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업단지 일대 정전으로 공장가동 중단 사태도
[Focus] 겨울 한파로 전력 사용량 사상 최대… 전력 대란 현실화
최대 전력 사용량이 지난 17일 낮 12시 사상 최대인 7314만㎾를 기록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전남 여수산업단지 일대 정전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전력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겨울의 한가운데인 1월 중순인 데다 앞으로 이 같은 한파가 또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돼 전력 대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추운 겨울 난방을 전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향후 한파의 정도에 따라 비상상황인 예비전력 400만㎾를 사수하는 일도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계속 빗나가는 정부의 수요 예측

올겨울 정부가 예상한 최대 전력 사용량은 7250만㎾였다.

하지만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이날 전력 사용량은 정부의 예상치를 64만㎾나 웃돌았다.

당국의 예상이 1월이 채 지나기 전에 빗나간 것이다.

정부의 수요 예측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는 과거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2002년 '전력수급계획'을 발표하면서 2010년 최대 전력 수요를 6062만㎾로 전망했다.

여기에 맞춰 공급능력을 7582만㎾ 확충하고 공급 예비율(최대 전력수요 대비 예비전력 비율)을 25%로 맞출 계획이었다. 이런 예측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해 최대 전력 사용량은 7131만㎾로 당초 정부 전망을 17.6%(1069만㎾) 초과했다.

전력 예비율도 당초 계획에 턱없이 모자라는 6.2%에 그쳤다.

전력 수요 증가를 처음부터 잘못 예측한 탓이다.

2002년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할 당시 정부는 2015년까지 전력 사용량이 연평균 3.3% 늘어날 것으로 봤지만 실제로는 2000년대 들어 전력 사용량은 연평균 5.7%나 늘어났다.

한국전력이 적자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한전은 2008년 2조9525억원,2009년 777억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에도 3분기 말까지 511억원 적자(당기순손실)를 내면서 발전소 건설,송 · 배전 설비 투자 등을 위한 재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 전력대란 당분간 계속될 듯

전력대란은 앞으로 2,3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작년 말 내놓은 '제5차 전력수급계획'을 보면 2024년까지 원자력발전 14기,석탄화력발전 15기,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 19기,수력 · 양수발전 2기가 더 건설된다.

노후 발전설비가 19기 폐기돼 398만㎾의 공급능력이 감소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전력공급은 4000만㎾ 가까이 늘어난다.

하지만 2013년까지 뚜렷한 대책이 없다.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13년까지는 최대 전력소비량 대비 예비전력의 비율은 1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6.6%,2012년 7.3%,2013년 8.6%로 높아지더라도 안정권인 10%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력소비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경우 예비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정부는 2014년 예비율이 13.9%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름이나 겨울철 전력수요를 줄여 제대로 관리했을 때의 수치다.

지금처럼 난방을 전기에 의존하는 행태가 지속되면 전력 수급 불안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발전소 추가 건설이 절대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발전소 건설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140만㎾급) 1기 건설에 10년간 약 5조원이 투입돼야 하고,석탄화력발전소(200만㎾급)는 4년6개월간 3조원 이상이 투입돼야 한다.

⊙ 전기요금 체계를 바꿔야

난방을 위해 전기를 사용하는 수요가 겨울철 전력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17.8%에서 지난해 24.4%로 늘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두다 보니 가스나 등유 난방이 지속적으로 전기 난방으로 몰리는 현상을 사실상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싼 전기료에 가스나 등유로 난방을 하던 사람들이 전기로 난방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정부의 가격정책 실패는 등유와 전기요금의 가격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등유 가격이 98% 오르는 동안 전기요금은 12%만 올랐다. 등유 가격은 국제 에너지 가격에 연동돼 오른 반면 전기요금은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계속 인상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가격 억제로 전기요금은 원가의 93.7% 수준에 불과하다.

100원짜리 전기를 94원도 안 되는 가격에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농업용은 36.5%,심야전력은 73.9%에 불과하다. 전체 전력 사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도 96.5%로 원가보다 낮다.

소비패턴은 왜곡됐다. 이 기간 등유 소비가 67% 감소한 반면 전기 소비는 42% 증가했다.

국내 에너지 소비에서 등유 등 석유제품의 비중이 59.9%에서 53.8%로 낮아진 데 반해 전기는 14.9%에서 18.6%로 늘었다.

따라서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스나 석탄 중유를 태워 생산되는 전력의 가격을 현실화해야 가격의 수요조절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이 비싸다면 전기를 낭비하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게 된다.

⊙ 정부는 예비전력 400만㎾ 지키기 안간힘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마지노선인 예비전력 400만㎾ 지키기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18일 '에너지수요 전망 및 대책'을 발표하고 24일부터 2월18일까지 4주 동안 백화점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건물 441곳에 대해 실내온도를 20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174개,업무시설 113개,교육시설 68개,숙박시설 54개,기타 32개 등이 해당된다.

정부는 시행 기간 이들 건물에 대해 실태점검을 실시하고,불이행 건물에 대해서는 시정명령과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오전 11시에서 낮 12시에 몰리는 전력피크 분산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수도권 전철 등 도시철도의 운행 간격을 현행보다 1~3분 연장하고,오전 11시부터 정오까지 전국을 6개 지역으로 구분해 대형사업장과 건물의 개별난방기를 지역별로 10분씩 차례로 끈다.

공공기관의 난방기 사용은 오전 11시부터 낮 12시,오후 5시부터 6시 등 2회 중단한다. 이처럼 전력 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 전력이 집중되는 시간을 분산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정부의 전망이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