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제왕적 대통령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

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개헌 논의해선 안돼”


한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개헌 이야기가 다시 여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면서 현 시점에서 개헌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개헌 문제를 여당 내부 논의를 거쳐 여야 간 논의를 이끌고 다시 국회 차원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하자는 소위 개헌논의 3단계 방법론을 제시했다.

국회 예산안 심의가 끝나면 의원총회를 소집해 당내 의견을 수렴한 뒤 야당과 협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올해 말까지 여야 합의로 국회 내에 개헌특위를 구성하면 내년 상반기 중 개헌이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거론했다.

이재오 특임장관 역시 이제는 개헌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라며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개헌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어서 여권은 개헌을 이제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물론 야당에서도 반대하고 있어 정치권 최대 쟁점인 개헌이 과연 성사될지 현 단계에서는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현재 5년 단임제로 돼 있는 대통령의 중임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와 지나치게 대통령 1인에게 집중돼 있는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킬 것이냐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개헌은 대통령의 중임,대통령의 권력 분산 이외에도 행정구역 개편,선거구제 개편 등과도 모두 맞물려 있는 만큼 정치 세력 간 합의를 달성하기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여야는 각자의 득실에 따라 찬성 또는 반대를 할 가능성이 크고 개헌 자체에는 합의한다 해도 각론에서는 견해가 엇갈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개헌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개헌 찬성 측,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

이재오 한나라당 특임장관은 한마디로 이제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졸업할 시기가 됐다는 입장이다.

국제투명성 기구가 매년 각국 정부의 청렴도를 발표하는데 이 순위에서 하위권에 맴도는 국가들 대부분이 대통령 중심제를 택한 나라들로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아래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청렴도 순위가 비교적 높은 나라 중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는 미국 스위스 키프로스 아랍에미리트 정도라는 것이다.

반면 청렴도가 높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나라 중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는 별로 없다며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려면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헌법 시스템은 손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같은 상태로는 부정과 비리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여야 역시 대권을 잡기 위해 만날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래서 국방 외교 등의 분야는 지금처럼 민선 대통령이 맡되,책임 정치 구현을 위해 대통령은 중임제로 하고 물가나 부동산 문제 등 내치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에게 맡기는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해볼 만하다고 지적한다.

1987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정된 헌법은 당시의 다급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지금까지 많은 문제점을 노정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전반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과 5년 단임 문제뿐 아니라 국회의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강화할 필요성도 있고 기본권 조항 역시 현실에 맞지 않은 부분을 이제 대폭 수정할 때가 됐다는 게 그런 주장들이다.

⊙ 개헌 반대 측, "단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개헌의 필요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지만 현 정부가 아닌 차기 정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분권형 개헌론에 대해서도 "대통령 중심제가 권력집중의 폐해가 있지만 행정 각부에 헌법에서 보장된 권한을 주면 권력의 효율적인 운영과 분산이 가능하다"며 "권력 분산 때문에 개헌이 논의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아직 이슈가 확정되지 않은 개헌론에는 가담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소위 친박계 쪽에서는 현 시점에서의 개헌에는 반대하고 있다. 허태열 의원은 "권력구조만 고친다고 개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헌 논의를 하게 되면 사회적 조항,경제적 조항,지방자치에 관한 문제,남북 관계,수많은 또 다른 개헌 아젠다가 떠오를 것"이라며 "각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단체,모든 국민이 전부 다 나름의 주장으로 소모적 국론분열에만 들어갈 뿐"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개헌 문제는 차기 정권 초에 국민의 뜻을 모아서 하는 것이 옳다"며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개헌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개헌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며 "현재 한나라당의 개헌 논의는 다분히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국면 주도용의 개헌론 같다"며 거리를 뒀다.

현재 개헌 논의가 국민들은 거의 배제한 채 정치인들끼리 권력 나눠먹기용으로 흐르고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 개헌은 필요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해야

세상에 영원한 법은 없다. 헌법도 마찬가지여서 세월이 흐르고 정치 · 사회 · 경제적 여건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최종적으로 개정된 지 20년이 넘은 현행 헌법을 고칠 필요성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개헌 찬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쪽이 반대보다 많은 비율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하느냐이다. 정치인들은 대선이나 총선 등 정치 일정과의 연관성 때문에 '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겠지만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일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되 일부 수정을 할 것인지,아니면 내각책임제를 택할 것인지 등의 큰 논의부터 시작해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와 행정부, 그리고 국민의 권리 의무에 대한 규정도 총체적으로 손을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개헌은 몇 개월 시한을 두고 국회에서 정치인들끼리 뚝딱뚝딱 해치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연구와 논의,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와 여론수렴 등을 거쳐 장기과제로 하되 무작정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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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1월14일자 보도기사>

민주당은 14일 여권의 개헌 드라이브에 대해 "국면전환용"이라고 일축하면서 경계감 속에 촉각을 세웠다.

개헌 정국이 본격 조성될 경우 개헌 이슈가 4대강 사업과 '대포폰 논란',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국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연말 예산정국에서 대여 동력이 현저히 약화될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나라당의 '3단계 개헌론'에 대해 "여권이 산적한 국정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 국면 전환용으로 3단계 개헌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이 전혀 함께 할 이유가 없다"며 "청와대와 여당은 하루빨리 현안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 대주주 중 한 명인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반대하는 등 여권 내 의견통일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우리가 함께 할 이유가 없다"며 "왜 남의 집 전쟁판에 들어가 불끄려 하겠는가. 일고의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먼저 여권이 통일된 안을 내놔야지,현 상황에서 개헌 문제에 휩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현안을 호도시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개헌 찬성론자로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인 이낙연 사무총장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미 18대 국회 내 개헌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앞서 당 지도부는 지난달 27일 최고위원 워크숍을 열어 일단 개헌 논의에 일절 가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했었다. 손학규 대표도 "G20 회의가 끝나면 개헌론이 다시 나올텐데 옳은 일이 아니다"며 "개헌이야말로 정치인을 위한 정치놀음"이라고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당 일각에서는 개헌 문제를 둘러싼 여권 내 자중지란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당으로선 손해볼 게 없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