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위안화 절상 놓고 양보없는 힘겨루기…日 제로금리로 엔高 방어
[Focus] "너죽고나살자"…세계는지금 환율전쟁 '포화속으로'…
"환율 정책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현실화하면 글로벌 경제회복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

글로벌 환율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위안화 가치를 사수하려는 중국과 이에 맞선 미국 및 일본 정부의 돈풀기(양적완화)가 뒤엉키며 글로벌 외환시장은 일촉즉발의 전장(戰場) 양상이다.

최근엔 브라질까지 나서 자국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에 물리는 세금을 두 배 올리는 조치까지 내놨다.

'나 먼저 살고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해관계국 끼리 뭉치는 '합종연횡(合從連衡)'이다.

이처럼 자국 보호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1930년대 대공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 경고음도 나온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는 "지난 3000년의 역사에서 외환시장이 이처럼 불안정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너 죽고 나 살자'…치킨게임에 세계 소용돌이

글로벌 환율전쟁의 불씨는 중국 위안화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 수출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수지 적자가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Global Imbalance)으로 나타나고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1450억달러.지난해 같은 기간(1230억달러)보다 220억달러가 늘었다.

싼 위안화에 따른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산 제품이 미국으로 밀려들어온 결과다.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올리라는(절상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지난 6월 고정환율제를 관리변동환율제로 바꿨다.

하지만 위안화 가치는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2% 정도만 뛰는 데 그쳤다.

국가 간 교역에서 환율은 아주 민감한 문제다. 환율이 높으면,다시 말해 통화 가치가 낮으면 수출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하다.

물론 환율이 높으면 수입 제품 가격은 비싸져 물가엔 부정적이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수출 확대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 위안화 환율을 심각하게 조작해왔다고 본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지금보다 40%는 더 비싸야 정상"이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참다못한 미국은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법안'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조작할 경우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미국은 또 외교적으로 위안화 절상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1조7000억달러의 자금을 시중에 풀었다.

중앙은행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발권력을 동원,유동성을 확대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고 경기도 부양하는 이른바 '양적완화' 조치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등 쌍둥이 적자를 방치했다가는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야당으로부터 정치적 압박까지 받고 있는 처지다.

여당인 민주당이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이기려면 경기회복의 증거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최근 브루킹스연구소에서의 연설에서 "외환시장에서 절상을 막으려는 해로운 동력이 진행되고 있다"며 중국을 다시 압박했다.

하지만 중국은 "위안화는 중국 내부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며 요지부동이다. 아시아 · 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원자바오 총리는 오히려 "위안화의 불안정은 중국은 물론 세계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유럽과도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고래 싸움에 새우등까지…'전쟁 불똥 피하자'

주요 2개국(G2) 간 신경전이 전면전으로 격화된 또다른 계기는 일본이다.

지난 5일 연 0.1%인 기준금리를 0~0.1%로 낮춘 게 신호탄이 됐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별 차이도 없는데 굳이 금리를 내린 것은 엔화 강세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상징적 조치로 풀이된다.

금리를 내리면 대체로 통화 가치는 떨어지게(환율은 오르게) 된다.

일본은행은 이와 함께 국채나 상장지수펀드(ETF),부동산투자신탁(리츠) 등을 구입할 수 있는 5조엔(약 68조원) 규모의 '자산매입기금'도 신설했다.

돈을 풀어 금리인하를 유도하고,엔화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수출을 살리겠다는 복안이다.

지난달 15일 외환시장에 개입,2조엔이나 풀어 달러를 사들였지만 효과가 미미하자 더 강력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사실상 마지막 카드를 사용한 셈으로 일본의 절박한 사정을 읽을 수 있다. 엔고는 수출 대국 일본의 최대 적이다.

위안화와 달러를 둘러싼 각국 입장에 따라 편이 갈라지고 있는 것도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호주가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미국을 두둔하고 나선 가운데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을 거들었다.

반면 중국과 경제협력 관계를 강화해온 브라질과 멕시코 등 친중 국가들은 중국 쪽에 줄을 섰다.

확전의 불똥은 브라질 인도 등 신흥국가 자금시장에도 튀었다. 선진국들이 환율방어를 위해 푼 돈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주는 국가를 찾아 몰려든 것이다.

브라질은 단기투기자금(핫머니)이 맘대로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금융거래세율을 높였다.

수비르 고칸 인도 중앙은행 부총재는 "국제 금융시장의 유동자금이 몰려와 위협이 된다"며 "대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인도로 유입된 197억달러 중 3분의 1이 글로벌 환율전쟁이 본격화한 지난 9월에 들어왔다.

인도 화폐인 루피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지난달에만 6% 이상 올랐다.

일본이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한 지난 5일 이후에는 태국 바트,인도네시아 루피아,싱가포르 달러,필리핀 페소,대만 달러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도 동반 강세를 나타냈다.

핫머니는 들어올 때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자산거품과 인플레이션 등을 유발하고,빠져나갈 때는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반갑지 않은 불청객으로 통한다.

⊙'뉴 플라자 합의' 나올까

국제 금융계에선 대타협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파국만은 막자는 목소리다.

대안으로 대두된 것이 새로운 '플라자합의'같은 것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플라자합의란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뤄진 다자 간 통화 합의를 말한다.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일본에 '엔화 절상'을 요구했고,일본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달러 대비 250엔에 달하던 엔화 가치는 이후 150엔대로 올라갔다.

25년 전 '플라자' 형태의 합의가 또 재연되기는 쉽지 않다. 달라진 중국의 위상 탓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절상하는 것이 맞다'는 EU의 요구에도 '간섭하지 마라'(원자바오 총리)며 대놓고 반박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중국은 또 세계 최대 미국 국채 보유국이다.

일본과 일전을 치렀던 댜오위다오(釣魚島 · 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에서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로 일본의 백기투항을 받아낸 것은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상징한다.

때문에 플라자합의보다 더 발전된 일종의 '뉴 플라자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총재는 지난 4일 "플라자합의보다 더 정교하고 현대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며 "미국도 다자 간 협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새로운 형태의 합의 도출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누구도 대공황 때와 같은 공멸은 원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에서다.

2003년 두바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각국이 "환율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두바이합의'같은 온건한 형태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대타협의 반전 무드를 제공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그래서다.

이관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