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기반 이미 무너져"···생매장 방식으로 동물학대 논란·2차오염 우려 증폭

▶ 구제역에 흔들리는 축산업
[Focus] 소·돼지 10마리 중 1마리꼴 살처분···피해액 1조원 훌쩍 넘어
대한민국이 구제역으로 떠들썩하다.

지난해 11월 말 처음 발생해 해를 넘겨 번지고 있는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는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66년 만에 구제역이 재발한 2000년 이후 4차례의 구제역을 합친 피해액(5970억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축산농가의 피해도 문제지만 축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포지역은 가축의 70% 이상을 땅에 묻었다.

"소 · 돼지를 가장 많이 기르던 월곶면을 중심으로 도살 처분이 급증하면서 앞으로 상당 기간 가축을 기를 엄두를 못 낼 것"이라고 김포시청 관계자는 말했다.

첫 발생지인 경북 안동시는 상황이 더 나쁘다.

안동시의 한 관계자는 "(축산 기반이) 이미 무너졌다"고 밝혔다.

이번 구제역은 한우 사육 국내 1위인 경북, 젖소 1위 경기, 돼지 1위인 충남을 덮쳤다.

한우, 젖소, 돼지 사육 규모별 상위 3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구제역에서 비켜나 있는 곳은 전남(한우 2위)이 유일하며, 국내 최고의 명품 한우를 생산하는 강원도 횡성까지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 구제역이란

구제역은 소와 돼지 등 가축에 대한 전염성이 높은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하나다.

사슴이나 염소, 양과 기타 발굽이 둘로 갈라진 가축들 및 코끼리, 쥐, 고슴도치 등도 감염된다.

감염된 가축은 고열이 발생하지만 이틀에서 사흘이 지나면 열이 가라앉는다.

또 입 속에 생기는 수포로 인해 거품이 많고 끈적끈적한 침을 심하게 흘린다.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 그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까지 엄격하게 통제하는 이유는 사람이나 차량을 통해 다른 가축에게 간접적으로 전파되는 경우를 대비해서다.

구제역은 농가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주변 농가로의 전염이 빠른 편이기 때문에 엄격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구제역에 감염된 고기가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은 발견 즉시 도살, 매몰되기 때문에 유통이 되기 힘든 것이다.

설혹 구제역에 감염된 고기를 먹게 되더라도 구제역 바이러스는 섭씨 50도씨 이상의 온도에서는 모두 파괴되기 때문에 조리된 고기나 살균 처리된 우유는 모두 안전하다.

⊙ 10마리 중 1마리꼴로 도살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도살처분된 가축은 지난 9일 기준으로 소가 10만 4060마리, 돼지가 117만4767마리다.

소 · 돼지 10마리 중 1마리 꼴로 도살된 것이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파로 인해 구제역 방역을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방역 효과가 좋은 액상 소독제가 얼어붙어 사용할 수 없는데다 강추위 속에서 살처분과 매몰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황순길 강화군 축산팀장은 "통행 차량에 소독액을 뿌려도 바로 얼어버려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제역과의 싸움'에 총동원된 공무원들의 피로 누적도 문제다.

현재 강화군청 소속 공무원들은 주말도 잊은 채 24시간 비상근무를 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가축을 죽여 구덩이에 묻어야 하는 데 따른 정신적 피로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량 한우 품종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경북축산기술연구소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하지만 경상북도와 연구소 측이 이런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영주시 안정면 축산기술연구소에서 관리 중이던 암컷 재래종 칡소 한 마리가 지난 2일 구제역 증세를 보여 정밀 검사를 의뢰한 결과 사흘 뒤인 5일 오후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경상북도와 연구소 측은 이 같은 사실을 농림수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소가 소장 개인 이름으로 검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제역이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축산기술연구소까지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경상북도의 우량 품종 개발 사업이 큰 차질을 빚게 됐다.

⊙ 2차오염 비상

구제역 살처분 대상 가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안락사에 필요한 약품 공급이 끊겨 전국적으로 '돼지 생매장'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살처분을 위한 약물 공급은 지난해 12월29일부터 끊겼다.

이 약물을 독점 공급하는 제약회사의 비축분은 물론 원료까지 바닥나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매장으로 인한 동물 학대도 논란이지만 더 큰 문제는 생매장이 2차 오염 우려를 높인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가축들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비닐이 찢겨 침출수가 새어나와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일 오후 5시께 파주시 광탄면 김 아무개씨(61)의 개 사육장에서 평소 실수로 끌어 쓰던 계곡물에서 핏물이 섞여 나왔다.

이 마을에서는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돼지 3000여마리를 살처분해 이 사육장 인근 야산에 묻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돼지들이 매립된 장소 옆에는 붉은 침출수가 고여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며 생매장을 해 왔지만 2차 오염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마저 강행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영국의 경우 2001년 3월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가축 살처분 방식으로 약 130마리만 매립하고 나머지는 소각 처리했다.

이원본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구제역이 발생하면 3㎞ 범위까지 모든 소,돼지를 살처분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며 "EU(유럽연합), 일본 등 외국에서는 구제역 발생 농가의 동물만 살처분할 뿐 500m 내의 동물에 대해서는 이동금지, 진단강화, 방역 강화 등의 조치만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대처 방안 찾기 분주

일단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생산성이 크게 저하돼 농가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히기 때문에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선 도축장 영업자, 가축 분뇨 사료 약품 수송차량 운전자는 영업자 및 농장 출입시 차량소독을 철저히 하고, 다른 농장에서 사용한 장비나 차량은 빌려오지 말아야 한다.

또 외국인 근로자 고용농장에서는 외국인 외출시 행선지를 파악하고, 외출 뒤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소독한 후 축사에 출입하도록 하는 등 방역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 방문을 자제하고 매일 가축의 상태를 관찰해 구제역 의심증상(심한 침흘림, 물집, 보행이상 등)이 보이면 즉시 가까운 가축방역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구제역 피해농가에는 국가가 보상해준다.

살처분 농가에는 해당 가축 시세의 100%를 지급하며 농가가 수익을 다시 낼 때까지는 생계비를 지원해준다.

소득세 등 세액 일부를 공제해주거나 세금 납부기한도 연장해준다.

유지영 인턴 기자(한국외대 경제학과 4년)

jiyoung042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