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고비용 정치 풍토상 정상적 의정활동 쉽지 않아"

반 "반납해도 시원치 않은데 세비 인상 말도 안돼"

최근 박희태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세비 인상을 거론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의장은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참석차 캐나다와 미국을 순방하던 이달 초 뉴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외환위기 당시 의원들의 세비를 깎은 뒤 그동안 한번도 세비 인상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지난 13년간 동결됐던 국회의원 세비를 이제 원상회복시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장관급 예우를 해 주도록 규정이 돼 있지만, 현재 의원들이 받는 세비는 차관보보다 낮고 실 · 국장급에 근접하는 수준"이라며 "실태가 그렇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세비는 연 1억1800여만원으로 1억~1억1000만원을 받는 차관보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차관(연 1억2000여만원)보다는 적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평생 120만원의 연금을 받게 됐는데 이것도 모자라 세비까지 올리려느냐"며 비판의 글을 올리고 있다.

국회는 지난 2월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이 연금 형태로 매달 120만원을 지급받도록 한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비판 여론이 일자 의원연금 제도를 없애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현재의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고비용 정치는 불가피하다"

국회의원들이 심심치 않게 세비 인상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현재 수준의 세비로는 정상적인 의정활동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특히 지역구 관리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하다 못해 우편물 발송에도 워낙 많은 사람에게 보내다 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든다는 얘기다.

여기에 국회의원을 보는 이중적인 사회의 시선도 이들의 씀씀이를 크게 만드는 요소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국회의원들의 세비 인상 등에 대해 대부분 여론이 극히 부정적이지만 막상 자신의 경조사 등에 국회의원이 오게 될 경우 적지 않은 경조비를 기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국회의원들은 경조사에라도 갈라치면 부의금이나 축의금도 일반인보다 상당히 많은 금액을 내야 하는 게 상례처럼 돼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회의원이 째째하게 이 정도밖에 안 냈다"는 비난의 화살이 바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우리의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과 관련된 부정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법인과 단체의 경우 정당 또는 정치인에게 일절 정치자금을 보낼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연간 1억5000만원이 한도인 후원회 모금으로 버텨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은 늘 돈이 부족한 상태가 되고 관련 비리가 종종 터지는 것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구조적인 원인과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 반대 측, "세비를 반납해야 할 판에 인상은 말도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가 열리는 기간에도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제대로 의정활동은 하지 않고 밥먹듯 의사당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은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비등한 와중에 의원 세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13년간 세비가 동결됐다는 박 의장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국회의원의 세비는 외환위기 당시 6820만원이었다가 2004년 1억90만원, 2007년 1억670만원, 2008년 1억1300만원으로 꾸준히 올랐고 2009년과 2010년에만 동결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간 1억원 이상의 세비에다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세비를 더 올려달라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는 것이냐는 비판이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개인적으로 세비 인상은 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펴고 있는데, 사회 지도층이라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받는 세비를 올리자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국민과 고통을 함께해야 하는 정치인이 그런 말을 올리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도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의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한 발언이겠지만 최근 헌정회법 개정 논란 등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정서가 차갑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논평을 냈다.

⊙ 현 상황에서 세비 인상은 설득력 갖기 어려워

국회의원들의 실제 활동하면서 쓰는 돈이 세비에 비해 턱 없이 많은 현실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정치문화나 정치자금법을 탓하기 전에 얼마나 씀씀이를 줄이려고 스스로 노력했는지부터 되돌아 봐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실제로는 국회의원 세비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올라왔는데도 13년간 동결됐다는 국회의장의 발언은 사실과도 다른 것으로 밝혀져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은 국민이 일정 기간 국민을 대신해 일하도록 권한을 위임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국회의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얘긴데 실제로는 국민 위에 군림하고 마치 특권층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각종 특권은 행정부의 전횡에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인정하는 것이지 그들의 주인인 국민의 머리 위에 올라앉으라고 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 상황에서 의원 세비 인상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또 의원에 대한 예우는 필요하지만 한번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연금을 받는 것 역시 문제가 있는 만큼 차제에 이 문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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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9월6일,8일자 보도기사

박희태 국회의장은 6일 "지난 13년간 동결됐던 국회의원의 세비를 이제 원상회복시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참석차 캐나다와 미국을 순방 중인 박 의장은 이날 뉴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외환위기 당시 의원들의 세비를 깎은 뒤 그동안 한번도 세비 인상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의장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장관급 예우를 해 주도록 규정이 돼 있지만, 현재 의원들이 받는 세비는 차관보보다 낮고 실 · 국장급에 근접하는 수준"이라며 "실태가 그렇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8일 박 의장의 국회의원 세비 인상 발언에 대해 "개인적으로 올리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안 대변인은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서민은 아직 경제 회복의 온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과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