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갓길에는 장갑,신발,음료수 병,과일 껍질 등이 있다.

그러나 갓길에는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버린 물건들 옆에는,바로 몇 분 전까지 인간처럼 붉고 뜨거운 피를 가졌던 하나의 생명이 걸레처럼 나뒹굴고 있다.

그것은 건너편 숲의 옹달샘으로 가고 싶었던 토끼였고,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싶었던 수달이었다.

'인간'이라는 포유동물의 빠른 이동을 위해 고안된 도로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생명들의 종과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 실상은 밝혀지지 않거나 은폐되고 있고 도로는 야생의 서식지를 침탈하며 계속 확장되고 있다. "

야생동물 교통사고(로드 킬)를 조명한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인간만을 위한 길 위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감독 황윤은 인간도 '어느 날 그 길에서' 무엇인가에 로드 킬을 당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에만 2677마리의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로드 킬을 당하는 동물들의 수가 증가한 속사정에는 자연을 향한 우리들의 개발의식이 한 몫했다.

개발은 동물의 서식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도로나 인공 건물이 들어서면 동물들의 서식지는 파괴된다.

생활영역이 좁아진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거나 물을 마시기가 어렵게 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너게 된다.

정일근 시인의 '로드 킬'은 이러한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사람이 만든 길이 착한 생명을 죽인다. 로드 킬.사람이 만든 길이 사람을 죽인다. 로드 킬.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의 길이 직선으로 달려가고 있다. '

또한 포유류의 야생동물들은 대부분 야행성이다.

그런데 사방을 환하게 밝히는 가로등이나 자동차의 불빛은 이들의 밤을 침범해 동물들의 시간감각을 어지럽힌다.

특히 동물들은 야간에 고속으로 달려오는 자동차 불빛을 받으면 피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붙는 습성이 있어 사고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로드 킬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최근에는 전국 곳곳에 '생태통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도로 때문에 끊어진 이동로를 동물들에게 돌려준다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동물 입장에선 육교나 터널 모양의 인공적 이동로가 자연 상태보다 좋을 리 만무하다.

한 지방자치단체는 1㎞도 되지 않는 거리에 2개의 대형 생태통로를 만들어 예산 낭비 지적을 받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에서는 '생태통로 한쪽이 급경사로 만들어져 동물들의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동물들이 이동통로로 사용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동통로가 아니라 죽음의 길'이라며 부실조사 의혹을 제기했다.

우리 땅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도로는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들이 이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길을 내는 것이 인간에게는 소통일지 몰라도 동물들에게는 단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권기선 생글기자 (충북 매괴고 2년) sharp_ros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