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학교장의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

반 “진보성향 교육감의 입김 막으려는 꼼수”


학교장이 시 · 도교육감의 인가 없이 직권으로 학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된 후 교육현장에서 찬반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일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의 '단위학교 자율역량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현행 법은 학교장이 학칙을 제정한 뒤 이를 시 · 도교육감의 인가를 받도록 돼 있다.

정부는 이 같은 교육감 인가제도 폐지를 내용으로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할 계획이다.

또 교육과정, 학사운영, 재정, 인사 등에서도 학교장의 권한과 책무를 법령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는 '교장은 교무를 통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는 정도의 포괄 규정만 있다.

시 · 도교육청에 대한 평가제도도 시행된다.

학교의 실질적인 교육성과를 높이기 위해 학생 안전 · 인성 · 체력 · 학력 향상 등 성과에 사교육비 절감 노력 등을 종합해 평가한다는 요지다.

평가 결과는 외부에 공개되며 특별교부금도 차등 지원된다.

우선 내년부터 각 학교의 실적을 평가해 교원 성과급의 10%를 학교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집단 성과급제도가 도입된다.

이 같은 교과부 방침에 대해 교육 일선에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학교장의 학칙 제정권 강화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학교장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주는 것"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교육감이 학칙을 인가하는 것은 학교장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유신 권위주의의 잔재"라며 학교중심 교육 강화를 위해서 학교장에게 학칙 제정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은 "대학도 예전에는 학칙을 인가받아야 했지만 현재는 보고제로 바뀌었다"며 "이번 조치는 학교장의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장들은 교장의 책임하에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공감하는 특성화교육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대전의 한 고교 교장은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해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학교별 실정에 맞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현행 초중등 교육법에는 교장의 권한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책임경영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동안 교장은 교육과정, 학사운영,재정, 인사부문에서 이렇다 할 권한과 책무를 갖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학칙 제정은 학교장의 고유 권한이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교육감의 권한축소와 연계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교장 권한 강화는 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는 게 동조자들의 견해다.

⊙ 반대 측, "진보성향 교육감의 영향력 행사를 막기위한 꼼수며 교육자치에도 위배"

전국교직원노조와 일부 교사들은 이번 조치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친 전교조 성향 교육감들이 교단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충남의 한 교사는 "현재도 일부 학교에서는 교장의 독선적인 경영으로 교직원과 학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학교장의 권한이 강화되면 학교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전인교육이 아닌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전환할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조는 "교과부는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시키면서도 이를 견제할 방안이나 공모제 법제화 등 교장 승진제도 개선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교육청 역시 "자율화를 가장한 교과부의 직접적인 학교통제이자 확일화 대책으로, 교육자치의 기본정신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교과부의 이번 대책은 교육감의 정책 결정과 자율성을 크게 제약하며 교육감의 책임감을 모호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일방적으로 교장의 권한만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폐해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선 교육감의 학칙 인가원을 빼앗는 것은 교육자치 정신에 위배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교과부가 지시하고 학교장이 학교에 대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교육감이 권한을 나눠갖고 학생과 교사, 교장과 학부모가 함께 학교운영의 자율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교육자치의 정신이자 분권의 시대에 올바른 방향인데 교과부 정책은 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 "교육감과 교장 간 책임과 권한의 절충점 찾는 노력 필요"

이 문제는 교육자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교육자치의 정신은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지시와 통제를 지양하고 지방의 실정과 특수성을 감안한 교육정책이 수립 및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자치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이 각 시 · 도교육감을 선거에 의해 주민의 의사에 맞는 사람을 직접투표로 뽑는 방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교육자치가 충실히 이행되기 위해서는 교육감에게 각 지역 교육정책에 대한 권한이 더욱 많이 주어져야 한다.

한편 교육감과 교장 사이의 관계를 놓고보면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교장의 입장에서 교육감은 또 다른 규제 감독기관이 될 수 있고 마치 중앙정부와 교육감의 관계에서와 유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교장의 권한을 폭넓게 인정해야 하느냐, 교장의 학사운영을 교육감이 좀 더 깊숙이 감독하고 관여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만약 교장의 자율적인 학교 운영 관리권을 교육자치의 개념에 포함시킨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어느 쪽의 주장도 일방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교육감이 존재하는 한, 특히 교육감을 직선으로 뽑는 교육자치를 시행하고 있는 마당에 교육감의 교육이념이 지역의 교육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교장 역시 엄연히 교육전문가로 교육 일선에서 자신의 책임하에 학교를 운영하는 자율권을 상당 부분 인정받아야 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쉽지 않지만 거시적이고 큰 그림의 교육정책 방향은 교육감 선에서, 그리고 그 틀 내에서 세부적 학교운영은 교장에게 맡기는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등 교육법은 물론 하위 법령도 차제에 다시 검토, 교육감과 교장 사이의 책임과 권한의 범위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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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닷컴 12월 2일자 보도 기사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장에게 학칙 제정권을 주는 등 교장의 권한을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학교장의 인사와 학사운영,예산편성 권한을 강화한 교육공무원법 및 초 · 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법안들이 통과되면 학교장이 시 · 도교육감 인가 없이 직권으로 학칙을 제정할 수 있게 된다"며 "학교나 지역단위로 교사를 뽑고 산업 · 예술 · 체육전문가와 수학 · 과학박사 학위 소지자들의 교직 진출도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이어 "내년부터 각 학교의 실적을 평가해 전체 교원 성과급의 10%를 학교별 성과급으로 주는 집단 성과급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평가지표는 시 · 도교육청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되 학업성취도평가 향상도와 특색사업 운영,방과후학교 참여율 등은 공통지표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이건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