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새해를 맞으면서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서울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이다.
12월31일 밤 12시 정각 '땡' 소리와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해를 여는 첫 울림인 '제야의 종소리'는 누구에게나 기대와 소망,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새해'와 '제야의 종소리' 사이에는 찬찬히 따져보면 논리적인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우리가 무심코 말하곤 하는 '제야의 종소리'에서 '제야'는 무슨 뜻일까.
'제야(除夜)'는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섣달 그믐날 밤'을 뜻한다.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을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이다.
'그믐'은 '그믐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어로는 '말일(末日)'이다.
그러니 '제야'란 섣달 그믐날 밤, 즉 한 해의 맨 끝 달 마지막 날 밤을 가리킨다.
12월31일 밤을 말한다.
물론 이런 말들은 모두 음력을 사용하던 지난 시절에 쓰이던 것이라 엄격히 따지면 지금도 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빼곤 일상에서 음력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달그믐이란 말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어 빈번히 쓰인다.
그래서 우리 인식으로는 양력으로 따진 12월31일 역시 섣달그믐날, 즉 제야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 0시에 맞춰 치기 시작하는 보신각 타종행사에 '제야의 종소리'란 말을 붙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말글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애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다.
1분이라도 밤 12시 이전에 쳐야 명실상부한 '제야의 종소리'가 된다는 게 요지인데, '제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지적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뜻도 어려운 '제야'라는 말을 쓰기보다 '해맞이'를 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해맞이'는 '영년(迎年)'에 해당하는 우리 고유어이다.
말 그대로 '한 해를 맞이함'이란 뜻이다.
새해 첫날 0시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가리키는 말로는 '제야의 종소리'보다 '해맞이 종소리'가 제격이다.
어쨌거나 근래 들어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로 자리 잡은 보신각 타종은 원래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오던 해맞이는 아니다.
조선시대 때는 종각의 종을 쳐 서울의 4대문(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을 열고 닫았다.
당시에는 시계가 없었으므로 새벽 4시와 밤 10시께에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렸다.
새벽 4시(인시)에 치는 종을 '파루(罷漏)'라 하여 33번을, 밤 10시(해시)에 치는 것을 인정(人定)이라 하여 28번을 쳤다.
인정은 통행금지를 알리는 것이고, 파루는 통행금지를 해제하는 신호였던 셈이다.
인정을 간혹 '인경'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정의 '정'이 소리가 바뀌어 그대로 굳은 것으로, 똑같은 말이다. 둘 다 사전에 올라있다.
조선시대 이런 타종의 전통이 섣달그믐날 밤 12시 정각을 기해 '제야의 종소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제 때 일본인들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광복 뒤 없어졌다가 1953년 12월31일 밤부터 다시 재개돼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섣달그믐날 밤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며, 우리 고유어로는 '해지킴'이라 부른다.
그것은 '제야'라는 말과도 관련이 있다. '제(除)'는 '덜다, 없애다, 버리다'란 뜻이고 '야(夜)'는 '밤 야' 자이다.
따라서 '제야'를 뜻으로 풀면 '밤을 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속은 우리말에도 흔적을 남겨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라는 속설을 낳았다.
물론 아이들을 일찍부터 자지 못하게 어른들이 장난스럽게 지어낸 말이다.
전통적인 우리 '수세' 풍습은 요즘의 '망년회(忘年會)'와 대비된다.
이때의 '망년'은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망년회'는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송년 모임' '송년회' 등으로 순화했는데 다행히 순화한 말도 언중 사이에서 제법 많이 쓰여 꽤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
망년회에는 한 해의 괴로움과 시름을 다 떨쳐버리고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더 나은 삶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이것도 좋지만 우리 전통 풍습에서 더 각별하게 여겼던 '수세'의 의미도 잊지 말아야겠다.
'수세연(守歲宴)'이란 '해를 지키는 잔치'이다.
우리 조상들은 섣달그믐을 맞아 한 해를 잊는 게 아니라 한 해를 지킨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뒀던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많은 사람이 새해를 맞으면서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서울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이다.
12월31일 밤 12시 정각 '땡' 소리와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해를 여는 첫 울림인 '제야의 종소리'는 누구에게나 기대와 소망,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새해'와 '제야의 종소리' 사이에는 찬찬히 따져보면 논리적인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우리가 무심코 말하곤 하는 '제야의 종소리'에서 '제야'는 무슨 뜻일까.
'제야(除夜)'는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섣달 그믐날 밤'을 뜻한다.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을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이다.
'그믐'은 '그믐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어로는 '말일(末日)'이다.
그러니 '제야'란 섣달 그믐날 밤, 즉 한 해의 맨 끝 달 마지막 날 밤을 가리킨다.
12월31일 밤을 말한다.
물론 이런 말들은 모두 음력을 사용하던 지난 시절에 쓰이던 것이라 엄격히 따지면 지금도 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빼곤 일상에서 음력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달그믐이란 말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어 빈번히 쓰인다.
그래서 우리 인식으로는 양력으로 따진 12월31일 역시 섣달그믐날, 즉 제야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 0시에 맞춰 치기 시작하는 보신각 타종행사에 '제야의 종소리'란 말을 붙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말글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애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다.
1분이라도 밤 12시 이전에 쳐야 명실상부한 '제야의 종소리'가 된다는 게 요지인데, '제야'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지적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뜻도 어려운 '제야'라는 말을 쓰기보다 '해맞이'를 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해맞이'는 '영년(迎年)'에 해당하는 우리 고유어이다.
말 그대로 '한 해를 맞이함'이란 뜻이다.
새해 첫날 0시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가리키는 말로는 '제야의 종소리'보다 '해맞이 종소리'가 제격이다.
어쨌거나 근래 들어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로 자리 잡은 보신각 타종은 원래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오던 해맞이는 아니다.
조선시대 때는 종각의 종을 쳐 서울의 4대문(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을 열고 닫았다.
당시에는 시계가 없었으므로 새벽 4시와 밤 10시께에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렸다.
새벽 4시(인시)에 치는 종을 '파루(罷漏)'라 하여 33번을, 밤 10시(해시)에 치는 것을 인정(人定)이라 하여 28번을 쳤다.
인정은 통행금지를 알리는 것이고, 파루는 통행금지를 해제하는 신호였던 셈이다.
인정을 간혹 '인경'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인정의 '정'이 소리가 바뀌어 그대로 굳은 것으로, 똑같은 말이다. 둘 다 사전에 올라있다.
조선시대 이런 타종의 전통이 섣달그믐날 밤 12시 정각을 기해 '제야의 종소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제 때 일본인들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광복 뒤 없어졌다가 1953년 12월31일 밤부터 다시 재개돼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섣달그믐날 밤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며, 우리 고유어로는 '해지킴'이라 부른다.
그것은 '제야'라는 말과도 관련이 있다. '제(除)'는 '덜다, 없애다, 버리다'란 뜻이고 '야(夜)'는 '밤 야' 자이다.
따라서 '제야'를 뜻으로 풀면 '밤을 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속은 우리말에도 흔적을 남겨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라는 속설을 낳았다.
물론 아이들을 일찍부터 자지 못하게 어른들이 장난스럽게 지어낸 말이다.
전통적인 우리 '수세' 풍습은 요즘의 '망년회(忘年會)'와 대비된다.
이때의 '망년'은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망년회'는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송년 모임' '송년회' 등으로 순화했는데 다행히 순화한 말도 언중 사이에서 제법 많이 쓰여 꽤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
망년회에는 한 해의 괴로움과 시름을 다 떨쳐버리고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더 나은 삶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이것도 좋지만 우리 전통 풍습에서 더 각별하게 여겼던 '수세'의 의미도 잊지 말아야겠다.
'수세연(守歲宴)'이란 '해를 지키는 잔치'이다.
우리 조상들은 섣달그믐을 맞아 한 해를 잊는 게 아니라 한 해를 지킨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뒀던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