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때만 해도 '함잡이'는 봉치잡이라고 하여 사대부집 봉치는 그 행렬이 으리으리해서 구경거리였다.
시각은 초저녁, 등롱잡이 횃불잡이가 늘어서고 함을 진 사람은 예복을 입었다.
(중략) 그러던 것이 요즘 와선 신랑의 동창이나 친구들이 함을 택시에 싣고 가서는 신부집에서 술값을 뜯어내고 때로는 적다고 행패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폐단으로 함잡이를 없앤 것은 잘한 일이다.
1973년 6월 1일 발효된 새로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및 '가정의례준칙'을 당시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관혼상제를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몇 개 눈에 띈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봉치잡이'의 '봉치'는 '혼인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채단(采緞)과 예장(禮狀)을 보내는 일'을 뜻한다.
원래 '봉채(封采)'라는 한자어에서 변한 말이다.
이때 '채단'은 '혼인 때에,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미리 보내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비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장'이란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봉치'는 국어사전에 단어로 살아있는 말이지만 '봉치잡이'란 말은 없다.
물론 같은 뜻으로 쓰인 '함잡이'란 말도 없다. 언중 사이에 지금도 '함잡이'가 쓰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함을 보내고 받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에서 '-잡이'는 보통 '무엇을 잡는 일' 또는 '무엇을 다루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고기잡이/오징어잡이'나 '총잡이/칼잡이' 같은 게 그 예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쓰인 '함잡이'나 '봉치잡이'보다는 차라리 '함들이'가 더 적절할 듯싶다.
이때 쓰인 '-이'는 '집들이/감옥살이/가슴앓이' 등에서처럼 '일'의 뜻을 더하고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함들이'도 물론 사전에 나오는 단어는 아니다.
'함들이' 행사에는 보통 말(馬)이라 불리는 '함을 진 사람'이 있고 마부로 불리는 함잡이,청사초롱을 들고 밤길을 밝히는 등롱꾼(등롱잡이)이 필수 요원이다.
혼인 때에,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보내는 함을 지고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 하고 그 함진아비 앞에서 등롱을 들고 길을 밝히는 사람을 '등롱꾼'이라 부른다.
이들은 사전에 올라 있는 정식 단어이다.
간혹 함진아비를 '함진애비'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현행 맞춤법에서는 '아비'만 인정하고 '애비'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비'를 '애비'라 발음하는 것은 '이모음 역행동화' 현상(움라우트 현상)이라 하는데,가령 호랑이를 호랭이로, 지팡이를 지팽이로,마구잡이를 마구재비로,잡히다를 잽히다로,먹이다를 멕이다 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맞춤법이나 표준발음법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표준 어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함(函)'은 넓은 의미에서 '옷이나 물건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통'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서류함,패물함 따위의 말이 있다.
하지만 좁은 뜻으로의 '함'은 '혼인 때 신랑 쪽에서 채단 따위를 넣어서 신부 쪽에 보내는 나무 상자'를 가리킨다.
신부집 앞에 이르면 함잡이는 목청껏 "함 사시오"를 외쳐 동네방네 소식을 알린다.
함진아비는 말을 하면 안 되고 함잡이가 나서서 이들을 대접하는 신부 측과 흥정을 벌인다.
서로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시끌벅적한 게 흥미롭기도 하지만 자칫 지나치면 도심 아파트단지 같은 데선 신고가 들어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등롱꾼의 손에 들린 청사초롱은 청사등롱이라고도 한다.
'등롱(燈籠)'은 대오리나 쇠로 살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씌워 안에 촛불을 넣어서 달아 두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도 할 수 있게 만든 등을 가리킨다.
이를 달리 '초롱'이라 하는 것은 등롱 안에 주로 촛불을 켜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고유어처럼 됐지만 '초'는 본래 한자어 촉(燭)에서 온 말이다.
차양(遮陽)에서 변한 말 '챙'이 생기고,주착(主着)에서 주책이,숙육(熟肉)에서 수육이,감저(甘藷)에서 감자가,백채(白寀)에서 배추가,지룡(地龍)에서 지렁이가,맹서(盟誓)에서 맹세,초생(初生)달에서 초승달,처신(處身)에서 체신,염치(廉恥)에서 얌체,호로병(葫蘆甁)에서 호리병이,벽창우(碧昌牛)에서 벽창호란 말이 생긴 것처럼 우리말에 숱하게 많은 '한자어에서 변한 말'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전통풍습에서 혼례 길을 밝히던 청사초롱이 다시 등장해 지난주 열린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덕분에 청사초롱이란 말을 모르던 아이들도 이젠 많이 익숙해졌을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자꾸 살려 써야 나랏말이 오른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시각은 초저녁, 등롱잡이 횃불잡이가 늘어서고 함을 진 사람은 예복을 입었다.
(중략) 그러던 것이 요즘 와선 신랑의 동창이나 친구들이 함을 택시에 싣고 가서는 신부집에서 술값을 뜯어내고 때로는 적다고 행패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폐단으로 함잡이를 없앤 것은 잘한 일이다.
1973년 6월 1일 발효된 새로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및 '가정의례준칙'을 당시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관혼상제를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몇 개 눈에 띈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봉치잡이'의 '봉치'는 '혼인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채단(采緞)과 예장(禮狀)을 보내는 일'을 뜻한다.
원래 '봉채(封采)'라는 한자어에서 변한 말이다.
이때 '채단'은 '혼인 때에,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미리 보내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비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장'이란 '신랑 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봉치'는 국어사전에 단어로 살아있는 말이지만 '봉치잡이'란 말은 없다.
물론 같은 뜻으로 쓰인 '함잡이'란 말도 없다. 언중 사이에 지금도 '함잡이'가 쓰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함을 보내고 받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에서 '-잡이'는 보통 '무엇을 잡는 일' 또는 '무엇을 다루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고기잡이/오징어잡이'나 '총잡이/칼잡이' 같은 게 그 예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쓰인 '함잡이'나 '봉치잡이'보다는 차라리 '함들이'가 더 적절할 듯싶다.
이때 쓰인 '-이'는 '집들이/감옥살이/가슴앓이' 등에서처럼 '일'의 뜻을 더하고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함들이'도 물론 사전에 나오는 단어는 아니다.
'함들이' 행사에는 보통 말(馬)이라 불리는 '함을 진 사람'이 있고 마부로 불리는 함잡이,청사초롱을 들고 밤길을 밝히는 등롱꾼(등롱잡이)이 필수 요원이다.
혼인 때에,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보내는 함을 지고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 하고 그 함진아비 앞에서 등롱을 들고 길을 밝히는 사람을 '등롱꾼'이라 부른다.
이들은 사전에 올라 있는 정식 단어이다.
간혹 함진아비를 '함진애비'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현행 맞춤법에서는 '아비'만 인정하고 '애비'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비'를 '애비'라 발음하는 것은 '이모음 역행동화' 현상(움라우트 현상)이라 하는데,가령 호랑이를 호랭이로, 지팡이를 지팽이로,마구잡이를 마구재비로,잡히다를 잽히다로,먹이다를 멕이다 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맞춤법이나 표준발음법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표준 어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함(函)'은 넓은 의미에서 '옷이나 물건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통'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서류함,패물함 따위의 말이 있다.
하지만 좁은 뜻으로의 '함'은 '혼인 때 신랑 쪽에서 채단 따위를 넣어서 신부 쪽에 보내는 나무 상자'를 가리킨다.
신부집 앞에 이르면 함잡이는 목청껏 "함 사시오"를 외쳐 동네방네 소식을 알린다.
함진아비는 말을 하면 안 되고 함잡이가 나서서 이들을 대접하는 신부 측과 흥정을 벌인다.
서로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시끌벅적한 게 흥미롭기도 하지만 자칫 지나치면 도심 아파트단지 같은 데선 신고가 들어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등롱꾼의 손에 들린 청사초롱은 청사등롱이라고도 한다.
'등롱(燈籠)'은 대오리나 쇠로 살을 만들고 겉에 종이나 헝겊을 씌워 안에 촛불을 넣어서 달아 두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도 할 수 있게 만든 등을 가리킨다.
이를 달리 '초롱'이라 하는 것은 등롱 안에 주로 촛불을 켜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고유어처럼 됐지만 '초'는 본래 한자어 촉(燭)에서 온 말이다.
차양(遮陽)에서 변한 말 '챙'이 생기고,주착(主着)에서 주책이,숙육(熟肉)에서 수육이,감저(甘藷)에서 감자가,백채(白寀)에서 배추가,지룡(地龍)에서 지렁이가,맹서(盟誓)에서 맹세,초생(初生)달에서 초승달,처신(處身)에서 체신,염치(廉恥)에서 얌체,호로병(葫蘆甁)에서 호리병이,벽창우(碧昌牛)에서 벽창호란 말이 생긴 것처럼 우리말에 숱하게 많은 '한자어에서 변한 말'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전통풍습에서 혼례 길을 밝히던 청사초롱이 다시 등장해 지난주 열린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덕분에 청사초롱이란 말을 모르던 아이들도 이젠 많이 익숙해졌을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자꾸 살려 써야 나랏말이 오른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