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엔 어떤게 있나
[Cover Story] 정부의 공식 통계외에 화물차 통행량·여행객수·쓰레기량 등도 유용
"경제학자는 어제 일어난 일을 오늘 설명하는 사람이다. "

한 민간 경제연구원장은 경제 예측의 어려움에 대해 이같이 털어놓았다.

이미 발생한 경제 현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근거로 해서 미래를 전망한다.

하지만 경제 여건이 시시각각 변하고 미처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 나오면서 애초의 전망은 빗나가기 일쑤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제 전망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객관적인 통계를 근거로 하되 수치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직관이 더해져야 보다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 전망에는 크게 한국은행 등 연구기관의 계량경제전망, 통계청의 경기동행(선행)지수, 경제단체의 실사지수(설문조사) 등 다양하다.

⊙ 경제 전망은 고차원 연립방정식

한국은행 KDI 등 전문 기관들은 경기예측 모형을 통해 비교적 장기 경기를 전망한다.

경기예측 모형은 여러 개의 변수와 식으로 구성된 일종의 고차원 연립 방정식이다.

(이를 연구하는 경제학 분야를 계량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수학의 연립방정식에 x,y 등의 변수가 있는 것처럼 경기예측 모형에는 국제유가 경상수지 물가 실업률 환율 금리 등 수십 개의 경제 지표가 변수로 들어간다.

따라서 경기예측 모형이 어떻게 구성돼 있느냐에 따라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예측 모형을 써도 변수 예측치가 달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할 것으로 가정할 때와 하락할 것으로 가정할 때의 경제성장률 전망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분기 및 경제 전망자료를 내놓을 때 국제유가 환율 등 예측 모형을 구성하는 하위 변수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국내외 자료를 수집,분석하는데 이 과정에만 약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비슷한 전망이라도 내용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같더라도 상반기가 하반기보다 좋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좋다고 볼 수도 있다.

전자는 경기가 갈수록 나빠진다는 전망이고 후자는 경기가 개선된다는 의미다.

성장률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수출 중심이냐 내수 중심이냐로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산업별로 체감 경기에 차이가 난다.

⊙ 선행지수 · 동행지수로 경기흐름 판단

경기흐름을 간편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가 있다.

경기동행지수는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광공업생산지수 △제조업가동률지수 △건설기성액(건설 공사의 진행 정도를 가격으로 환산한 것) △서비스업생산지수 △도소매업 판매액지수 △내수출하지수 △수입액 △비농가 취업자 수 등 8개 지표를 합성해 산출한다.

동행지수가 50을 초과하면 확장국면,50 미만이면 수축국면,50이면 경기 전환점으로 간주한다.

경기선행지수는 앞으로의 경기 흐름을 예고하는 것으로 △재고순환지표 △소비자기대지수 △기계수주액 △자본재 수입액 △건설수주액 △순상품교역조건 △구인구직 비율 △종합주가지수 △금융기관 유동성 △장 · 단기 금리차 등 10개 지표가 바탕이 된다.

전월이나 전년 같은 달 대비 증감률의 크기에 따라 경기변동의 방향,국면 및 전환점,변동속도를 알 수 있다. 플러스이면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한국 경제가 강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 회복의 속도가 둔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경기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는 전달보다 0.8%포인트 떨어져 11개월 연속 하락했고 경기동행지수는 전월보다 0.7포인트 떨어져 4개월 연속 하락했다.

통계청이 내놓는 산업활동동향,지식경제부가 발표하는 무역수지와 유통업체 매출액 등도 월간 단위로 집계돼 현재의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할 만하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통해 경기를 판단하는 지표도 있다.

한국은행 전경련 등이 매달 조사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심리지수(CSI)가 대표적인 심리지표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큰 수치가 나오면 경기를 좋게 보는 응답자가 나쁘게 보는 응답자보다 많다는 의미이고 100보다 작은 수치가 나오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CSI는 같은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경기 인식을 조사한 것이다.

개인과 기업들이 경기를 좋게 보면 이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 소비와 투자가 증가,경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주체들이 갖는 심리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 쓰레기 양도 경기판단 근거

정부기관이나 연구소 등이 생산하는 공식적인 통계 외에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여러 변화를 통해서도 경기를 예측할 수 있다.

불황 때는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호황일 때는 남자의 바지 길이가 짧아진다는 의류업계의 속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최근에 잘 맞지 않은 속설이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의 변화로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사례는 많다. 은행 지점장이 자리를 자주 비우면 불경기라는 속설도 있다.

불황이 오면 대출이 연체될 위험이 없는지를 살피기 위해 은행 지점장들이 고객을 더 많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등산객이 늘어나면 불황이라는 얘기도 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등산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통행량이나 화물 물동량 등도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경기가 좋으면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건설공사나 제조업체의 생산이 늘어나 차량이나 화물 이동이 많아진다는 의미에서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쓰레기 양도 경기 판단의 근거로 활용한다.

가이트너 장관은 매일 아침 60여개 지표를 살펴보고 업무를 시작하는데,여기에는 주가 금리 등 일반적인 경제지표 외에 쓰레기 물동량까지 포함돼 있다.

쓰레기 물동량이 감소한다면 그만큼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므로 경기침체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