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비능률·낭비 심하고 지역유지 감투로 전락”

반 “대의 민주주의 훼손하고 위헌 소지도 있어"


지방행정체제개편법의 쟁점이자 핵심 사항이던 구의회 폐지 문제가 19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의 허태열 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지방행정체제개편법에서 구의회 폐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위는 구의회 폐지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앞으로 구성될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개편추진위에서 특별시 및 광역시 내 구의회 존폐 문제를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구의회 폐지 문제는 지방행정개편추진위가 개편안을 국회에 보고하는 2012년 6월 이후에 논의될 전망이다.

애초에 구의회 폐지 문제는 행정 비효율을 이유로 한나라당에서 강하게 주장한 바 있지만 야당은 반대 의사를 표시해 왔다.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는 특별시와 광역시의 구의회 폐지를 골자로 한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지난 4월 처리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5개월여 동안 이의 표결을 미뤄 오다가 이번에 여야가 각각 2명씩으로 구성된 '4인 협상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에서 슬그머니 다시 '없었던 일'로 하려다 부정적 여론이 나오자 아예 구의회 폐지 문제를 다음 국회로 넘기겠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여야의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면서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따져 당초 약속과는 달리 야합을 통해 구의회를 존치시키기로 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구의회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폐지 찬성 측, "비능률과 낭비가 심하고 지역유지들의 감투로 전락했다"

당초 구의회 폐지 논의가 시작된 것은 행정 비능률과 낭비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실제 1000여명에 달하는 구의원 유지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데다 구의원 자리가 지역유지들의 감투나 친목회 내지는 이권 챙기기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역 이기주의적 사업 진행 등으로 자치구마다 사업이 중복되는 등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적잖았다.

구의원직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다 연간 수천만원을 받는 유급제로 바뀌면서 지역 발전에 봉사한다는 당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권한을 남용해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사건이 빈발한 점도 폐지론에 당위성을 제공했다.

기초자치단체와 일부 광역 의원들 역시 구의회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계열 부산진구청장(부산시 구청장 · 군수 협의회장)은 "광역시에서는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의 업무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고 의원들의 자질 문제도 있었다"며 "광역의원 수를 늘려 기초의원의 일을 겸임하도록 하고, 기초자치단체 예산 심의는 한시적 주민심의기구를 구성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의원 선거 때에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구의원이 누구인지 거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투표하고 있어 주민의 대표라는 본래의 의미도 상당히 퇴색됐다는 지적도 있다.

⊙ 폐지 반대 측, "대의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데다 위헌 소지도 있다"

구의회를 폐지할 경우 대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만큼 보다 신중한 검토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로 당사자인 구의원들은 물론 야당 측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발표한 '자치구의회 폐지에 관한 행정상 쟁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자치구의회 폐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최종 결론을 내기에 앞서 행정 효율성과 더불어 민주성 측면에서 보다 치밀하고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보고서는 자치구의회 폐지시 행정 효율성 측면에선 의회 운영경비 등 월 500여억원의 관련 예산 절감 효과가 있고 지방공무원의 인력 규모 감축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효율성과 달리 구의회 대신 설치될 구정위원회가 구의원을 대신할 만큼 주민대표성을 가졌는지는 의문이며 구청장에 대해 효율적인 견제와 감시가 가능할지도 회의적이라며 신중히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법해석상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자치법상 자치구는 존치하면서 구의회만 폐지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는 헌법 111조 제1항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의회 폐지 문제는 지역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려는 노력과 함께 헌법체제상 위헌적 요소를 철저히 검증한 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구의회 문제는 모든 지방의회에 공통된 것이다

구의원을 없앨 것이냐의 문제는 구의원만이 아니라 지방자치 전체의 맥락에서 이를 검토해야 한다.

구의원 폐지를 주장하는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들이 많다.

이들이 제기하는 구의원을 둘러싼 문제점은 사실 기초나 광역 의원은 물론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들까지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권 챙기기나 비능률, 낭비, 권한 남용 등은 모든 종류의 선출직 의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이며 근본적으로 지방자치나 민주주의제도를 채택하는 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구의회 문제는 사실 지방자치를 채택한 이상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이런 이유만으로 유독 구의회만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다만 결과적으로 구의회 폐지에 반대한다는 결론은 같지만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경우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자신들의 공천권 행사 등 영향력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입장에선 차기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구청장인 만큼 구청과 견제 관계인 구의회를 유지하면서 구의원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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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9월 7일자 보도기사

여야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 처리와 관련, 교섭단체별 2명씩 '4인 협상위원회'를 구성해 수정안을 마련하고 오는 16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특히 여야 원내지도부가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 당초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를 통과한 구의회 폐지안을 원점으로 돌리는 쪽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종 조율 결과가 주목된다.

한나라당 이군현, 민주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법의 9월 본회의 처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법사위에선 이미 활동이 끝난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의 의견을 받아 부분 수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법사위는 특위가 지난 4월 구의회 폐지를 골자로 하는 특별법을 통과시킨 지 4개월여 만에 법안을 상정했으며

수정안 논의를 위해 한나라당 허태열 권경석, 민주당 전병헌 조영택 의원 등 여야 의원 4명이 참석하는 협의체인 '4인 협상위'를 가동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당 내에서도 구의회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고 이 조항을 그대로 두고는 법안 통과가 난망해 폐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쪽으로 양당이 협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고,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반대하는 조항은 다 빼주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