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이슬람 · 기독교 모두 이자를 금지
이자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의 핵심
이자(interest)는 돈의 값이다.
화폐를 빌려서 일정기간 사용한 대가로 그것을 빌려준 사람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돈도 빌려 썼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자 지불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중세 시대까지는 기독교(카톨릭)에서도 이자를 죄악시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악당 샤일록이 고리대금업자로 설정된 것도 이자와 대부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이 컸다.
이는 이자제한법을 요구하는 지금의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다.
이슬람은 이자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하다.
기독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이자에 대한 관념이 바뀌지만,이슬람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카톨릭과 이슬람에서 이자를 죄악시하는 배경이 무엇인지,개신교가 이자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바꿨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돈은 거래의 수단이지,이자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
중세 유럽은 카톨릭의 시대였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된 기독교는 11세기 초엔 전유럽에 전파됐다.
1054년 기독교가 콘스탄티노플이 동로마정교회와 서유럽의 카톨릭으로 완전히 분열된 이후 카톨릭은 서구인들의 유일한 종교로서 중세 서구인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했다.
카톨릭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함께 이자를 받는 것을 죄악시했다.
'이자 금지'가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여겨졌다. 중세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중세 철학 흐름인 스콜라철학은 이자와 관련해서 "화폐는 화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돈이란 거래에 쓰이도록 만들어졌지 이자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貨幣不姙說)'을 잇는 사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를 가계경제(oikos)와 상업경제(chremastics) 등 두 가지로 구분했다.
가계경제는 상품(혹은 사용가치)의 획득을 목표로 하며,화폐를 이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상업경제는 거꾸로 화폐(혹은 교환가치)의 획득을 목표로 하며,상품을 화폐 획득의 수단으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있어 행복한 삶이 궁극적 가치이고,재화나 상품은 그것에 봉사하는 종속적인 가치이며,화폐는 그런 재화를 얻는 수단이라고 했다.
거칠게 표현하면,화폐는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계경제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지만,상업경제는 비정상적이며 자연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삶을 위한 돈벌이는 용인했지만,돈벌이를 위한 삶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자는 불로소득이라서 이자받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이슬람교는 오늘날 이자를 금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종교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법(샤리아)을 경제부문을 포함한 생활전반의 지침으로 삼는다.
샤리아는 4가지 법원(法源)으로 구성되는데,△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Koran) △이슬람교의 전통적 습관 또는 규범인 수나(Sunnah) △특정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적합한 법에 대한 특정 시대의 이슬람 공동체의 합의인 이즈마(Ijma) △적합한 법적 근거가 없을 때 이슬람 재판관이 판단의 표준으로 활용하는 키야스(Qiyas)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코란과 수나가 가장 중요한 법의 근원이다.
코란과 수나는 재산취득방법에 있어 정의와 불의,합법과 불법을 구분하는 원칙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는데,부당하게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대표적인 예로 이자를 받는 것을 꼽고 있다.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집대성한 코란에는 이자를 금지하는 구절이 12번 등장한다.
이런 계시는 4단계로 나뉘어 전달됐다. 이슬람 초창기인 메카(Mecca)시대에 내려진 첫 번째 계시는 이자는 신으로부터 하사받은 부를 빼앗는 것이라며 죄악시했다.
두 번째 계시는 헤지라(예언자 무함마드가 쿠라이쉬족의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것을 가리킴) 초기 메디나에서 내려졌다.
앞선 계시와 마찬가지로 이자를 받는 사람은 타인의 재산을 부정하게 빼앗는 사람과 똑같다며 하느님으로부터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지라 후 2~3년동안 내려진 세 번째 계시와 예언자가 말년에 받은 네 번째 계시도 이자를 주고 받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악한 행위라고 강력하게 금지했다.
이슬람이 이처럼 이자를 금지하는 것은 △이자 수수가 부의 편중과 빈부 격차를 심화시켜 계층간의 갈등과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고 △이자는 생산적인 노력과 노동의 투입없이 받는 보상인 만큼 분명한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서 이자받는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핵심
15세기말부터 대양항해시대가 개막되면서 16세기 서유럽에선 자본주의가 본격화된다.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사회의 변화에 뒤떨어져 있던 카톨릭의 교리와 성직자들의 부패,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황실에 대한 전반적인 적대감이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다.
종교개혁을 통해 칼뱅파 루터파 영국국교(성공회) 재세례파 등의 개신교가 등장했다.
당시 영리추구를 직업으로 하던 부르주아(bourgeois)에겐 이윤추구행위를 죄악시하는 카톨릭의 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교리가 필요했고,개신교 특히 칼뱅의 교리는 큰 힘이 됐다.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칼뱅은 성경에서 고리대금과 같은 소비성자금대출의 폐해를 비난하지만,이를 생산성자금대부와는 구별해야 한다며 돈이 생산적으로 쓰인다면 이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카톨릭 교리를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됐다.
또 이자(돈의 가격)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핵심을 담당하게 하는 배경이 됐다.
이자의 정당성에 대한 이슬람 사회와 다른 사회간 인식차이는 '시간'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과도 관련이 있다. 서구 경제학자들은 이자는 지금의 소비를 미래로 연기하는 대가를 이자로 본다.
시간 가치를 이자로 본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 학자들은 시간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므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금도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근로자의 사회공헌에 대한 대가로 생각한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이자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의 핵심
이자(interest)는 돈의 값이다.
화폐를 빌려서 일정기간 사용한 대가로 그것을 빌려준 사람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돈도 빌려 썼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자 지불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중세 시대까지는 기독교(카톨릭)에서도 이자를 죄악시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악당 샤일록이 고리대금업자로 설정된 것도 이자와 대부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이 컸다.
이는 이자제한법을 요구하는 지금의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다.
이슬람은 이자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하다.
기독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이자에 대한 관념이 바뀌지만,이슬람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카톨릭과 이슬람에서 이자를 죄악시하는 배경이 무엇인지,개신교가 이자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바꿨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돈은 거래의 수단이지,이자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
중세 유럽은 카톨릭의 시대였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된 기독교는 11세기 초엔 전유럽에 전파됐다.
1054년 기독교가 콘스탄티노플이 동로마정교회와 서유럽의 카톨릭으로 완전히 분열된 이후 카톨릭은 서구인들의 유일한 종교로서 중세 서구인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했다.
카톨릭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 함께 이자를 받는 것을 죄악시했다.
'이자 금지'가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여겨졌다. 중세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중세 철학 흐름인 스콜라철학은 이자와 관련해서 "화폐는 화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돈이란 거래에 쓰이도록 만들어졌지 이자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貨幣不姙說)'을 잇는 사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를 가계경제(oikos)와 상업경제(chremastics) 등 두 가지로 구분했다.
가계경제는 상품(혹은 사용가치)의 획득을 목표로 하며,화폐를 이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상업경제는 거꾸로 화폐(혹은 교환가치)의 획득을 목표로 하며,상품을 화폐 획득의 수단으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있어 행복한 삶이 궁극적 가치이고,재화나 상품은 그것에 봉사하는 종속적인 가치이며,화폐는 그런 재화를 얻는 수단이라고 했다.
거칠게 표현하면,화폐는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계경제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지만,상업경제는 비정상적이며 자연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삶을 위한 돈벌이는 용인했지만,돈벌이를 위한 삶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자는 불로소득이라서 이자받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이슬람교는 오늘날 이자를 금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종교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법(샤리아)을 경제부문을 포함한 생활전반의 지침으로 삼는다.
샤리아는 4가지 법원(法源)으로 구성되는데,△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Koran) △이슬람교의 전통적 습관 또는 규범인 수나(Sunnah) △특정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적합한 법에 대한 특정 시대의 이슬람 공동체의 합의인 이즈마(Ijma) △적합한 법적 근거가 없을 때 이슬람 재판관이 판단의 표준으로 활용하는 키야스(Qiyas)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코란과 수나가 가장 중요한 법의 근원이다.
코란과 수나는 재산취득방법에 있어 정의와 불의,합법과 불법을 구분하는 원칙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는데,부당하게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대표적인 예로 이자를 받는 것을 꼽고 있다.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집대성한 코란에는 이자를 금지하는 구절이 12번 등장한다.
이런 계시는 4단계로 나뉘어 전달됐다. 이슬람 초창기인 메카(Mecca)시대에 내려진 첫 번째 계시는 이자는 신으로부터 하사받은 부를 빼앗는 것이라며 죄악시했다.
두 번째 계시는 헤지라(예언자 무함마드가 쿠라이쉬족의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것을 가리킴) 초기 메디나에서 내려졌다.
앞선 계시와 마찬가지로 이자를 받는 사람은 타인의 재산을 부정하게 빼앗는 사람과 똑같다며 하느님으로부터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지라 후 2~3년동안 내려진 세 번째 계시와 예언자가 말년에 받은 네 번째 계시도 이자를 주고 받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악한 행위라고 강력하게 금지했다.
이슬람이 이처럼 이자를 금지하는 것은 △이자 수수가 부의 편중과 빈부 격차를 심화시켜 계층간의 갈등과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고 △이자는 생산적인 노력과 노동의 투입없이 받는 보상인 만큼 분명한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서 이자받는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핵심
15세기말부터 대양항해시대가 개막되면서 16세기 서유럽에선 자본주의가 본격화된다.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사회의 변화에 뒤떨어져 있던 카톨릭의 교리와 성직자들의 부패,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황실에 대한 전반적인 적대감이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다.
종교개혁을 통해 칼뱅파 루터파 영국국교(성공회) 재세례파 등의 개신교가 등장했다.
당시 영리추구를 직업으로 하던 부르주아(bourgeois)에겐 이윤추구행위를 죄악시하는 카톨릭의 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교리가 필요했고,개신교 특히 칼뱅의 교리는 큰 힘이 됐다.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칼뱅은 성경에서 고리대금과 같은 소비성자금대출의 폐해를 비난하지만,이를 생산성자금대부와는 구별해야 한다며 돈이 생산적으로 쓰인다면 이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카톨릭 교리를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됐다.
또 이자(돈의 가격)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핵심을 담당하게 하는 배경이 됐다.
이자의 정당성에 대한 이슬람 사회와 다른 사회간 인식차이는 '시간'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과도 관련이 있다. 서구 경제학자들은 이자는 지금의 소비를 미래로 연기하는 대가를 이자로 본다.
시간 가치를 이자로 본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 학자들은 시간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므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임금도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근로자의 사회공헌에 대한 대가로 생각한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