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 일본도에 중국 갑옷 걸친 정치적 상징물 "

반 " 충분한 고증 거쳤고 예술적 가치도 있어 "

보수를 위해 40일간 서울 광화문 광장을 떠났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지난 23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1968년 제작돼 42년간 광화문 광장을 지켜왔던 이 동상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군데 구멍과 균열이 발생하는 등 보수작업이 불가피해 지난 11월 중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임시 철거돼 경기도 이천의 보수공장인 '공간미술'로 옮겨져 그동안 '대수술'을 받았다.

보수 작업팀은 동상에 생긴 구멍과 균열 등 결함 부위 22곳을 접합하고 지진과 태풍 등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부에 스테인리스 재질의 보강재를 설치했다.

동상은 평균 초속 30m의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정도이며,함께 있는 북과 거북선 역시 같은 재질로 보강됐다.

특히 균열이 심했던 북과 거북선 부위는 균열 부위 주변에 덧판을 붙이고 5차례 이상 용접을 했다.

또 동상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갈색이 배어나는 암녹색으로 색상을 입히고 코팅을 해 마무리 세공작업을 했다.

서울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수를 거쳐 훨씬 건강해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선보일 수 있어 뿌듯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돌아온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해 해묵은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현재 동상의 모습이 여러 가지 면에서 제대로 고증을 거치지 않은 데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정치적 이유로 만들어진 점 등을 들어 다른 모습으로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현 모습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순신 동상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새로 건립하자는 측,"일본도에 중국 갑옷을 입은 정치적 상징물이다"

이들은 우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외모에 문제가 많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서울시 의회 문상모 민주당 의원은 최근 서울시의원회관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순신 동상은 직선형의 일본식 칼과 중국식 갑옷을 걸쳐 가짜"라고 주장하며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새 동상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일부 시민단체들에 의해서도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들이다.

이순신 동상이 차고 있는 칼이 조선시대 우리나라 장군의 칼이라고 보기 어렵고 일본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 장군이 입고 있는 옷 역시 중국 갑옷과 유사하며 갑옷 자락이 발목까지 내려가 있어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는데 그가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며 패장의 모습이라는 견해도 있다.

동상의 얼굴 표정이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닮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문화재 제자리찾기' 사무국장인 혜문스님은 "이미 1979년에 서울시와 정부가 철거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며 "이번에 단순히 동상의 유지 보수만 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1966년 박정희 정권 때 관제성 조직으로 설립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원칙 없이 역사적 위인들의 동상을 짧은 공기 내에 마구잡이로 만들었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도 바로 이때 철저한 고증이나 예술성이 감안되지 않은 채 급조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 그냥 두어야 한다는 측,"충분한 고증을 거쳤고 예술적 가치만으로도 보전할 필요성이 있다"

서울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수많은 고증 자료를 배경으로 제작됐다며 다시 제작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동상의 얼굴이 영정과 비슷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국가 표준 영정은 동상이 제작된 후 5년이 지나서야 지정됐고 사료 복원이 아닌 예술조각에서 약간의 변형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신상철 서울시 균형발전추진과장은 "42년이라는 시간의 역사를 가진 예술 작품이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며 재건립 의사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세중 기념사업회는 오른손에 칼을 쥔 부분에 대해 "동상에서 오른손은 그 인물의 의지를 대변한다"며 "조국수호의 충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업회 측은 칼이 일본도인 것은 맞지만 이는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의전용 칼을 모델로 실제보다 축소해 만든 것이며 이 칼은 애초에 일본도로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갑옷 의혹에 대해 작가 측은 "김은호 화백의 영정을 참조했고 복식 전문가 석주선씨의 고증도 얻었다"며 동상이 고증 없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고 일축한다.

미술계 일각에서도 "동상의 조각적 특징은 기념비적 상징성에 있다"며 "동상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느냐보다는 그 인물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여기에다 동상 자체의 예술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견해도 편다.

⊙ "역사적 의미와 사실성이 적당한 선에서 절충될 수밖에 없어"

이 문제는 각종 동상,특히 한 국가를 대표하는 위인들의 동상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느냐는 개념 정의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동상을 만약에 실제 인물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비슷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현재 이순신 동상의 모습은 실제 모습에서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동상 제작에서 그 인물의 실제 외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 자체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그의 정신과 역사에서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데 더 큰 의미 부여를 한다면 동상의 외형이 꼭 실제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할 필요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는 이 같은 두 가지 입장이 어느 선에서 절충돼 제작되는 동상이 대부분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경우 조선시대 인물로 지금까지 사진이 남아 있을리 만무하고 영정도 1970년대에 그려진 만큼 실제 그의 외모가 어땠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결국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의 외모보다는 그의 애국충정을 그리는 상징물로서의 의미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역사적으로 고증이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동상의 외양에서도 반영하는 것이 좋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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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닷컴 12월23일 보도기사

서울 광화문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 동상이 40일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복귀했다.

서울시는 지난 22일 밤 10시 보수를 마친 동상을 싣고 경기 이천 작업장을 출발해 23일 새벽 광화문광장에서 재설치 작업을 벌였다.

일출시간에 맞춰 시민에게 공개된 이순신 장군 동상에는 출근길 시민들의 눈길이 집중됐다.

광화문 인근 회사에 다니는 김희정씨(28)는 "매일 오가며 보던 동상이 '탈의 중'이라고 해서 출퇴근 때마다 조금 섭섭하고 허전했는데 이렇게 돌아오니 반갑다"며 "출근길에 잠시 들러 사진도 찍을 겸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창경씨(25)는 "최근 우리 바다가 북한 도발을 겪었고 중국과도 조업 관련 문제로 시끄러운데 이 시기에 광화문으로 돌아온 충무공 동상은 상징적 의미가 큰 것 같다.

든든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 시민들이 참여하는 '이순신 장군 복귀 환영 축하행사' 등을 벌이며 분위기를 띄웠다.

신상철 서울시 균형발전추진과장은 "시민들의 이해와 성원 덕에 무사히 보수를 마칠 수 있었다"며 "더욱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지난달 14일 광화문을 떠난 뒤 파손 부위에 주물을 다시 뜨고 내부에 지지대를 삽입하는 등의 보수 작업을 받았다.

동상의 빈 자리에 설치됐던 '탈의 중' 가림막에는 "참신하다"는 의견과 "동상을 희화화한다"는 반응이 엇갈리기도 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