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시끄러운 유원지에 불과하던 남이섬에 상상력을 불어넣었죠.

그랬더니 남이섬이 예쁜 동화의 나라로 바뀌었어요. 상상력을 키우세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세요. "

성인 카바레가 영업하고 온갖 술병이 널브러져 있던 곳 '유원지 남이섬'을 한류관광의 1번지이자 전국 최대의 휴양지 '나미나라 공화국'으로 재탄생시킨 남이섬의 CEO 강우현,그를 만나러 지난해 12월29일,전국고등학교 경제연합(UHEC) 소속 학생들이 한국경제교육협회와 함께 남이섬을 찾았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빙하리,북한강 중상류에 위치한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반달 모양의 인공 섬이다.

1965년 전 한국은행 총재 민병도 선생이 불모지에 가까운 이 섬을 매입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6년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가 설립되고 종합휴양지로 조성되었다.

이때부터 남이섬은 서울 근교의 유원지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2000년 ㈜남이섬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남이섬의 시설은 노후했고 남이섬보다 더 좋은 위락시설이 많아지면서 남이섬을 찾는 사람들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60억원의 적자를 떠안고 죽음의 섬이 되어가던 남이섬이 살아난 것은 2001년.

작품 활동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강우현 디자이너가 CEO에 취임하면서다.

그는 주주들의 부탁으로 남이섬을 경영하게 되었고,그 조건으로 "최소 1년간 간섭하지 말 것,대신 월급은 100원만,남이섬의 매출을 1년 안에 두 배로 늘려 놓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문화예술 자연생태의 청정정원'으로 다시 태어난 남이섬은 <동화나라 노래의 섬>을 컨셉트로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연인들에게는 사랑과 추억을,문화계 인사들에게는 창작의 터전과 기반을 마련해 주며 경영 정상화를 이루어냈다.

남이섬은 강우현 CEO가 취임한 첫 해에 매출 40억원을 훌쩍 넘었고,현재 한 해 동안 입장객 수는 약 200만명(외국인 30만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남이섬의 성장 동력은 '상상'과 '역발상'이다. 14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상상 스케치북'에 강우현 CEO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여름에 눈사람축제,눈 덮인 겨울 섬에서 비키니 패션쇼 등 사계절 내내 다양한 이색 이벤트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2006년 3월1일에는 국가 형태를 표방하는 특수 관광지,'나미나라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독자적인 국기와 여권,화폐,내각과 대사(Ambassador)까지 갖췄다.

폐품을 활용한 예술품들도 빠뜨릴 수 없다. 쓸모없는 자갈과 침목,소주병에서 낙산사와 화성 서장대의 불에 탄 재목까지,쓰레기도 남이섬에 오면 '쓸 애기'로 바뀐다.

서울시 송파구는 매년 은행잎 처리비용으로 5000만원을 사용했다. 은행잎은 잘 타지도,썩지도 않아 처리가 까다로웠다.

이 애물단지가 남이섬에 오면서 보물로 바뀌었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한 메타세퀴어 길과 만나 낙엽이 수북이 깔린 낭만의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폐품을 활용한 재창조물,이것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스토리텔링',이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실천'과 '혁신', 이것이 남이섬의 성공비결이다.

미래의 기업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그가 말한다.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청개구리'가 되세요. 남들이 하지 않는 일,남들과는 다른 일을 찾고 열정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

최승재 생글기자(대전 대성고 2년) chsj1122@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