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소비자 편익 증대···선택권 인정할 필요있어”

반 “약 오남용 우려···국민건강 위해 신중해야”

일반의약품의 슈퍼마켓 판매를 허용할 것인가 하는 해묵은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의 불씨는 대통령이 지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감기약을 사먹는데 한국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후 시민단체들이 줄줄이 일반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해열제 소화제 등 일반의약품을 사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등 1993년 제기된 이후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대해 또다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건강복지공동회,소비자시민모임,바른사회시민회의 등 25개 시민단체는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해 서명운동과 입법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대한약사회 측은 안전성이나 약의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국내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그렇지 않은 일반의약품으로 나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문의약품 품목은 약 2만1000여개,일반의약품은 1만7000여개인데 의사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도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

소화제 지사제 진통제 진해제 등 구급용 의약품을 약국 외에서 사려면 의약품을 재분류해야만 한다.

시민연대는 일반의약품을 재분류해 약국에서 팔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다시 나누자는 입장이나 약사회 측은 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소비자 편익과 선택권 인정해야"

시민연대는 약국이 문을 닫는 주말이나 심야에는 국민들이 커다란 불편을 겪고 있으므로 국민 편익 증대 차원에서 약국 외 판매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원의사들의 모임인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도 같은 목소리다.

대부분의 의료 선진국처럼 인체에 미치는 약리학적 영향이 경미하고 부작용의 우려가 없는 의약품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늦은 밤이나 공휴일에 감기약이나 반창고 등의 일반의약품을 구입하려면 문을 여는 당직약국을 찾아 헤매야 할 형편이고 전국에 100여개에 불과한 심야응급약국 또한 도시에 몰려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권용진 서울의대 교수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편의점 등에서의 판매를 허용하되 일부 일반의약품에 한해 실시하고 판매량과 연령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면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송기민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시민연대 측은 보험재정 안정과 편의도 강조한다.

슈퍼 판매 도입으로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횟수가 줄면 진료비가 줄어들어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병원이나 약국을 오가며 드는 비용과 시간도 줄어 소비자 편의가 증대할 뿐만 아니라 약을 제때 못 먹어 추가로 드는 비용도 절감된다고 강조한다. 시민연대 측은 약사회가 주장하는 안전성 문제도 반박했다.

5년 이상 장기간 부작용 보고가 없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의약정보가 부족한 어린이 등을 제외한 일반인에게 판매하도록 하면 문제 없다는 것이다.



⊙ 반대 측,"약의 오남용 등으로 국민 건강이 걸린 문제인 만큼 신중해야"

약사회는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는데 슈퍼에서 팔린 의약품이 문제가 될 경우 책임질 주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약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해당 약품을 즉각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조치는 약국만이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병식 대한약사회 부장은 "우리나라의 약국당 인구는 2300여명으로 우리나라의 약국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접근성이 좋은 나라에선 편의보다는 안전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의약품 중 '게보린''타이레놀'처럼 복약에 주의해야 하는 약이 늘고 있다는 게 약사회의 주장이다.

약사회는 "미국에서 매년 15만건의 의약품 부작용 사례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7000명에 이르는 것도 일반약의 슈퍼 판매를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약국과 슈퍼 모두에서 판매하는 동일한 음료의 가격이 약국이 더 싼 점도 허용 반대 이유라고 약사회 측은 덧붙였다.

시장조사 결과 숙취해소 음료인 '여명808'이 슈퍼에서는 4500원 선이었지만 약국에선 3500원 선으로 조사됐고 '컨디션파워''모닝케어' 등도 약국이 600~700원 정도 저렴하다는 것이다.

최상은 고려대 약대 교수는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가 얼핏 복잡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일반의약품에는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약들이 상당 수 포함돼 있어 처방의약품과 함께 투여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약들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 외국의 사례는

미국 일본 영국 스웨덴 캐나다 등은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의약품에 한해 슈퍼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는 의약품을 OTC(over-the-counter)로 분류하는 미국은 10만개 품목을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은 1998년 4월부터 일부 일반약(드링크제 비타민제 등 15개 품목)의 소매점 판매를 허용한 데 이어 2004년 7월 안전상의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소화제와 정장제 등 371품목의 판매를 추가로 허가했다.

2009년에는 '등록판매자 제도'도 신설했다.

등록판매자는 약사가 아니어도 지자체가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해 실무경험 1년 이상을 쌓으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수시로 의약품을 재분류하는 영국은 진통제 피부연고제 소화제 등을 자유판매약으로 지정해왔다.

반면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핀란드 그리스 슬로바키아 등은 한국처럼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외국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문제는 결국 전면적인 허용이나 금지의 문제가 아니라 약의 안전성 등을 감안해 어느 선까지 허용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는 아직도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못하고 있지만 더 이상 미룰 문제는 아니며 구체적으로 슈퍼 등에서 팔아도 안전성에 상관이 없을 약품의 종류를 정하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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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감기약 등의 슈퍼마켓 판매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3일 의료계와 시민 · 사회단체 등에 따르면 건강복지공동회의와 소비자시민모임,바른사회시민회의 등의 25개 시민단체는 오는 6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들 시민단체는 약국 개설자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 현행 약사법(제44조 의약품 판매) 때문에 주말이나 심야에 가정상비약을 구입하는 데 겪는 불편을 성토하고,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 등 관련 제도의 개선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이들 단체는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했으며 공동대표로 김재옥(소비자시민모임 회장),박양동(건강복지공동회의 공동대표),배준호(건강 · 복지사회를여는모임 공동대표),임구일(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사)씨 등을 선임했다.

시민연대는 앞으로 대국민서명운동과 국회 입법청원,정부 및 정당 관계자와의 면담,가정상비약 선정을 위한 의약품 분류작업 참여 등의 활동을 적극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한경닷컴 1월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