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옷깃과 소매가 낳은 '영수회담'
"청와대는 앞으로 영수회담이 아니라 청와대 회동으로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

지난달 초 '영수회담'의 성사 여부를 둘러싸고 한창 논란이 일던 중 청와대가 갑자기 용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정무수석실 관계자는 "영수회담은 예전에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했을 때 여당 대표 대신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표를 상대하면서 나온 용어"라고 설명했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당연히 반발했다.

"영수라는 것은 각 진영의 우두머리를 뜻하는데 (이를 청와대 회동이라 바꿔 말하는 것은) 야당 대표를 대통령과 동격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됐든, 청와대 회동이 됐든 그 뒤 야당 대표가 조건 없는 등원을 결정함으로써 2월 임시국회가 열리게 됐고, 자연스레 용어 논란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영수회담'이란 말은 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는 아니다. 언론에서 '영수(領袖)'라는 단어에 '회담'을 붙여 만들어 쓰는 것일 뿐이다.

'영수'는 '옷깃 령, 소매 수'로 이뤄진 단어로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니 '영수회담'은 사전적으로만 보면 '지도자들 간의 회담'이지만 경험적으로나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쓰는 의미는 '대통령과 야당 총재 간의 회담'을 지칭하는 것으로 더 많이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요즘 일반 언중(言衆) 사이에선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독재시대의 잔재,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영수'는 영어로는 '보스'에 해당하고 비슷한 한자어로는 수뇌, 수장, 지도자 등 여럿 있지만 순우리말로 하면 '우두머리'이다.

'령(領)'의 대표적인 뜻은 '거느리다'란 것이지만 본래는 '옷깃'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예부터 의관에서 '옷깃'을 매우 중요시하게 여겼다.

그래서 우리말 속에서도 '옷깃을 여미다'란 관용구를 만들었다.

이는 '경건한 마음으로 옷을 가지런하게 하여 자세를 바로잡다'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때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을 말한다.

양복으로 치면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이다.

'수(袖)'는 소매를 가리키는 말로, 이 역시 옷을 입을 때 대표적으로 상징이 되던 부분이다.

결국 '령'과 '수'는 옷차림에서 제일 중요시하게 여기던 부분이었고, 여기서 '영수'란 말이 어떤 무리의 지도자라는 뜻으로 확장돼 쓰이게 된 것이다.

옷을 입을 때 얼핏 생각하기에도 옷깃은 우리말 관용구가 생길 정도로 중요한 부분임을 알겠는데,소매는 어떻게 무슨 이유로 중요시했을까.

본래 우리 한복에는 지금처럼 소지품을 넣는 주머니가 따로 없었다.

대신에 간단한 소지품들을 윗저고리 소매에다 넣었다. 윗옷의 좌우에 있는 '소매'는 두 팔을 꿰는 부분이다.

그래서 옛날에도 주머니 역할을 한 이 소매가 한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

'소매 수'자가 한자에 남아있는, 지금도 많이 쓰이는 말이 '수수방관(袖手傍觀)'이다.

이는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이다.

'소매치기'란 말에서도 소매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소매치기란 '남의 몸이나 가방을 슬쩍 뒤져 금품을 훔치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붐비는 번잡한 곳에서 다른 사람의 주머니나 가방을 몰래 뒤져 금품을 훔치는 것을 주머니치기 또는 가방치기 따위가 아니라 굳이 '소매치기'라 한 까닭도 '소매'가 예부터 금품을 보관하는 기능을 하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한복에서는 본래 그 자체에 주머니를 따로 만들지 않았는데 요즘 한복에는 다 주머니가 있다.

이것이 호주머니인데,호주머니의 '호(胡)'는 오랑캐 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진족을 일컬었고,중국에서는 진 · 한 시대에 흉노를,당나라 때 서역의 여러 민족을 일컬었던 말이다.

이 '호'가 지금까지 이어져와 우리말에서 '중국에서 들여온'이란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인다.

호두(胡桃:원래는 '호도'라고 읽고 적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음운변천을 일으켜 '호두'를 표준어로 삼았다.

따라서 지금은 호도라고 하면 틀린 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호밀 호떡 호빵 따위에서 볼 수 있는 '호'가 그런 것이다.

국어학자인 천소영 교수는 저서 <우리말의 문화찾기>에서 '호주머니'에 대해, 원래 우리 한복에 없던 것인데 북방 민족의 풍습이 들어와 바지 허리춤 부근에 덧대어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호주머니'라 부르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