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한국현대사 따뜻하게 보듬은 타고난 이야기꾼
[Focus] 한국문학의 큰 별 박완서 선생 ‘더 아름다운 길’ 로 떠나다!
한국 문학의 거목이자 큰 별인 소설가 박완서씨가 지난 22일 새벽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지난해 9월 담낭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날 세상을 떠났다.

불혹의 나이(40세)에 혜성처럼 우리 곁에 나타나 40년간 수많은 소설과 수필을 쓰고 떠난 고(故) 박완서 선생은 국내 현대 문학계의 '어머니'이자 '국민 작가'로 불린다.

그는 일제 시대였던 1931년 현재 북한 지역인 개성 외곽의 개풍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그해 여름 6 ·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신입생 생활을 채 마치지 못하고 중퇴한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오빠가 여덟 달 만에 죽고 가족들이 차례로 '빨갱이'와 '반동'으로 몰리며 수난을 겪었던 전쟁의 상처는 그를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동기가 됐다.

"6 · 25전쟁 통에 오빠와 삼촌을 잃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때,그걸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언젠가는 저 자들을 악인(惡人)으로 등장시켜 마음껏 징벌하는 소설을 쓰리라는 복수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증오와 복수심만으로는 소설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그는 1970년 한 잡지의 장편소설 현상 공모에서 '나목(裸木)'이라는 작품이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주부로 살던 40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열었던 것이다.

그는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싸우고 증오하며 죽이는 전쟁의 고통,견디기 힘든 가난,분단의 슬픔,1970~80년대 산업화로 인한 빠른 사회 변화 등을 모두 겪으며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생생하게 되살려 놓았다.

등단작 '나목'도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박씨는 실제로 미군기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이 작품 속 주인공도 한국 전쟁 중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이경이라는 처녀다.

전쟁 통에 오빠들이 폭격으로 사망하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은 이경은 서울 명동의 미군 PX(매점) 초상부에서 미군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옥희도를 만난다.

이경은 '황량한 풍경'이 담긴 눈을 진짜 예술가 옥희도에게 끌린다.

옥희도는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설은 한 여자가 전쟁 이후 예술과 현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고인이 생전에 가장 아낀 작품이기도 했다.
[Focus] 한국문학의 큰 별 박완서 선생 ‘더 아름다운 길’ 로 떠나다!
전쟁은 그에게 중요한 글쓰기의 소재였다.

그는 생전에 "사람들이 또 전쟁 얘기를 우려먹느냐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아직도 그 기억은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향을 잃어버린 한(恨)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개인의 체험으로 내면화해 마침내 사랑과 화해,용서의 서사로 승화시켰다. 소설 '엄마의 말뚝'과 '그 남자의 집'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이 대표적인 소설들이다.

15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1930년대 고향인 개풍에서 꿈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 보낸 20대의 모습,전쟁으로 무참히 깨져버린 가족의 단란함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박완서 선생은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청년' 등에서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중산층의 속물화된 일상과 허위의식,세속적 탐욕을 신랄한 문체로 꼬집었다.

'휘청거리는 오후'는 결혼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사회의 풍속도를 그린 세태소설로 각기 삶의 방식이 다른 세 딸을 둔 허성씨 집안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그렸다.

'서 있는 여자'에서는 여성의 선택 실패,홀로서기의 과정을 표현하며 여성의 삶을 진지하게 다뤘다.

박완서 선생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진솔하게 고백한 산문들을 통해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는 1988년 남편을 병으로 잃은 후 당시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 과정에 있던 막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연이어 떠나보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나 좀 데려가 달라"고 목놓아 울부짖던 그녀는 이해인 수녀와의 대담을 묶은 '대화'라는 산문집에서 다시 삶의 의욕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노년에는 '부숭이의 땅힘'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등 동화집을 쓰며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기쁨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 애썼다.

그는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만해문학상,인촌상,황순원문학상,호암예술상,대한민국문학상 등과 보관문화훈장을 받을 만큼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대중적 인기도도 높아 수많은 독자들을 문학의 세계로 안내했다. 사람에 대한 세밀하고도 따뜻한 묘사,인간의 내면을 거침없는 서사로 표현할 줄 아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을 박완서씨를 '영원한 현역'이라고 불렀다. 최근까지도 펜을 놓지 않고 쉼없는 집필 활동과 강연,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일단 심사위원직을 수락하면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지 않고 격렬하게 토론하는 등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작년 7월에 쓴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필요한 사람이고 싶고,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권혁웅씨는 "영원한 현역이란 정신적 의미의 생산성을 말하는 것인데 작가 스스로 최신작을 포함해 책을 많이 읽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새로워져야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절친했던 후배 소설가 이경자씨는 "선생은 이제야 비로소 현역에서 은퇴하셨지만,살아오신 삶의 흔적과 그의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진짜 영원한 현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혜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