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화폐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늘날 수행되는 모든 거래 행위에는 화폐를 사용한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급해야 하고,반대로 물건을 판매할 때도 그에 상응하는 돈을 수령하게 된다.

재화와 서비스 거래뿐만 아니라 노동력이나 토지 등과 같은 생산요소를 거래할 때도 화폐를 주고 받는다.

이처럼 오늘날 일상의 경제행위에 흔히 사용되는 화폐는 경제활동의 편리함과 활성화를 가져다 주어,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바 크지만,이러한 직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끼쳐 왔다.

그렇다면,화폐가 등장함으로써 인류는 어떤 영향을 받아 왔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폐가 경제활동에서 어떠한 기능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화폐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화폐가 인류 역사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폐는 크게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먼저,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medium of exchange)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화폐가 등장하기 이전인 원시시대에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거래를 하였을까?

화폐가 없던 원시사회에서 거래는 상품과 상품을 맞바꾸는 물물교환(barter) 형태로 이뤄졌다.

그런데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맞바꾸기를 원하는 물건이 일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선은 풍족한데 과일이 필요한 사람이 물물교환으로 과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생선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생선이 상하기 전까지 과일과 생선을 교환하고자 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생선이라는 재산적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재산적 가치를 상실하는 생선과 같은 물건을 가지고 원하는 물건을 얻어야 하는 원시인들은 쉽게 거래를 성사시켜 원하는 물건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원시 시대에는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약탈과 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은 원시 시대의 인류의 모습을 엿보기 위해서 아직까지 원시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마존 유역의 수렵 채집 부족들을 연구하곤 한다.

원시시대에 부족 간에 전쟁이나 다툼이 많았던 것도 아마존 유역의 부족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근대까지 남아 있었던 부족인 에콰도르의 지바로(jivaro) 부족은 남성의 60%가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인해 숨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브라질의 야노마모(yanomamo)부족의 경우에도 40%의 부족이 약탈과 전쟁에 가담하다 숨졌다고 한다.

이 두 원시 부족민은 부족하거나 필요한 식량이나 가임 여성을 얻기 위해 잦은 전쟁을 치렀다.

화폐라는 교환을 위한 매개체를 갖고 있지 않은 원시 부족들 간에는 상업적 거래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평화적으로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불가피하게 약탈과 전쟁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둘째,화폐는 가치 척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이 역시 분쟁의 소지를 막는 중요한 요소이다.

앞선 예를 계속이어서 살펴보자. 물물교환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던 그 시절, 물물교환으로 원하는 물건을 얻고자 할 때, 어렵사리 서로 바꾸길 원하는 물건이 동일한 사람을 찾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쉽게 교환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서로 상대방의 물건에 부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생선과 과일을 교환하고 싶어하는 두 사람이 만났더라도,한 사람은 생선 한 마리와 과일 하나씩을 교환하길 원하지만,다른 사람은 생선 한 마리와 과일 두 개씩 교환하길 원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두 사람이 상대방의 물건에 부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거래는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교환하고자 하는 물건의 갯수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더라도,생선의 상태나 과일의 싱싱한 정도에 따라서도 다른 가치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에 물물교환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화폐로 인해 객관적인 가치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에 약탈과 전쟁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행태는 빈번히 일어났을 것이다.

셋째,화폐는 가치의 저장수단(store of value)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화폐는 초창기부터 내구성이 좋고 가치가 상실되지 않은 금이나 은,청동과 같은 금속으로 제작되었다.

화폐가 가치를 저장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이는 신분제 사회,계급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화폐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더라도, 과일이나 곡식, 생선 등과 같이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유실되는 물건들로 세금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는 형태로 변질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부를 축척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높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지배계층은 점차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쉽게 변질되지 않은 동물의 가죽이나 토기 화살 등으로 세금을 징수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충분히 내구성이 길고,대체성이 있고,쉽게 소지가 가능한 주화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주화와 같은 화폐로 세금을 징수할 경우,징수된 세금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고, 이렇게 축적된 부를 통해서 자신의 지배 권력을 더욱 공고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 역시 청동 주화를 도입하여 원활히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력한 군주가 등장할 때마다 화폐를 주조하여 세입의 원천으로 삼은 예는 많다.

인류 역사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구분하여 바라보길 좋아했던 마르크스 역시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화폐는 노동력을 상품화하며, 정당한 노동에서 생긴 잉여는 자본 축적을 향한 자본가 계급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위해 전유되고 물화된다.”라고 적은 바 있다.

이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화폐가 가치를 저장하는 주요한 수단임을 인식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경제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탄생한 화폐는 오히려 경제 활동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경기변동이나 심지어 공황을 야기시키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에는 실제로 화폐를 교환하지 않고,외상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언제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는 어음이나 수표 등을 주고 받으면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데,이들을 흔히 신용화폐(credit money)라고 한다.

이러한 신용화폐가 등장하여 일상에서 빈번히 사용되면서 신용공황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의류수출업자가 의류생산업자에게 의류 제작을 의뢰하며 1억원을 추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그 증서로서 어음을 주었다고 하자.

1억원의 어음을 받은 의류생산업자는 직물생산업자에게 다시 그 1억원의 어음을 주고 직물을 구입할 것이고, 직물생산업자는 방적업자에게 그 1억원을 다시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의류수출업자가 도산을 하여 약속했던 1억원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의류생산업자,직물생산업자,방적업자 모두 현금을 못 받았다고 아우성 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의류 관련 업체들이 함께 모여 있던 동네의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까 두려워 신규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다.

어음이 부도나기 전에는 의류산업 단지 주변에서 이들 공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장사하던 사람들도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는 것을 보고, 경기가 순조로울 것을 예측하고 식당을 늘리는 등의 신규 투자를 감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의류산업의 도산으로 자신들 역시 예상만큼 장사가 되지 않게 되고 결국 자신들도 신규 투자를 위해 빌렸던 돈을 갚지 못하게 된다.

이들로 인해 은행은 더욱 더 신규 대출을 줄이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경기 변동이 발생하기도 하며,심지어 공황도 야기되기도 한다.

결국 어음과 수표 등과 같은 신용화폐의 등장은 경제 활동을 활발히 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지만,반대로 경기변동과 공황을 야기한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인 화폐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긍정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역할 또한 가져왔다.

화폐의 등장은 약탈과 전쟁이 줄어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화폐를 얻기 위한 수많은 범죄 또한 양산해냈다.

화폐를 통해서 쉽게 가치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이는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계급사회가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근래에 와서 화폐는 더욱 발달하여 신용화폐라는 개념이 추가되어 경제 활동을 더욱 활성화 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였지만,이는 경기변동과 신용공황을 야기시켜 많은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불행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어쩌면 화폐는 우리 인류에게 필요악인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