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서둘러 도입하자” vs 재계 “비용부담커…가능한 늦추자”
[Focus] 뭐! 온실가스배출권을 사고판다고?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두고 정부와 기업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재계는 "기업들의 부담이 커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늦춰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한발 물러선 상태지만 재계와 입장차가 확연해 합의점 도달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공장을 가동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석유와 석탄 등 탄소에너지로 인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즉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 같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것이 바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와 목표관리제다.

먼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별로 한 해 동안 공짜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을 할당받고 할당량 이상으로 배출했을 때는 초과한 양만큼의 배출권리를 시장(거래소)에서 사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할당량보다 배출량이 적으면 절약분만큼을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환경 규제를 시장 논리와 결합시킨 간접규제다.

예를 들어 한 해 1000만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받은 업체가 11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이 업체는 초과분인 100만t을 시장에서 사들여야 한다.

배출권 가격이 t당 1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연간 100억원의 환경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배출량을 줄여 900만t만 배출하면 연간 100억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

이와 달리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는 직접 규제 성격을 띠고 있다.

정부로부터 배출량을 할당받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내년부터 목표관리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 정부 "서둘러 도입하자" vs 재계 "가능한 늦추자"

배출권거래제 논란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10월17일 정부가 관련 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부터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배출량 전망치 대비 온실가스 30% 감축'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3년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기업들이 떠안아야 할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정대로 2013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면 철강 화학 기계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내 9개 업종의 매출이 연간 기준으로 최대 12조원 감소할 것이란 연구결과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돼 이산화탄소 거래 가격이 t당 4만5000원 정도에 형성된다고 가정할 경우 국내 9개 업종의 매출은 연간 11조9878억원 감소한다.

2007년 기준으로 이들 업종 매출의 1.25%에 해당한다.

t당 4만5000원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탄소배출 업종을 작성할 때 적용하는 가격이다.

철강제품을 비롯한 1차금속 업종은 매출이 연간 7조7700억원(매출의 4.27%)이나 줄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일반기계(1조1811억원)와 금속제품(9519억원)도 연간 1조원 안팎의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

이에 따라 대한상공회의소 등 18개 경제단체는 작년 12월7일과 지난 7일 정부에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연기해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박태진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를 함께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부 부처끼리도 이견

정부 내에서 환경 정책을 총괄하는 녹색성장위원회 · 환경부와 산업계를 대변하는 지식경제부가 이견을 보인 것도 배출권거래제 도입 추진이 삐걱대는 이유 중 하나다.

2013년 도입을 주장하는 녹색위 · 환경부와 달리 지경부는 시행시기를 2년 이상 늦추자는 입장이다.

내년부터 시행하는 목표관리제의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 조기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재계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지난 7일 "국제 동향과 산업 경쟁력을 감안해 유연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기존의 '2013년 도입'에서 '2013~2015년 사이에 도입'으로 늦춘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배출권거래제 도입 후 2년간 온실가스 할당량 중 공짜로 받을 수 있는 배출량의 비율,즉 '무상할당비율'을 종전 90%에서 95%로 상향 조정했고 할당량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이 배출권거래소에서 초과분을 구입하지 않을 때 부과하는 과징금 최고 한도를 온실가스 시장 가격의 5배 이하에서 3배 이하로 낮췄다.

또 배출량 허위보고 등 규정위반때 물어야 하는 과태료도 5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도입 시기를 더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거래제가 도입되면 포스코는 1년에 수천억원을 배출권을 사는 데 써야 한다"며 "철강과 석유화학 등 원자재 업종이 타격을 받으면 기계 전자 자동차도 원가 상승 압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포스코나 현대자동차 생산설비가 해외로 나가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에 공장을 짓는 것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 미국,일본,중국 등은 "시기상조"

현재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2005년 처음 시행한 유럽 31개국과 뉴질랜드다.

수출시장에서 주 경쟁국인 일본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인도 등 주요국은 도입계획 자체가 없거나 이미 세웠던 일정마저 철회하는 등 미온적이다.

미국은 지난해 '온실가스 의무보고법(MMR)'을 시행했지만 같은 해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압승하자 관련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일본도 지난해 12월28일 각료회의를 통해 도입 연기를 공식 발표했다.

중국도 2017년까지 이 제도를 도입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다.

호주 역시 지난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도입시기를 미뤘다.

재계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목표관리제를 먼저 시행하기로 한 만큼 배출권거래제는 2015년 이후 국제 동향을 보고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최진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