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늘 '고주망태'인 사람을 '모주망태'라 한다
'오월 농부 ○○ 신선.'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도 물러나고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

우리 속담에 있는 이 말은 딱 이맘때 쓰는 표현이다. ○○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이 말이 좀 낯선 이들에게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 한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에 들어갈 말은 '팔월'이다.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은 여름내 농사지으면 8월에 편한 신세가 된다는 뜻으로,수고하면 이후에 편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예전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8월(물론 음력 8월을 뜻한다)은 '수확'을 나타내는 의미 있는 달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윗날만 같아라.'

역시 결실의 계절 8월을 나타내는 속담이다.

한가윗날이 든 달은 백곡이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지낸 데서,잘 먹고 잘 입고 편히 살기를 바라는 말이다.

이번 주엔 우리 민족의 대표적 명절인 추석이 들어 있다. 음력으로 치면 8월 보름날이다.

보통 '대보름' 또는 '대보름날'이라 하면 설 지나 첫 보름날,즉 정월 대보름(음력 1월15일)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지만 '팔월대보름'이라 하여 우리 조상들은 추석을 설에 버금가는 명절로 지냈다.

추석 명절은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 시대에 궁중에서 추석을 앞두고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옷감을 짜는 일)을 했는데,그 많고 적음을 견주어 진 쪽에서 음식을 내고 춤과 노래 및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그래서 추석을 가배일,가배절이라고도 한다.

민족의 큰 명절인 만큼 그 밖에도 추석을 뜻하는 말들이 많다.

중추절 또는 한가위,한가윗날도 추석을 달리 부르는 대표적인 말이다.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의 옛말이다.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중추절'이란 음력 8월에 있는 명절이란 뜻이다.

여기서 중추(仲秋)란 '가을이 한창인 때'란 뜻으로,예로부터 음력 8월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추석 차례 상 음식으로는 뭐니뭐니 해도 '전'을 빼놓을 수 없다.

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이 '전'이다.

재료에 따라 굴전,동태전,새우전,버섯전,호박전,파전,부추전,녹두전,김치전,감자전 등 이름도 부지기수이다. '전(煎)'은 물론 한자어다.

본래 우리 고유어는 '저냐'이다.

한자어인 전에 밀려 요즘 저냐란 말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어원적으로 보면 저냐가 앞선 말이다.

이번 추석엔 한자어인 '전'보다 고유어인 '저냐'를 좀 더 많이 써서 우리말 살리기에 일조하는 것도 명절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다.

추석 즈음에 나오는 대표적인 햇과일은 역시 '밤'이다.

그런데 간혹 밤 한 송이에 밤알이 두 톨 들어 있는 게 있다. 이를 '쌍동밤'이라 하는데,달리 '쪽밤'이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우리 표준어에서는 '쪽밤'은 버리고 '쌍동밤'만을 취했다. 북한에서는 이를 쪽밤이라 한다.

그러니 남한의 쌍동밤이나 북한의 쪽밤이나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어규범에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살림살이가 많이 넉넉해진 요즘은 명절이라 해서 따로 옷을 해 입는 게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예전에는 명절을 맞아 새로 옷을 사거나 만들어 입는 즐거움이 컸다.

추석날에 차려입는 새 옷이나 신발 따위를 추석빔이라 한다.

'빔'은 명절이나 잔치 때 새 옷을 차려 입는 것,또는 그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명절에 따로 입는 새 옷을 '명절빔'이라 하고,좀 더 세분화해 때마다 생일빔(생일에 새로 사거나 만들어주는 옷이나 신발 따위를 이르는 말),추석빔,설빔,단오빔,혼인빔 식으로 불렀다.

명절 때 고향에서 옛 친구들이라도 만나게 되면 편한 마음에 자칫 과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고주망태가 됐다"고 한다.

이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상태'를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다.

이에 비해 비슷한 말로 '모주망태'라고 있는데,이는 '술을 늘 대중없이 많이 마시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모주꾼'이라고도 한다. 이때의 '모주(母酒)'는 한자어로써 '약주를 뜨고 난 찌끼술'을 가리킨다.

따라서 고주망태와 모주망태는 형태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말이므로 구별해 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