싱가포르도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세금환급과 감세를 내용으로 하는 66억싱가포르달러(52억달러)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싱가포르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5.5%로 작년 12월의 4.6% 보다 더 높아졌다.

물가가 7%나 급등한 인도네시아는 3월 종료될 예정인 유가보조금 지급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도 역시 예산안 발표와 함께 디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연장했고 식품 보조금 지급정책도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다.

각종 보조금 지급을 도입하는 국가가 늘고 있는 것은 금리인상 같은 고통스러운 조치를 피하면서 단기적으로 물가상승에 따른 영향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의 경우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해외 투기자본이 유입돼 금융시스템을 혼란에 빠트릴 위험부담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결국 이런 보조금 지급이 소비자의 지출을 늘려 물가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정부가 가격통제에 나서는 것은 기업이나 농부들로 하여금 더 많은 제품과 곡물을 생산하려는 의지를 꺾기 때문에 생상량 증대를 통해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조금 지급이나 가격통제를 중단하는 것은 소요사태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 1990년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몰락하고 2007년 미얀마의 대규모 거리시위가 발생했던 배경은 모두 보조금 삭감과 가격통제 중단 등의 조치 때문이었다.

프리데릭 뉴먼 홍콩 HSBC 이코노미스트는 "보조금이나 가격통제는 결국엔 역효과를 낼 뿐이기 때문에 아시아 정부들은 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중동발 유가폭등이 최대난제

이미 높은 인플레로 고전 중인 아시아 국가들은 최근 중동의 시위 사태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중동 사태로 인한 불똥이 아시아와 유럽이 많이 쓰는 두바이유,북해산 브랜트유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리비아 등 중동 정세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지난달 두바이유 현물의 월평균 거래가격은 배럴당 100.24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것은 '초고유가'였던 2008년 8월(배럴당 112.99달러) 이후 2년6개월 만이다.

지난 1월 평균가격보다 8.31%,지난해 2월보다는 36.20%나 높다.

일부에서는 향후 상대적으로 값싼 서부텍사스원유(WTI)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두바이유 가격이 조정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근본 원인인 중동사태가 지속되는 한 유가가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실제 지난달 24일 국내 기름 가격을 최대 24% 전격 인상했다.

국제 유가 상승세 속에서 더 이상 유류 보조금을 감당할 재정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조치의 불가피성을 고려해도 생필품의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인플레를 촉진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베트남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12.31%에 달해 아시아 내에서도 인플레가 가장 심한 나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일일 180만배럴로 알려진 리비아 하루 원유생산이 전면 중단되거나 수출이 100% 차단될 경우 유가가 120달러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배럴당 220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온다. 노무라 인터내셔널은 "리비아와 알제리가 석유 생산을 중단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 여유분이 520만배럴에서 210만배럴로 감소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유가는 배럴당 22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유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