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한글이 반포된 지 564돌을 맞는 날이었다.
10월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혀 있는 '세종 28년 9월 상한'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정해진 것이다.
한글학회에서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10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잡고,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선 이날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우리말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대개는 외래어 남용이나 우리말 오용실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도 35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탓에 우리 말글살이에는 여전히 일본어투가 곳곳에,그리고 별 저항감 없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만땅,다스,기스,뗑깡,가라,곤색,사라,다대기 ….'
2005년 국가보훈처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 뿌리 뽑기 캠페인을 벌였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이 캠페인에 올라온 말들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누리꾼(네티즌)들은 언어생활에서 뿌리 뽑아야 할 일제 잔재로 '가득'이란 표현의 '만땅(또는 잇빠이)', 영어의 dozen(물건 열두 개를 묶어 세는 단위)을 가리키는 일본식 발음 '다스',상처나 흠집을 의미하는 '기스',간질을 의미하는 '뗑깡(뗑깡부리다)',속이 텅 비고 의미가 없다는 뜻의 '가라',어두운 남색을 가리키는 말 '곤색',접시를 나타내는 '사라',다진양념을 뜻하는 '다대기',깃을 의미하는 '에리'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가운데 다스나 기스,곤색,다대기 같은 말은 비록 순화한 말이 함께 제시되긴 했지만 우리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광범위하고 빈번하다.
특히 '다스'의 경우 이미 언중이 순화어는 거의 쓰지 않고,다스를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는 점을 고려해 아예 우리말화한 단어로 처리했다.
'만땅'은 일본에서 한자와 영어를 결합해 만든 이중국적의 단어이다.
'가득하다'라는 의미의 '滿'과 영어의 tank를 합친 것이다. 이 말이 다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탱크'의 첫음절만 남아 '만땅'으로 굳어졌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연료를 탱크 가득히 넣어 달라'는 뜻으로 "만땅이요"라고 하는 것보다 "가득이요"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때론 '잇빠이(一杯)'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일본어이고 우리말로 '가득(히)'이라고 하면 우리말도 살리고 뜻도 누구나 금세 알아듣는다.
'다스' 또는 '타스'라고 하는 말은 영어의 '더즌(dozen)'을 일본에서 자기네 식으로 부르는 말이다.
물건의 개수를 나타내는 단위 중에 12개 묶음을 뜻한다.
이 말은 '12개' 또는 '타(打)'로 순화됐지만 실생활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를 반영해 사전에서도 '다스'를 우리말처럼 쓸 수 있게 허용했다.
한자 '傷'에 해당하는 일본말이 '기스'다. 우리말의 상처,흠,흠집,결점,티 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 말도 워낙 많이 쓰여 사전에서 표제어로 올렸다.
그러나 우리말에 흠이나 티라는 좋은 말이 있으므로 굳이 '기스'를 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너 자꾸 뗑깡부릴래?"
어떤 사람이 행패를 부리거나 어거지를 쓸 때 또는 어린애가 심하게 투정을 부릴 때 이런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 말도 뜻을 알고 나면 함부로 쓰지 못할, 심한 욕이 되는 표현이다.
'뗑깡'은 간질병을 뜻하는 한자어 '전간(癲癎)'을 일본에서 읽는 말이다.
우리는 '생떼'로 순화했으며 그밖에 '행패,어거지,투정' 따위의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가라 수표'니 '가라로 썼다'라고 할 때의 '가라'는 우리말로 하면 '가짜,헛것'이다.
곤색의 '곤'은 한자 '紺'을 일본에서 읽은 말이며,우리 한자음은 '감'이다.
그러니 '곤색'은 우리말로는 '감색'이다.
다만 감색이라 할 때 '먹는 감'이 연상될 수도 있으므로 아예 진남색 또는 검남색이라 부르는 게 좋다.
음식을 주문할 때 무심코 '한 사라' '두 사라'라는 말을 쓰는데,이 말은 '한 접시' '두 접시'라고 하면 된다.
칼국수나 설렁탕 등을 먹을 때 맛을 내기 위해 넣는 것을 흔히 '다대기'라 하는데 이 역시 '다진양념'으로 순화했다.
'한글'에서 '한'의 뜻은 으뜸,우두머리,하나,크다,바르다,많다,밝다 등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한글은 오랫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에서 '언문(諺文)'이라 불려왔다.
훈민정음이 비로소 '한글'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개화기 때 우리말의 토대를 놓은 국어학자 주시경에 의해서다. 이 말에는 '한겨레의 글' '큰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10월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데 비해 북한에선 1월15일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는 남한에선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지만,북한에선 창제일을 기준으로 한글날을 정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10월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혀 있는 '세종 28년 9월 상한'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정해진 것이다.
한글학회에서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10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잡고,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선 이날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우리말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대개는 외래어 남용이나 우리말 오용실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도 35년에 걸친 일제 강점기 탓에 우리 말글살이에는 여전히 일본어투가 곳곳에,그리고 별 저항감 없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만땅,다스,기스,뗑깡,가라,곤색,사라,다대기 ….'
2005년 국가보훈처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 뿌리 뽑기 캠페인을 벌였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이 캠페인에 올라온 말들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말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누리꾼(네티즌)들은 언어생활에서 뿌리 뽑아야 할 일제 잔재로 '가득'이란 표현의 '만땅(또는 잇빠이)', 영어의 dozen(물건 열두 개를 묶어 세는 단위)을 가리키는 일본식 발음 '다스',상처나 흠집을 의미하는 '기스',간질을 의미하는 '뗑깡(뗑깡부리다)',속이 텅 비고 의미가 없다는 뜻의 '가라',어두운 남색을 가리키는 말 '곤색',접시를 나타내는 '사라',다진양념을 뜻하는 '다대기',깃을 의미하는 '에리'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가운데 다스나 기스,곤색,다대기 같은 말은 비록 순화한 말이 함께 제시되긴 했지만 우리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광범위하고 빈번하다.
특히 '다스'의 경우 이미 언중이 순화어는 거의 쓰지 않고,다스를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는 점을 고려해 아예 우리말화한 단어로 처리했다.
'만땅'은 일본에서 한자와 영어를 결합해 만든 이중국적의 단어이다.
'가득하다'라는 의미의 '滿'과 영어의 tank를 합친 것이다. 이 말이 다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탱크'의 첫음절만 남아 '만땅'으로 굳어졌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연료를 탱크 가득히 넣어 달라'는 뜻으로 "만땅이요"라고 하는 것보다 "가득이요"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때론 '잇빠이(一杯)'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일본어이고 우리말로 '가득(히)'이라고 하면 우리말도 살리고 뜻도 누구나 금세 알아듣는다.
'다스' 또는 '타스'라고 하는 말은 영어의 '더즌(dozen)'을 일본에서 자기네 식으로 부르는 말이다.
물건의 개수를 나타내는 단위 중에 12개 묶음을 뜻한다.
이 말은 '12개' 또는 '타(打)'로 순화됐지만 실생활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를 반영해 사전에서도 '다스'를 우리말처럼 쓸 수 있게 허용했다.
한자 '傷'에 해당하는 일본말이 '기스'다. 우리말의 상처,흠,흠집,결점,티 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 말도 워낙 많이 쓰여 사전에서 표제어로 올렸다.
그러나 우리말에 흠이나 티라는 좋은 말이 있으므로 굳이 '기스'를 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너 자꾸 뗑깡부릴래?"
어떤 사람이 행패를 부리거나 어거지를 쓸 때 또는 어린애가 심하게 투정을 부릴 때 이런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 말도 뜻을 알고 나면 함부로 쓰지 못할, 심한 욕이 되는 표현이다.
'뗑깡'은 간질병을 뜻하는 한자어 '전간(癲癎)'을 일본에서 읽는 말이다.
우리는 '생떼'로 순화했으며 그밖에 '행패,어거지,투정' 따위의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가라 수표'니 '가라로 썼다'라고 할 때의 '가라'는 우리말로 하면 '가짜,헛것'이다.
곤색의 '곤'은 한자 '紺'을 일본에서 읽은 말이며,우리 한자음은 '감'이다.
그러니 '곤색'은 우리말로는 '감색'이다.
다만 감색이라 할 때 '먹는 감'이 연상될 수도 있으므로 아예 진남색 또는 검남색이라 부르는 게 좋다.
음식을 주문할 때 무심코 '한 사라' '두 사라'라는 말을 쓰는데,이 말은 '한 접시' '두 접시'라고 하면 된다.
칼국수나 설렁탕 등을 먹을 때 맛을 내기 위해 넣는 것을 흔히 '다대기'라 하는데 이 역시 '다진양념'으로 순화했다.
'한글'에서 '한'의 뜻은 으뜸,우두머리,하나,크다,바르다,많다,밝다 등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한글은 오랫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에서 '언문(諺文)'이라 불려왔다.
훈민정음이 비로소 '한글'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개화기 때 우리말의 토대를 놓은 국어학자 주시경에 의해서다. 이 말에는 '한겨레의 글' '큰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10월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데 비해 북한에선 1월15일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는 남한에선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지만,북한에선 창제일을 기준으로 한글날을 정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