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아서왕과 양키’, 그리고 실질 GDP의 이해
19세기의 사람이 갑자기 6세기 아서왕 시대로 가게 된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풍자소설 [아서왕과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는 이런 흥미로운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코네티컷주 하트퍼드(Hartford)에서 태어난 주인공 행크 모건(Hank Morgan)은 다분히 미국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순수한 '양키'다.

무기제조 공장에서 수석감독관으로 일하던 그는 헤라클레스란 이름의 노동자와 다투던 도중 분쇄기 옆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한다.

의식을 회복한 그는 투구와 갑옷을 입은 괴상한 사내에게 잡혀 중세의 성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모건은 한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잡아온 사람은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케이(Kay)경이며, 현재 자신이 1300년의 시간을 거슬러 6세기 아서왕 시대의 영국에 왔음을 깨닫는다.

모건은 곧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528년에 일식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카멜롯(Camelot)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게 한다.

그는 화형의 위기를 모면하고,아서왕으로부터 영구직 수상으로 임명돼 마법사 멀린(Merlin)을 제치고 왕의 오른팔로서 왕국의 2인자 역할을 하게 된다.

'보스(Boss)'경이라는 거창한 작위를 수여받은 그는 중세 영국을 점진적으로 19세기 미국식으로 개혁해 나간다.

몇 년 동안 영국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모건은 좀 더 확실한 개혁을 위해서는 왕이 국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아서왕과 함께 평민 복장을 하고 암행에 나선다.

베지마구스(Bagdemagus) 왕이 다스리는 영토에 도착한 모건과 아서왕은 그곳에서 돌리(Dowley)라는 대장장이를 만난다.

돌리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그동안 축적한 부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보호무역정책을 택하고 있는 베지마구스 왕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모건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한 돌리는 모건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카멜롯과 베지마구스 왕국을 비교한다.

모건은 카멜롯에서 미국식 화폐제도를 본떠 달러,센트,밀(Mill),밀레이(Milray)로 구성된 새로운 화폐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당시 베지마구스 왕국도 카멜롯의 화폐제도를 따르고 있었다(1센트는 10밀과 같고,1밀은 10밀레이와 같다).

"형제여, 당신네 왕국에서는 농장 관리인,머슴,마부,양치기,양돈가의 임금이 얼마나 됩니까?"

"하루에 25밀레이를 받고 있소." 대장장이 얼굴에 기쁨이 솟았다.

"우리는 그 두 배 정도는 더 벌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능공들은 얼마나 받습니까?"

"평균 잡아서 50밀레이 정도 받소."

"하하하,우리는 100정도는 충분히 벌어요. 조금 기술이 있는 기능공들은 하루에 1센트를 받지요. 자유무역이라는 건 형편없는 제도로군요. 역시 보호무역이 최고야."

그의 얘기를 고분고분 받아주던 모건은 곧 포문을 열고 반격을 시작한다.

"당신은 얼마에 소금 1파운드를 사시오?"

"100밀레이에 삽니다."

"우리는 40이면 삽니다. 당신이 혹시라도 돼지나 쇠고기를 사야 할 경우 얼마의 경비를 예상하시오?"

"시세에 따라 좀 다르지만 그리 비싸지는 않습니다. 보통 파운드당 75밀레이 정도일 겁니다. "

"우리는 35면 삽니다. 달걀은 얼마지요?"

"한 줄에 50밀레이요. "

"우리는 20밀레이에 삽니다. "

· · · (중략) · · ·

"자, 보시오. 친구. 당신이 몇 분 전에 그렇게 자랑해대던 높은 임금은 어떻게 된거요? 하늘로 사라졌나? 아니면 땅속으로 꺼졌나?"

· · · (중략) · · ·

돌리는 눈을 껌뻑이며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인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이미 우리 임금이 당신네보다 두 배나 많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뭐가 하늘로 사라지고 뭐가 땅속으로 꺼졌다는 말씀인지. 혹시 내 말에 너무 충격을 받은 게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렇게까지 할 의도는 없었는데."

모건은 계속 돌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

대장장이 돌리는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아서왕과 양키’, 그리고 실질 GDP의 이해
그것은 바로 '명목'과 '실질'의 개념이다.

국가의 소득을 하나의 숫자로 나타낸 GDP(gross domestic product)는 '일정기간 동안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생산물의 시장가치'로 정의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GDP 통계는 국가의 생산량을 당해연도의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명목GDP(nominal GDP)이다.

즉 명목GDP는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그해의 가격으로 측정하여 통계를 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량에 전혀 변화가 없어도 물가가 오르면 명목GDP는 그 값이 상승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명목GDP는 길이가 변하는 자로 자라나는 아이의 키를 재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카멜롯과 베지마구스 왕국은 현재 같은 화폐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돌리는 단순히 화폐액수를 비교했을 때 베지마구스 국민들의 임금이 카멜롯보다 2배가량 더 높기 때문에 베지마구스 왕국이 카멜롯보다 더 부유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건의 이야기에서 양국의 물가를 비교했을 때 카멜롯의 물가수준이 베지마구스의 절반 이하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베지마구스의 물가가 카멜롯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임금이 아닌 생산량으로 총소득을 측정해도 베지마구스는 카멜롯보다 부유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물론 옳은 결론이 아니다. 만약 두 왕국의 물가가 동일했을 때의 시장가격으로 생산량을 측정한다면 카멜롯의 총소득이 훨씬 높게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경제학에서는 어느 특정 해를 기준연도로 삼아 그때의 가격으로 매해의 GDP를 측정한 것을 실질GDP(real GDP)라고 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실질GDP가 아닌 명목GDP를 바탕으로 한 판단은 종종 오판을 낳곤 한다.

때로는 명목GDP는 감소했지만,실질GDP는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카멜롯 왕국의 최종생산물이 오직 밀뿐인데 6세기의 생산량이 200만 푸대이고,7세기의 생산량은 240만 푸대라고 가정해보자.

한편 1푸대당 가격은 6세기에는 2센트이며,7세기에는 1센트로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카메롯 왕국의 6세기 명목GDP는 4만달러로,7세기 명목GDP는 2만4000달러로 측정된다.

생산량은 증가했지만 물가가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명목GDP가 대폭 감소한 것이다.

그러나 6세기 가격을 기준으로 실질GDP를 계산하면 카멜롯의 생산력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과거 일본에서는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인해 명목GDP는 감소했으나 실질GDP는 증가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었다.

실질GDP는 기준연도의 가격으로 생산량을 평가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물가의 변동에 관계없이 한 나라의 생산력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민소득 측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은행은 기준연도를 2005년으로 하고 있다.

[아서왕과 양키]에는 암행을 하던 아서왕과 모건이 한 마을의 허름한 오두막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그곳에는 천연두로 죽어가고 있는 소녀가 있었는데 아서왕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소녀를 안아 그녀의 어머니에게 데려다 준다.

모건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영웅은 갑옷을 입고 용을 죽이는 기사가 아니라 평민의 복장을 하고 팔에 죽어가는 사람을 안은 왕이라고 느낀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닌 진정한 내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