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학자금 대출제한 대상 30개 부실대학 명단 첫 공개
[Focus] 대학 구조조정 급물살…'무늬만 대학' 솎아내나
부실대학들이 구조조정 한파에 떨고 있다.

교육당국이 구조조정을 위한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갈수록 학생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등록금으로 근근이 버텨온 '한계 대학'들이 벼랑끝까지 내몰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공개한 부실대학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교육여건이 엉망이었다.

교과부는 이번 기회에 해묵은 과제인 부실 대학 퇴출작업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어서 대학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해당 대학들은 '올 것이 왔다'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명단 공개로 구조조정 압박

교과부는 지난 7일 전국 4년제 대학 및 전문대 345개교를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해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전임 교원확보율,재정건전성이 크게 떨어지는 '부실대학' 30개교를 정부 학자금 대출제한 대상으로 분류하고 명단을 공개했다.

교육당국이 부실대학의 명단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대학은 내년 1학기 신입생부터 등록금 대출을 제한받게 된다.

'제한대출'그룹 24개교와 '최소대출'그룹 6개교를 지정했다.

제한대출 그룹에는 광신대 남부대를 비롯한 4년제 13개교와 극동정보대 김해대 등 전문대 11개교가 포함됐다.

건동대 탐라대 등 4년제 2곳과 경북과학대 벽성대 부산예술대 제주산업정보대 등 전문대 4개교는 '최소대출'그룹으로 분류됐다.

제한대출 그룹에 속하는 학교의 학자금 대출한도는 등록금의 70%까지이며,최소대출 그룹 6개교는 등록금의 30%까지다.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면 신입생들이 입학을 꺼려 학생 모집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교과부가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8일)를 하루 앞두고 부실대학의 명단을 공개한 것은 그만큼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고 볼 수 있다.

수험생들에게 '이런 대학은 피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다. 정부발 대학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분위기는 교과부 수장들의 발언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이주호 교과부 장관(당시 장관 내정자 신분)은 '대학 구조조정이 부진하다'는 국회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지자 "(대출제한)대학 명단 공개가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동근 교과부1차관도 지난 7일 브리핑을 통해 "한계 대학이 학자금 대출을 연명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비자인 학생에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무늬만 대학 수두룩

학자금 대출제한 대상에 포함된 30개 대학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무늬만 대학'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교육여건이 열악하다.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전임 교원 확보율,재정건전성 등이 크게 떨어져 제대로 된 고등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곳들이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4년제 대학 광신대는 지난해 입시에서 160명(정원 내)을 뽑을 계획이었지만 지원자가 103명에 그쳤다.

그나마 합격생 중 69명만 등록,신입생 충원율이 43.1%(4년제 대학 평균 94.5%)에 불과했다.

유학을 떠난 사람이나 군입대자 등을 제외한 취업률은 26.3%.2008년엔 전체 재적학생(재학생+휴학생) 523명 중 53명(10.1%)이 학교를 그만뒀다.

이에 따라 전체 편제정원 580명 중 재학생은 413명(재학생 충원율)에 불과하다.

경북 안동의 건동대(4년제)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모집정원은 390명이었지만 입학생은 119명(신입생 충원율 30.5%)이었다.

지난해 재적학생의 31.2%가 자퇴 등을 통해 학교를 떠났다.

이 대학의 총정원은 1560명이지만 실제 학교 다니는 학생은 362명(재학생 충원율 23.2%)이다.

교수진도 턱없이 모자랐다.

전북 김제에 있는 벽성대학(전문대)의 전임 교원은 23명으로 편제 정원을 기준으로 할 때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가 87명에 달한다.

2008년 기준 이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457만원으로 전문대 평균치(713만원)에 크게 못 미친다.

부산경상대도 학생 1명에게 돌아가는 교육비(2008년)가 488만원에 불과했다.

전북 김제의 한 전문대는 학생 1인당 교육비로 한 해 457만원을 썼다.

학생 1명당 받은 등록금(522만원)보다 적다.

⊙ 학생수 줄어 통폐합 불가피

늘어난 대학에 비해 학생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여서 이대로 두면 '학생모집 대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 연령에 해당하는 만 18세 인구수는 지난해 65만4964명에서 내년에는 69만519명으로 늘어나다가 그 후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2009년 현재 일반대 및 전문대 신입생 정원인 59만2207명이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019년에는 만 18세 인구수(56만8368명)가 대학 신입생 정원보다 2만3000여명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만 18세 인구수는 더욱 줄어 '학생 모시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분석됐다.

1999년 158개였던 4년제 일반 대학수는 지난해 177개로 19개 늘었다.

지금도 일부 지방 대학은 심각한 학생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충남에 있는 S대의 경우 재학생 126명 가운데 24명(19%)이 중국이나 네팔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방인들이다.

이 대학은 지난해 135명을 뽑으려고 했지만 지원자가 67명에 그쳐 수준이 떨어지는 외국인 학생들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경북의 K대도 마찬가지다.

2008년 390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지만 합격자 중 280명이 무더기로 등록을 포기했다.

대학 측은 61명을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로 선발했다.

하지만 1학년 171명 중 54명(31.6%)이 1년도 안돼 자퇴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한계 대학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대학 간 인수 · 합병을 통한 통폐합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내 지방대 수는 교육 당국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며 "부실 대학 설립자가 빨리 손을 털고 나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제 등을 통해 자발적인 청산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