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인어공주'와 기회비용
깊고 깊은 바다 속에 여섯 명의 인어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막내공주는 언니들이 들려주는 바다 밖 세상을 동경하게 되었고,어서 열다섯 살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인어들은 열다섯 살이 되어야만 바다 밖을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 막내공주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 밖을 향해 힘차게 수면 위로 올라갔습니다. 수면 위에 다다른 인어공주가 처음 본 것은 어느 왕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배였습니다.

인어공주는 멋진 왕자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어온 폭풍우로 왕자가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왕자를 구한 인어공주는 왕자를 바닷가에 조심스레 눕혔습니다.

이때 들리는 인기척에 놀라 인어공주가 몸을 숨기자 어디선가 이웃나라 공주가 나타났고,눈을 뜬 왕자는 그 공주가 자신을 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구한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인간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인어공주의 머릿속은 온통 왕자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람이 되면 다시 왕자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인어공주는 마녀를 찾아갔습니다. 마녀는 인어공주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대신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요구하였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마녀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마녀는 인간이 되게 해주는 물약을 인어공주에게 건네주면서 왕자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약을 마시고 인간이 된 인어공주는 사모하는 왕자님을 다시 만날 수는 있었지만,왕자는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인어공주를 가엾이 여긴 언니들이 칼을 건네며 칼로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인어공주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왕자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인어공주는 왕자를 차마 찌르지 못하고 칼을 바다 속으로 던진 후 자신도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인어공주의 몸은 물거품으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렇게 죽은 인어공주는 물방울 요정이 되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착한 아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살고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와 같은 인간다운 삶의 기초적인 문제에서부터 어떤 영화를 보고 어디로 여행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부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어쩌면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선택을 해야 하는 운명을 지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학은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은 유한한 세상의 자원으로 어떻게 무한한 세상 모든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개인이건 사회이건 갖고 있는 자원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이로 인해 어느 누구도 모든 욕구를 다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대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게 된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비용 대비 만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의사결정,즉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만족과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비용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의사결정에서 비용은 '무엇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대가'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거나 들어보았을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왕자와의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되기를 결심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약과 교환한다.

즉,인간이 되기 위해 인어공주는 목소리라는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이를 기회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바다 속 자신의 세계에서 공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인어공주가 사랑을 위해 포기한 기회,다시 말해 아름다운 목소리와 공주로서의 행복한 삶을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좀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 고등학생이 대학진학과 취업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하자.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면 졸업할 때까지의 등록금과 책값 등의 비용이 발생하고,취업을 선택한다면 면접에 입고 갈 양복과 교통비 등의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비용은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으로,이러한 비용을 우리는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이 뿐만 아니다. 대학진학을 선택한 경우는 취업하여 벌 수 있었던 소득을 포기하였음을,취업을 선택한 경우는 대학진학으로 취득할 수 있었던 학사 학위와 졸업 후 좀 더 나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기회도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전적 소득,학위와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도 기회비용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하면 될까?

기회비용을 계산할 때는 눈에 보이는 명시적 비용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분명한 묵시적 비용,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해야만 한다.

인어공주의 예로 돌아가 보자. 인어공주는 물약을 얻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여기서 목소리가 바로 명시적 비용이다.

한편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인어공주는 분명 공주로서 편안한 삶을 바다 세계에서 누렸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묵시적 비용이다.

따라서 인어공주 선택이 가져오는 기회비용은 '아름다운 목소리와 공주로서의 편안한 삶'이 될 것이다.

고등학생의 선택을 통해 기회비용을 다시 한번 계산해보자.

대학진학으로 인한 기회비용은 '등록금과 책값'이라는 명시적 비용에 '취업으로 얻을 수 있었던 금전적 소득'이라는 묵시적 비용이 더해져야 한다.

또 다른 선택의 대안이었던 취업으로 인한 기회비용은 양복 값과 교통비 등 면접을 준비하는 데 드는 명시적 비용과 대학진학으로 얻을 수 있었던 학위와 더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이라는 묵시적 비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명시적 비용보다 묵시적 비용에 있다.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눈에 보이는 명시적 비용만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묵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의사결정은 선택으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을 과소평가하게 만들고, 결국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어 만족을 최대화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기회비용을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 다시 말해 경제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매몰비용이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되었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비용이다.

예를 들어보자.

홍길동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한 장에 1만원(수수료 1000원 포함)하는 티켓을 예매하였다.

이 예매권은 관람전 환불할 경우 수수료를 제외한 9000원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이때 친구가 한 장에 6000원 하는 다른 영화의 시사회권이 생겼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하였다.

만약 홍길동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로 선택하였다면,그 선택으로 포기한 것은 무엇일까?

홍길동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시사회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6000원어치의 편익과 예매티켓을 환불하여 받을 수 있었던 9000원의 편익을 포기하였다.

따라서 홍길동의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은 1만5000원(6000원+9000원)이 된다.

여기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이미 지출된 1만원은 회수할 수 없는 비용으로,홍길동의 선택에서 더 이상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매몰비용이다.

아울러 홍길동이 친구의 제안대로 시사회 영화를 관람하기로 하였다면 시사회 영화 관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편익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편익 1만원(예매권 구입 가격)보다는 크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보았을 때의 기회비용 1만5000원보다는 작다고 할 수 있다.

정원식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