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무사안일 몸에 밴 공직사회에 경종”

반 “예상 못한 부작용 초래할 수 있어”

이명박 대통령의 소위 '한마디 정치'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대불공단 전봇대 옮기는 것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안 됐다"는 발언으로 시작해 최근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의 행태가 묘하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질책성 발언을 해왔다.

그런데 사전에 의도한 것이든 아니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든, 대통령 특유의 이런 '화법'이 과연 바람직한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각종 규제가 때로는 하루 아침에 폐지되기도 하고 기업들의 부당이득 추구행위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직접 거론해가며 참견하기 시작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발언이 전해지면 관련 정부부처는 물론 지적 대상이된 업계나 기업들이 화들짝 놀라 발칵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정부나 해당 업계 측에서 즉각적인 시정조치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고 최소한 개선 방안이라도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상례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한편에서는 '후련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게 과연 민주국가에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관련 정부 부처나 업계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소위 한마디 정치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무사안일이 몸에 밴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측면이 있다"

관료주의가 만연한 행정부 조직에서는 관련 법령이 바뀌거나 상부의 지시가 떨어져도 좀체로 그때그때 신속하게 현장까지 이런 법령이나 지시사항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분명히 중앙에서는 지시가 내려갔지만 일선에서 이것이 전달되고 실제로 변화가 생기려면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이해가 걸리지 않은 일이니 급할 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고 결과적으로 민원인들에게 불평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 대통령의 한마디 정치도 바로 이런 답답함에서 나온 것이며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볼 때 필요한 부분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도 "책상머리에만 있지 말고 현장을 잘 살펴 선제적 대응을 하라고 대통령이 숱하게 지시했지만 이게 제대로 안돼 답답함을 표출하는 특유의 계산된 발언"이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이 온갖 질책을 가해도 공직자들은 지시 사항만 챙기고 주요 정책을 강단있게 밀어붙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여전하다"며 "민생에 직결되는 분야까지 대통령이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뒷북행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한마디로 무사안일과 소극적인 자세가 몸에 밴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으로 특히 이 대통령 취임 초기 강하게 드라이브가 걸렸던 각종 규제 완화도 대통령의 소위 '전봇대' 발언이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특히 관료들의 게으름이나 대기업의 횡포를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수 서민들이 반기는 분위기다.

⊙ 반대 측,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대통령이 개별 사안에 대해 너무 일일이 간섭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규제 혁파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지적하는 전봇대 발언과 같은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가격 금리 등 시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까지 관여하게 되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도 "대통령은 큰 방향을 제시해야지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미시적인 가격까지 언급하면 현장 실무자들이 시장 자율과 관치 사이에서 혼선을 겪는 등 부정적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최근 대통령의 유가 발언도 환율 변동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했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참모들의 제대로 된 조언을 받았는지 의심스럽다.

충분한 고려 없는 발언은 권위에 훼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유가 부분에 대해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주유소들이 일제히 리터당 20원씩 가격을 내렸는데 주유소들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유가 결정 메커니즘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기름값이 오르니 막연히 주유소를 비난한 것 같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뒤늦게 "유가를 내리라는 취지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과거 권위주의적이고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지만 지금처럼 민주화된 시대에 대통령 한마디로 당장 가격이 바뀌고 규제가 없어지는 일은 결과가 어떻든 결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해야"

우리 헌법은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특히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고 관여할 수 있는 분야도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최고 통치자에 비해 넓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분야에서든 대통령이 모두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통령이 가격이나 금리 등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다.

이번 주유소 기름 값은 가격에 대한 것이고 지난해에는 금리도 언급했다.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사의 이자가 왜 그렇게 높냐"고 한 것이다.

당시 캐피털사들은 떠밀리듯이 이자율을 낮췄지만 대신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해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대출 문턱만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오기도했다.

대통령의 한마디 정치가 걱정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장기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시가 현장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 답답함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진심이 무엇이든 그것이 현장에 전달될 때는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더욱이 대통령이 실상을 잘 모르고 발언한 것으로 밝혀지면 대통령의 권위만 떨어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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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월 15일자 A6면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한마디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대불공단 전봇대'에서 시작,최근 "기름값이 더 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관료사회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들까지 바짝 긴장하게 하는'질책성 한마디'를 멈추지 않고 있다.

관료사회의 무사안일을 깨우쳐 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대통령이 시장경제에까지 미시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호통성 발언으로 공직사회와 민간 기업이 발칵 뒤집힌 사례가 많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전남 대불공단 전봇대를 옮기는 것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안 됐다"고 질책하자 유관기관에선 전봇대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 축산농가를 방문한 후 "축사를 짓는 데 비상구 표지판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소가 비상등을 보고 나가나"고 질타한 후 소방방재청은 부랴부랴 소방규제 완화에 나섰다.

"(잉여인력을) 태스크포스(TF)로 편법 관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각 부처는 TF팀을 대거 해체했다. "농협은 몇 조원씩 벌어 사고나 치고…"라는 질책은 농협개혁을 촉발했다.

"생활필수품 50개 품목의 물가를 관리하라"는 지시가 있자 과천 관가는 정확히 무슨 품목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느라 허둥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운전학원비가 비싸다는 지적을 한 지 1주일 만에 정부는 운전면허 기능시험 폐지 방안을 보고했다.

지난해 7월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고 하면서 시장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9월 이 대통령이 "비싼 배추로 만든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먹는다"고 하자 양배추가 오히려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