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돈 많이 풀리거나 원자재값 오르면 껑충…환율에도 영향 받아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원인은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의 두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하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수요가 증가할 경우 가격은 오르게된다.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 물가가 오르는 것을 수요 견인인 플레이션(demand-pullinflation)이라고 한다.

공급측면의 원인에 의해서도 물가는 오를 수 있다.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거나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의 생산비가 증가해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상기후 등으로 농산물 생산이 급감해 가격이 오르는 일도 있다.

이처럼 공급 및 비용 측면의 원인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비용 인상인 플레이션(cost-pushinflation)이라고 한다.

▶ 물가는 왜 오를까

⊙ 국제유가 상승,공급 충격으로 물가 급등

최근 한국의 물가 상승세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보다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석유 가격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해 5월 배럴당 60달러대 후반에 머물렀으나 이후 상승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90달러를 넘어섰다.

각종 산업의 원재료로 쓰이는 구리 가격은 지난해 6월 t당 6130달러까지 내려갔으나 최근에는 9500달러까지 뛰었다.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업의 원가 부담을 높여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2주~1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가 0.2%포인트 높아진다.

유가가 상승하면 전기 가스 등의 생산원가가 비싸져 공공요금도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물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당분간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원가가 상승하는데도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그만큼 공기업의 경영이 악화되고 이는 결국엔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농산물은 최근 폭설과 추위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겨울배추 생산량이 31만2000t으로 평년의 37만9000t보다 17.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일류는 지난해 작황이 부진했던 게 올해 상반기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배 생산량은 30만8000t으로 평년 대비 29.9% 감소했고 감귤 생산량도 56만9000t으로 평년보다 15.8% 줄었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가공식품과 외식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만큼 가공식품업체와 외식업체의 원가 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라면 과자 두부 등의 가격이 오른 것도 원재료인 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한국처럼 주요 원자재와 곡물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환율도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면 외국에서 수입하는 물건의 가격이 높아지고 이는 곧 국내 판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은은 원 · 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1~6개월 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포인트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도 가시화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경기가 침체돼 있을 때는 소비와 투자가 활발하지 않아 수요 측면의 원인에 의해 물가가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경기가 살아나면 각종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올해는 근로자들의 임금이 상승,가계 소득이 증가하면서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임금 상승은 가계의 구매력을 높여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률은 2008년 3.1%였고 2009년에는 -0.7%였으나 지난해 3분기에는 7.8%로 높아졌다.

임금 상승은 또 기업의 비용을 높인다는 점에서 비용 측면의 물가 상승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에 엄청나게 풀린 돈(유동성)도 물가 상승의 한 요인이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 인상은 작년 11월 0.25%포인트 이후 2개월 만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물가상승 압력과 높아진 인플레 기대심리를 어느 정도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연 2.75%의 금리도 적정 수준보다는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실제 물가 상승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가격이나 임금을 스스로 올림으로써 연쇄적인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일부 음료업체들은 원재료인 설탕 가격이 10%가량 올랐다는 이유로 음료 가격을 4~7% 안팎 인상했다.

그러나 음료업체들의 원가에서 설탕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해 설탕 가격이 10% 오르더라도 전체적인 원가 상승률은 0.45%밖에 안 된다.

소비자가격을 0.45%만 올리면 설탕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을 만회할 수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 셈이다.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선제적인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다.

⊙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 선행지표

물가가 얼마나 오르고 있는지는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물가지표는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가계 소비지출액에서 비중이 높은 489개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상승률을 가중치에 따라 평균한 것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9% 상승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채소 과일 어류 등의 가격을 나타내는 신선식품지수는 21.3% 상승,1994년(23.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은은 생산자물가지수와 수출입물가지수를 발표한다.

생산자물가는 생산자가 공급하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공산품은 공장도가격,농수산물은 도매시장 경매낙찰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공장도가격과 농수산물 도매가격이 오르면 소매판매 가격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3% 상승,2008년 12월(5.6%)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수출입물가는 수출 및 수입 상품의 가격 변동을 집계하는 것이다.

수입 가격 상승은 국내 판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것으로 경제 전반의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명목 GDP는 해당연도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질 GDP는 명목 GDP를 과거 기준연도의 가격으로 환산한 것이다.

따라서 기준연도에 비해 물가가 많이 오를수록 명목 GDP가 실질 GDP보다 커지게 된다.

즉,GDP 디플레이터가 높을수록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을 뜻한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