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위해서라면 사생활까지 파는 천박한 '과장 TV' 자체가 문제
[Focus] 루저, 된장녀에 이어 이번엔 '명품녀' 파문…선정적 방송 어디까지
지난 7일 20대 여성 김모씨가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걸치고 있는 것만 4억원대"라고 자랑삼아 털어놓은 게 사회를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다.

'4억 명품녀' 사건은 국회에서까지 논란이 됐으며 탈세 여부,김씨와 해당 케이블방송 간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방송사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실을 과장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방송사 측은 김씨의 말이 거짓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명품녀 사건은 인기를 위해서라면 사생활이라도 파는 우리 사회의 코미디 같은 일그러진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루저'나 '된장녀' 파문을 일으키고, 도박이나 병역기피 혐의자를 여전히 방송에 출연시키는 선정적인 미디어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도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 된장녀,악녀에서 이제 '명품녀'까지

부모를 잘 만나 부유한 집안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20대 젊은 여성들.

'된장녀','악녀' 등으로 불리는 여성들을 다룬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급기야 '명품녀'사건이 터졌다.

김씨는 자신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작가가 써준 대본대로 얘기했을 뿐"이라며 "단 한번의 방송으로 인생이 망가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방송사 측은 김씨는 녹화에서 사전 질문지에서 오간 내용보다 훨씬 많은 얘기들을 스스로 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선 김씨의 발언을 둘러싸고 공방이 오간다.

아무 직업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호화판 소비를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많은 가운데 부모한테 받은 돈이든, 자기가 번 돈이든 자기 돈 자기가 쓰는 게 뭐가 비난받을 일이냐는 의견도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는 김씨가 명품을 구입한 돈이 부모가 준 것인 만큼 불법 증여인지 확인해서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 네티즌은 "무직자가 최고가 명품을 구입하고 모두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구입하고 생활한다는데 이건 분명 불법증여라 생각된다"며 "김씨 부모의 소득 출처에 대한 강력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는 글을 올렸다.

⊙ 선정적 미디어와 물질 만능주의의 합작품

명품녀 사건은 사실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 △인기를 위해서라면 개인 사생활 공개도 서슴지 않는 그릇된 가치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는 선정적 방송사의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남자 키가 180㎝ 이하면 루저(패배자)"라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 '루저 논란'을 일으켰던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는데 또다시 '명품녀' 논란이 불거진 것은 우선 일부 방송사의 선정성 때문이다.

프로그램 출연자의 발언을 사회적으로 이슈화시켜 시청률을 높여보자는 일종의 '노이즈(소음)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이번 명품녀 사건에서도 김씨와 해당 방송사 간 진실 공방보다 방송을 통해 자극적인 거짓 사실이 전달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김씨가 설사 과장을 했다고 해도 이를 검증하지 못한 채 방송을 내보낸 방송사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정보방송학과)는

"제작진이 방송 내용을 과장하거나 조작했다면 더 심각한 문제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제작진으로선 방송전에 출연자 발언의 사실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야 했다"며

"프로그램을 급하고 쉽게 만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부정적인 반향을 일으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방송을 내보낸 방송 제작진에 주된 책임이 있으며, 그렇게 말썽을 일으키고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방송심의 잣대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물질만능주의도 명품녀 사건을 일으킨 공범이다.

요즘 방송계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일단 '뜨는' 게, 떠서 일확천금을 얻는 게 지상 과제다.

일부 방송 프로그램은 그렇게 번 돈으로 명품을 사들이고 고급차를 모는 게 인생의 꿈이라는 가치관을 퍼뜨린다.

⊙ 사회의 연예화와 '닷컴 문화'의 가벼움

방송 프로그램이 점점 선정적이 돼가면서 프라이버시가 상품화되는 것도 우려스되는 현상이다.

방송 출연자의 사생활이 공개적으로 상품화돼 팔린다.

출연자나 방송사는 일부러 논란거리를 만들어 상품의 가치를 높인다.

연예인들은 공공연히 사생활을 들춰내 가면서 인기를 유지한다. 방송사는 화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끄집어내고 벗겨내 연예화한다.

이 같은 방송의 '연예 만능주의'는 사회의 연예화를 초래하며 '명품녀 논란'이라는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인터넷,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해 정보가 빛의 속도로 퍼져가는 닷컴 시대에 연예인들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의 그릇된 우상으로 부상한다.

사회는 점점 더 가벼워져 간다.

진지한 고민이나 토론보다는 웃고 즐기거나 욕설을 퍼붓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에서도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모두가 돈이 되는 하나의 유행 트렌드만을 좇아가고 있다.

성영신 고려대 교수(심리학과)는 "요즘 케이블 방송들이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 갈수록 자극적인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혜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인턴(한국외대 4년) asdestin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