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스크 사건으로 '국민의 알권리 vs 국가 기밀 보호' 논쟁 불거져
[Focus] 내부 고발,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인터넷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www.wikileaks.org)가 미국 외교전문(電文)을 전격 공개하면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프랑스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반대 견해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미국 정부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유엔 고위직들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왔다는 사실 등에서부터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사생활까지 공개됐다.

한반도의 가장 민감한 사안인 대북 현안도 낱낱이 드러났다. 위키리크스를 만든 줄리언 어샌지(39)에 대해선 '민주주의 수호자'와 '세계안보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어샌지는 "위키리크스는 내부고발자와 언론인들이 감춰진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도록 돕는 국제적 공공서비스"라고 주장한다.

위키리크스 사건은 내부고발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다.

내부고발(휘슬 블로잉 whistle blowing)은 조직 내부의 사람이 자신이 속한 조직이 안고 있는 법적 도덕적 문제를 조직 외부에 알리는 행위다.

문제는 내부고발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존재한다. 찬성하는 측에선 사회 전체의 공익이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하므로 내부고발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충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내부고발을 놓고 공익과 충직 의무가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기밀 간에 어떤 균형이 필요한지도 논란거리다.

철학적이며 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내년도 대입 논술에서, 그리고 당장 대입 면접에서도 이와 관련된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반드시 공부해 두자.

⊙ 공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비리일 때 정당성 생겨

내부고발을 할 만한 내용은 공익에 엄청난 손해를 끼칠 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비리라고 하더라도 시시콜콜한 것은 내부고발 거리가 되지 않는다.

일반대중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칠 것이 확실시되는 중대한 사안일수록 내부고발의 정당성은 커진다.

특히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관행적으로 해 온 비리라면 내부고발은 더 큰 의미가 있다.

내부고발에 해당할 만한 사례는 많다. 펑크날 위험이 높은 타이어를 만들고 있다거나,건축물을 불법으로 개 · 보수해 붕괴위험이 높다거나,정유소나 주유소에서 함량 미달의 기름을 생산 판매하거나,인체에 해로운 이물질이 들어있는 식 · 의약품을 만들거나,핵폐기물이 불법으로 처리되거나,상수원에 폐수를 무단 방류하거나 모두 내부고발을 할 만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고발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내부고발 정당화의 조건으로 몇 가지를 꼽는다.

첫째,어떤 조직이 그 정책이나 상품 · 서비스를 통해 일반대중에게 심각하고 중대한 해악을 끼쳐야 한다.

둘째,비리가 있는 경우 먼저 자신의 직속상관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내부고발은 조직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기 전에 조직 자체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만약 직속상관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윗사람에게 비리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

이때 조직 내 상급자들이 보고한 사람에게 보복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그러나 내부고발은 조직 내부의 자정 노력이 가능하지 않을 때 사용돼야 할 최후의 수단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위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한 상태에서 다시 아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내부고발은 '해도 좋고 안해도 그만'인 게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내부고발자가 합리적인 제3자를 설득할 수 있는 문서화된 증거를 가지고 있고,외부에 폭로함으로써 조직과 사회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확신이 있는 경우다.

⊙ 공익을 우선한다고 해서 충직 의무 저버리는 게 항상 정당하진 않아

내부고발은 근본적으로 충직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서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내부고발자는 심판이 아닌데도 자신이 속한 팀에 파울을 선언하는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과 같다.

조금 전까지도 같은 팀으로 뛰다 갑자기 파울을 선언하는 것은 결코 좋은 모양이 아니란 얘기다.

내부고발로 인해 고통받게 될 동료와 제3의 피해자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공익이 우선한다고 해서 소속 조직에 대한 충직 의무를 위배하는 게 항상 정당하진 않다는 지적이다.

현실에선 정당한 조건을 다 갖춘 내부고발이 드물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내부고발의 동기가 순수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지만 실제론 조직에 대한 증오,조직 내부 특정인에 대한 복수심이 완전하게 배제된 경우를 찾기 쉽지 않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았더라면,무능력으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개인적 손실을 유발시킨 사건이 없었더라면,내부고발이 없었을 경우가 많다.

물론 양심적인 사람들의 정당하고 용감한 내부고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범죄를 저지른 가족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 것인가

내부고발과 관련해선 공자의 일화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하루는 공자의 제자가 "우리 동네에 있는 정직한 사람은 이웃의 양을 훔친 아버지를 관가에 고발할 정도로 솔직합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공자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정직한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가 이웃의 양을 훔친 사실을 관가에 고발하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네"라고 답했다.

이는 내부고발의 도덕적 정당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해주는 사례다.

자신의 가족이 저지른 비행과 비리를 가족 간 협의도 없이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법을 저지른 가족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관가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위증을 해 아버지를 고소한 이웃을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고발하지 않을 뿐 다른 사람들이 고발하는 것엔 소극적으로 수긍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도록 충분히 설득해 자수를 권유할 것인가.

상대방(공자의 일화에선 아버지)의 최상의 이익이 무엇인지 추정해서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도덕한 행위가 절대로 최상의 이익이 될 수 없다면,그 사실을 인정케 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수 있다.

⊙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기밀 간엔 어떤 균형이 필요한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엔 여러 국가의 기밀이 많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한국 외교 사령탑들의 인식이 여과없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1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으로의 세습 과정에서 성급한 불장난(fireworks)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 북한은 2~3년 내에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다" 등의 발언이 공개된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이런 상황 판단은 국가기밀에 해당한다.

고위 관료들은 이런 상황 판단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북한 문제와 같은 주요 이슈에 대해선 정부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항상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

하지만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이 완결되지 않고 진행 중인 상황에선 공개가 능사가 아니다.

국익을 위해 일정 기간 비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