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8년간 브라질 고도성장 이끌어…실용주의로 경제 기적 이끌어
'올레 룰라! 올레 룰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바드로메 경기장.
지난달 20일 이곳엔 축하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경기장엔 8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매년 2월 중순 삼바축제가 열리는 이곳이지만 이번엔 주인공이 따로 있었다.
퇴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을 위해 국민들이 연 축하행사였다.
브라질 시민들은 행사 내내 룰라를 환영한다는 뜻의 '올레 룰라'를 외쳐댔다.
대통령의 퇴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상파울루에서 왔다는 노르베르토 멘돈사씨(43 · 의사)는 "룰라는 브라질 역사를 다시 썼다"고 자랑스러워했다.
⊙ 세계 최대 심해유전 이름 '룰라'로
룰라는 포르투갈어로 '오징어'라는 의미다.
브라질에서 가장 흔하고 값싼 수산물이다. 한 현지 교포는 "요즘 브라질에선 '먹는 룰라(오징어)는 싫어하지만 인간 룰라는 좋아한다'는 말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룰
라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는 지난해 말 세계 최대 심해 유전 명칭을 '투피'에서 '룰라'로 바꿨다.
지난달 29일 여론조사기관 센수스의 조사에 따르면 룰라의 개인 지지율은 87%였다.
앞서 또다른 여론조사기관 이보페가 발표한 지지율 역시 87%다.
룰라가 태어난 상파울루 주의 지지율은 95%를 넘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큰 배경도 룰라의 후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인 히카르도 알메이다씨는 "여론조사 결과는 브라질 국민들이 얼마나 룰라를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1일 호세프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브라질 국민들은 여전히 룰라 전 대통령을 잊지 못하고 있다.
⊙ 인기의 비결은 '경제성장'
여론조사에서 룰라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 1순위는 경제 성장이었다.
룰라 집권 직전인 2002년 2%대에 머물렀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7.5~8.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연평균 GDP 증가율은 4%로,이전 20년간 성장률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의 GDP는 2009년 1조4800억달러로,스페인을 제치고 세계 8위에 올랐다.
호전된 경제지표는 GDP 증가율에만 그치지 않는다. 외환위기에 몰렸던 1999년 당시 브라질의 외환보유액은 30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10배가 넘는 3000억달러까지 증가했다.
브라질의 고질적 문제였던 물가와 재정적자도 룰라 집권기간 동안 해결됐다.
2000년대 초 연 12%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 이하로 안정됐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긴축정책 시행을 통해 2003년 4.6%에 달했던 GDP 대비 재정적자도 2009년 1.2%까지 줄어들었다.
룰라 집권 동안 150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고,중산층 비율이 3600만명 늘어 그 비율이 42%에서 53%로 올라선 것도 성공 요인이다.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 정책 시행으로 1인당 월소득이 75달러 미만인 빈곤층도 2003년 5000만명에서 2009년 2990만명으로 43% 감소했다.
⊙ 실용주의로 브라질의 기적 일궈내다
2003년 6월.브라질리아 대통령궁 주변에 수천명의 농민들이 몰려 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은 2002년 룰라가 공약으로 내걸은 토지분배 등 농지개혁을 하루빨리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농민 지도부를 직접 만난 룰라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했다.
그는 "농지개혁은 국가 경제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지세력이었던 농민 · 노동자들로부터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선반공으로 일했던 룰라는 1980년대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 기계를 부수자'고 파업을 선동했던 과격한 노조 지도자였다.
그러나 집권 후 그는 스스로를 '변신의 귀재'로 자청하며 "이념보다는 먹고 사는 현실이 중요하다"며 변화를 선택했다.
그는 브라질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파 정부가 1999년 외환위기 후 시행했던 정책들을 과감하게 계승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높은 물가와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경제개혁도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주 전임 대통령이 시작했던 정책이었다.
당시 많은 남미 국가에서 새로 집권한 좌파 정부가 포퓰리즘으로 치달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인재 등용도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대선 때 섬유재벌인 조제 알렝카르를 러닝메이트로 임명했고,미국 보스턴은행 CEO를 지낸 엔리케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했다.
자본시장에서도 룰라를 높이 평가한다. 마르셀로 피덴시오 지우프리다 BNP파리바자산운용 브라질법인 CEO는 "룰라는 자본시장 친화적인 리더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며 "환율안정,인플레이션 억제,국가부채 감축 등을 이뤄냈고 소통을 중시하는 리더로서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기대에 부응했다"고 평가했다.
주앙 모라이스 미래에셋자산운용 브라질법인 최고마케팅책임자(CMO)도 "모든 사회계층을 아우르는 룰라의 역량이 오늘날의 브라질을 일궈냈다"고 치켜세웠다.
⊙ 앞으로의 행보는
룰라는 지난해 말 "201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신(神)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두 번 주지는 않는다"며 "대통령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27일 "2014년 대선 후보는 호세프"라고 말한 바 있다.
퇴임 직전까지 9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은 룰라가 2014년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룰라가 어떤 방식으로는 호세프 당선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가진 라디오 주례 방송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브라질은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전직 대통령을 맞게 될 것"이라며 "호세프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룰라가 퇴임 후 국제사회로 활동무대를 옮겨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수장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가 브라질의 성공 경험을 아프리카에도 전수하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나타냈기 때문이다.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바드로메 경기장.
지난달 20일 이곳엔 축하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경기장엔 8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매년 2월 중순 삼바축제가 열리는 이곳이지만 이번엔 주인공이 따로 있었다.
퇴임을 앞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을 위해 국민들이 연 축하행사였다.
브라질 시민들은 행사 내내 룰라를 환영한다는 뜻의 '올레 룰라'를 외쳐댔다.
대통령의 퇴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상파울루에서 왔다는 노르베르토 멘돈사씨(43 · 의사)는 "룰라는 브라질 역사를 다시 썼다"고 자랑스러워했다.
⊙ 세계 최대 심해유전 이름 '룰라'로
룰라는 포르투갈어로 '오징어'라는 의미다.
브라질에서 가장 흔하고 값싼 수산물이다. 한 현지 교포는 "요즘 브라질에선 '먹는 룰라(오징어)는 싫어하지만 인간 룰라는 좋아한다'는 말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룰
라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는 지난해 말 세계 최대 심해 유전 명칭을 '투피'에서 '룰라'로 바꿨다.
지난달 29일 여론조사기관 센수스의 조사에 따르면 룰라의 개인 지지율은 87%였다.
앞서 또다른 여론조사기관 이보페가 발표한 지지율 역시 87%다.
룰라가 태어난 상파울루 주의 지지율은 95%를 넘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큰 배경도 룰라의 후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인 히카르도 알메이다씨는 "여론조사 결과는 브라질 국민들이 얼마나 룰라를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1일 호세프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브라질 국민들은 여전히 룰라 전 대통령을 잊지 못하고 있다.
⊙ 인기의 비결은 '경제성장'
여론조사에서 룰라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 1순위는 경제 성장이었다.
룰라 집권 직전인 2002년 2%대에 머물렀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7.5~8.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연평균 GDP 증가율은 4%로,이전 20년간 성장률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의 GDP는 2009년 1조4800억달러로,스페인을 제치고 세계 8위에 올랐다.
호전된 경제지표는 GDP 증가율에만 그치지 않는다. 외환위기에 몰렸던 1999년 당시 브라질의 외환보유액은 30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10배가 넘는 3000억달러까지 증가했다.
브라질의 고질적 문제였던 물가와 재정적자도 룰라 집권기간 동안 해결됐다.
2000년대 초 연 12%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 이하로 안정됐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긴축정책 시행을 통해 2003년 4.6%에 달했던 GDP 대비 재정적자도 2009년 1.2%까지 줄어들었다.
룰라 집권 동안 150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고,중산층 비율이 3600만명 늘어 그 비율이 42%에서 53%로 올라선 것도 성공 요인이다.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 정책 시행으로 1인당 월소득이 75달러 미만인 빈곤층도 2003년 5000만명에서 2009년 2990만명으로 43% 감소했다.
⊙ 실용주의로 브라질의 기적 일궈내다
2003년 6월.브라질리아 대통령궁 주변에 수천명의 농민들이 몰려 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은 2002년 룰라가 공약으로 내걸은 토지분배 등 농지개혁을 하루빨리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농민 지도부를 직접 만난 룰라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했다.
그는 "농지개혁은 국가 경제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지세력이었던 농민 · 노동자들로부터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선반공으로 일했던 룰라는 1980년대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 기계를 부수자'고 파업을 선동했던 과격한 노조 지도자였다.
그러나 집권 후 그는 스스로를 '변신의 귀재'로 자청하며 "이념보다는 먹고 사는 현실이 중요하다"며 변화를 선택했다.
그는 브라질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파 정부가 1999년 외환위기 후 시행했던 정책들을 과감하게 계승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높은 물가와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경제개혁도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주 전임 대통령이 시작했던 정책이었다.
당시 많은 남미 국가에서 새로 집권한 좌파 정부가 포퓰리즘으로 치달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인재 등용도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대선 때 섬유재벌인 조제 알렝카르를 러닝메이트로 임명했고,미국 보스턴은행 CEO를 지낸 엔리케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했다.
자본시장에서도 룰라를 높이 평가한다. 마르셀로 피덴시오 지우프리다 BNP파리바자산운용 브라질법인 CEO는 "룰라는 자본시장 친화적인 리더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며 "환율안정,인플레이션 억제,국가부채 감축 등을 이뤄냈고 소통을 중시하는 리더로서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기대에 부응했다"고 평가했다.
주앙 모라이스 미래에셋자산운용 브라질법인 최고마케팅책임자(CMO)도 "모든 사회계층을 아우르는 룰라의 역량이 오늘날의 브라질을 일궈냈다"고 치켜세웠다.
⊙ 앞으로의 행보는
룰라는 지난해 말 "201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신(神)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두 번 주지는 않는다"며 "대통령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27일 "2014년 대선 후보는 호세프"라고 말한 바 있다.
퇴임 직전까지 9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은 룰라가 2014년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룰라가 어떤 방식으로는 호세프 당선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가진 라디오 주례 방송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브라질은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전직 대통령을 맞게 될 것"이라며 "호세프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룰라가 퇴임 후 국제사회로 활동무대를 옮겨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수장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가 브라질의 성공 경험을 아프리카에도 전수하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나타냈기 때문이다.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