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튀니지 등 폭동으로 대통령 쫓겨나···인도·중국 등도 인플레 '몸살'

[Global Issue] 연초부터 치솟는 식료품 값···지구촌 물가 대란 재연 되나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가 식품 값 인상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기상이변으로 생산량이 떨어진 옥수수,콩,밀 등의 값이 오르자 식품가격이 상승으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알제리,튀니지 등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과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대통령이 쫓겨났고 인도,중국에서는 물가상승으로 인한 정치,사회적 불안까지 확대되고 있다.

흉작에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및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과도한 유동성이 겹치면서 2008년 세계를 강타한 식품대란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기준금리 인상과 인위적 가격통제까지 가능한 수단은 총동원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힘에 부친 모습이다.

세계은행은 지난 13일 발표한 글로벌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식품 가격 상승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2008년과 비슷한 상황이 목격된다"고 지적했다.

⊙폭동,반정부 시위로 혁명까지

높아진 물가에 세계 각지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알제리와 튀지니에서는 청년 실업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튀니지에서는 23년간 집권한 밴 엘리 대통령이 외국으로 도주하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다.

알제리 정부는 지난 5일 주요 수출 품목인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인해 식료품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식용유와 설탕가격이 이달 들어서만 20% 가까이 오르자 젊은 실업자들은 1월 중순 폭동을 일으켰다.

국제통화기금(IMF)자료에 따르면 알제리 인구의 75% 정도가 25세 미만의 젊은층이며 알제리의 실업률은 30%에 달한다.

이 폭동으로 3명이 사망하고 약 300명의 경찰을 포함해 4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도에서는 만모한 싱 총리의 정치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 2010년 잦은 비로 카레 주 재료인 양파 생산이 줄고 유통업자들의 사재기가 겹치면서 최근 몇 주간 양파 값이 1년 전에 비해 5배 가까이 오르자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인도의 일간지 이코노믹타임스는 "역대 정부가 양파가격 조절에 실패했을 경우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며 "싱 총리가 취임 이후 최대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다.

중국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물가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물가불안은 곧 정부에 대한 불신과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구이저우성 류판수이 제2중학교(중국은 중 · 고교를 중학교로 통칭) 학생 수백명이 음식 값 급등에 항의,식당에 몰려들어 식판과 유리컵을 던지며 시위와 농성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식품가격 상승이 빈부차에 따른 사회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분석이다.

인플레이션 가능성도 높아졌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5일(현지시간) 2010년 12월 세계 식품가격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214.7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6개월 연속 상승세다.

아이티와 이집트 등에서 곡물가격 급등으로 세계 약 30개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던 2008년 6월의 213.5보다 높은 것이다.

특히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BRICs국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의 지난해 11월 중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5.1%로 나타났고 12월은 4.6%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1.7% 상승한 식품가격이 물가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식품가격은 CPI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브라질의 2010년 물가상승률도 2004년(7.6%) 이후 6년 만에 최고치인 5.9%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2010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7%를 기록하며 정부의 연간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7%를 넘어섰다.

인도는 18.32%까지 치솟았다.

지난 10일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회의에서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인플레이션 위협은 선진국 경제에서보다는 이머징 마켓에서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모든 수단에도 역부족

인플레가 상대적으로 심한 신흥국들은 금리 인상과 같은 전통적인 물가안정책뿐 아니라 식품에 붙는 세금을 낮추고 수출입 관리를 강화하면서 직접적인 가격통제까지 나서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최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생필품 수입 제한을 없애고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수백만명이 수입의 50% 이상을 식품구입에 쓰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금리인상과 같은 통화정책만으로 물가를 잡는 데 한계가 있자 계획경제 시절에나 나올 법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인도는 앞서 양파 수출을 금지시킨 데 이어 양파 부족분 5000t을 외교적 앙숙인 파키스탄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지난 4개월간 두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 중국도 이미 생필품에 대한 직접적인 가격통제 방침을 밝힌 상태다.

심지어 채소를 실은 트럭은 통행세를 면제하는 등 갖가지 방안이 시행된다.

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식품에 붙는 세금을 낮추거나 가격을 규제하고 공급을 늘리는 조치에 나섰다.

알제리에서는 설탕과 식용유 수입관세,부가가치세 및 법인세를 일시적으로 면제했다.

이집트 정부도 알제리와 튀니지 같은 정부 전복의 위험에 직면했다고 보고 식품 보조금 지급 등 물가안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도 밀과 시멘트 수입분에 대한 관세부과 방안을 연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최근의 곡물가격 상승이 아직 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의 곡물가격 폭등사태 때도 약 7개월의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됐다.

국제 밀 값은 2008년 3월에 가장 높았지만 세계 식품가격지수는 그해 7월에 206.5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FT는 "국제 곡물가 강세의 영향이 상반기에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 상승 원인인 곡물 부족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줄어든 생산량에 올해도 작황이 그리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라니냐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예보가 나오면서 주요 곡물 생산국들의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FAO는 올해 곡물 수요량이 1.3% 증가한 22억5400만t으로 예상돼 전체적으로 3800만t가량의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FAO는 "상반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옥수수 수출국의 추수 시즌이 다가오지만 가뭄으로 작황이 나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국제식품정책연구소의 맥시모 토레오 부장은 "식품값 급등에 따른 사회소요 소식은 투기와 패닉 수준의 매입을 부추겨 식품 값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은행이 보고서를 통해 식품가격 급등이 빈곤국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2008년 글로벌 식량위기 때 나왔던 국제기구의 식량위기발 사회불안 경고가 잇따를 조짐이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