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이상림 목포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Cover Story] 보험은신뢰를 전제로운영되는제도, 가입자의 도덕적해이는 사기와 같아
보험은 일상 생활에서 예상치 못하게 입는 손실을 복구하는 데 유용한 제도다.

비슷한 손실 위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보험을 통해 함께 위험에 대비한다.

자신들이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그들 가운데 실제로 손실을 본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해 손실을 복구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보험은 손실발생을 우려하는 다수의 보험가입자들로부터 보험료를 미리 받아 모아놓았다가 실제로 손실을 입은 소수의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상호부조 제도다.

보험이 상호부조 제도로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대수(大數)의 법칙이 작용해야 한다.

생명보험을 예로 들어보자.보험가입자들은 연령별 예상수명에 따라 서로 다른 보험료를 부담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수명이 다르므로 누가 몇 살에 사망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통계를 구하면 연령별 예상수명은 일정한 값을 갖게 된다.

이것이 대수의 법칙이다. 표본의 수가 많을수록 그 표본으로 예상한 수치와 실제 수치가 비슷해진다는 얘기다.

대수의 법칙은 동전 던지기로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다.

동전을 10번 던져 이 확률을 얻는 것보다 1000번,1만번 던져 50%의 확률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보험에선 많은 사람이 보험에 가입할수록 실제 손해율(보험에선 사망 질병 사고 등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손해라고 표현한다)이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 사용한 예상 손해율에 근접한다.

그리고 실제 손해율과 예상 손해율이 비슷해질수록 보험료는 공평하게 부과된다.

⊙보험은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제도

상호부조 제도로서 보험은 보험자(보험회사)와 보험가입자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에게 위험이 현실화돼 손실이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속을 한다.

보험가입자는 이런 약속을 믿고 보험에 가입한다.

반대로 보험가입자는 보험에 들기 위해 보험회사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명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앓았던 질병이나 현재 가지고 있는 질병 등을 빠짐없이 진실하게 보험회사에 알려야 한다.

이처럼 보험제도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선 보험회사와 보험가입자 사이의 신뢰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험 감독기관이나 관련 법률이 보험금 지급 약속과 보험가입자의 중요 사실 고지 의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미래의 보험금 지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험금을 지급할 재원을 건전하게 운영하고,충분한 지급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만일 충분한 지급능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즉시 개선조치를 강제받는다.

보험가입자도 보험 계약 전에 중요한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가입했더라도 신뢰를 깨뜨린 사실이 밝혀지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

보험제도의 신뢰 유지를 위한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의 경우 가벼운 사고로 자동차에 대한 손실만 발생한 것이 명백해 보여도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무조건 병원치료를 받거나 과잉입원을 함으로써 실제 발생한 손실 이상의 보험금을 받는 사례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입원율은 2007회계연도의 경우 63.5%에 달한다. 이는 일본의 6.9%와 비교할 때 무려 9배가 넘는 수치다.

또 장기보험에서 가벼운 상해나 질병이지만 장기간 입원해 과다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그리고 진단서나 진료비영수증을 위조 및 변조해서까지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최근 5년간 16배(금액기준)로 급증했다.

이런 행위들은 모두 보험사기에 해당한다.

이는 정상적인 상호부조 제도를 악용해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건실한 보험이용자들의 돈을 은밀하게 빼앗는 범죄다.

⊙신뢰 깨지면 보험료 상승으로 보험가입자 손해

보험제도에서 유지돼야 할 신뢰관계가 감독기관이나 법에 의해서도 보호되지 못하고 훼손될 경우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며,누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험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지급돼야 할 보험금의 합을 통해서 계산된다. 지급된 보험금의 총액을 보험가입자가 부담한 보험료 총액으로 나누면 손해율이 된다.

그리고 보험료 총액에서 지급된 보험금 총액을 뺀 것이 사업비인데,이 사업비를 보험료 총액으로 나누면 사업비율이 된다.

손해율과 사업비율을 더한 것을 합산비율이라고 하며,이 비율이 1일 때 보험자는 이익도 손실도 없는 안정된 상황이 된다.

자동차보험이나 장기보험과 같은 손해보험의 경우 과거의 보험금 지급 결과를 반영해 보험료를 주기적으로 변경한다.

이때 손해율과 합산비율이 보험료 인상 또는 인하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만일 보험제도에서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도덕적 해이 때문에 정당한 보험금보다 더 많은 보험금이 지급됐다면,손해율이 높아진다.

보험자는 손해율의 상승 초기에 사업비 절감을 통해 합산비율이 1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합산비율이 1을 초과해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보험제도에서 유지돼야 할 신뢰관계가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흔들리고,보험사고에 따른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보험사기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 결과적으로 보험료가 인상되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은 고스란히 보험가입자의 추가 부담이 된다.

보험제도는 보험금 지급 약속의 이행,위험에 대한 충실한 고지,그리고 발생한 손실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으로 대표되는 '보험자와 보험가입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보험이라는 유용한 사회적 제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뒷받침할 신뢰관계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