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A’ -> ‘AA-’로 낮춰…과다한 무상복지로 국가부채 ' 눈덩이'
[Global Issue] 신용등급 한단계 강등… 부자나라 일본의 '굴욕'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27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일본의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은 2002년 4월 이후 8년9개월 만이다.

S&P가 일본의 신용등급을 낮춘 최대 이유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를 초과하는 등 국가재정 상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이기 때문이다.

나라 빚이 한 해 동안 일본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총액보다 두 배나 많은 것이다.

사실 일본의 과도한 국가부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나라 빚은 올해 말 총 997조7098억엔으로 GDP 대비 198.4%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재정파탄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140.2%)를 웃도는 것으로,미국(92.8%)이나 독일(75.7%)과 비교해도 두 배에 달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나라살림은 괜찮았다. 국가부채는 GDP의 50~70%에서 관리됐다.

빚이 본격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다.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1990년대 장기 불황(이른바 '잃어버린 10년') 국면에 들어갔다.

10년간 이어진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출은 늘리고 감세로 세금은 줄여주면서 국가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1997년 일본의 나라 빚은 GDP 대비 100%를 넘어서게 됐다.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자민당 정권과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시도했던 재정건전화는 각각 아시아 금융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좌초됐다.

이처럼 국가 빚이 늘어났음에도 일본이 더블 A(AA)의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금융사와 기업 등 자국 내의 탄탄한 국채 투자 수요 덕분이다.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 외국인이 자국 국채를 사는 비중이 높은 남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일본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6.4%(2010년 말 기준)에 그친다.

나머지 93.6%는 일본 대형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 일본 기관투자가는 일본 국채 시장의 안정적인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매년 세입(세금 수입)보다 많은 예산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민간 부문에서 적자 보전 국채를 원활히 소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메커니즘이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Global Issue] 신용등급 한단계 강등… 부자나라 일본의 '굴욕'
나라 빚이 워낙 커져서다.

국제 금융시장에선 간 나오토 민주당 정권이 이번 S&P의 신용등급 강등을 '국가 위기'로 받아들여 확고한 재정건전화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할 수 있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은 세금을 올려 재정적자를 줄일 계획이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같은 소비세 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세금 중과는 선거와 직접 연결돼 있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은 1989년 3%의 소비세를 도입했다가 이듬해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다.

하시모토 총리 정권 당시 소비세율을 5%로 올린 뒤 총선에서 참패했다.

간 나오토 총리도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당시 소비세 인상안을 들고 나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선거에 졌다.

일본 정치가들이 소비세에 대해 큰 저항감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세저항으로 정권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지금의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하면서 재정상태를 개선시키려면 현행 물건값의 5%인 소비세를 최고 17%까지 올려야 한다.

문제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다.

집권 초기 소비세를 거론하던 간 총리도 지지율이 최근 30%대로 떨어지면서 입을 닫았다.

그는 국가신용등급 하락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런 얘기는 잘 모르고 있다.

다음에 얘기하자"며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나랏돈은 물새듯 나가고 있다.

자녀 보육수당 지급과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등 장밋빛 복지를 내걸고 2009년 민주당이 집권한 이래 국가부채는 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내년부터 단카이세대(團塊世代 · 1947~49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700만명에 대한 연금 지급이 개시되면서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잃어버린 20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의 사례는 보편적 복지 논쟁이 한창인 한국에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국가신용등급이 일본보다 두 단계 낮은 A인 한국의 국가부채는 2005년 248조원에서 2010년 394조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0년 35.2%에서 2020년 54.7%,2030년에는 103.7%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나라 빚으로 분류되는 일부 공기업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지난해 약 477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GDP 대비 44.9%로,나라 빚에 몰려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진 스페인(46.1%) 아일랜드(46%)와 이미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저출산에 따른 고령화 사회의 진입은 일본과 비슷하다. 통일을 대비한 비용도 마련해야 한다.

S&P는 최근 '글로벌 고령화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령층 관련 지출이 2010년 GDP 대비 0.6%에서 2050년에는 17.2%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연금지출 비중은 같은 기간 0.6%에서 4.4%로 늘어나고 건강보험은 4.0%에서 9.2%로 그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요양 지출에 들어가는 비용은 0.3%에서 3.1%로 늘어나 일본(1.1%→2.4%)보다 빠른 증가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정치권의 주장대로 무상 복지를 마구잡이로 늘렸다가는 국가 부도는 시간 문제라는 얘기다.

장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