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기준은 국민들의 공감으로 결정
[Cover Story]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질은 전문성과 최소한의 도덕성
'도덕성이냐,전문성이냐.'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할 때면 으레 충돌하는 기준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인 만큼 도덕성이 우선이라는 주장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한 것이다.

지난주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서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도덕성과 전문성 중 어느 것을 우선할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공직 후보자의 전문성 검증에 우선 순위를 둔 반면 홍준표 최고위원은 도덕성 검증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국회의 인사청문회 문화가 언제부턴가 후보자의 전문성과 업무 추진 능력을 검증하기보다는 사람의 모든 이력을 너무 낱낱이 추적하고 흠집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거 지향적 청문회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며 "앞으로는 능력 비전 등을 알아보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생산적 인사청문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반면 홍 최고위원은 "인사청문회의 본래 취지는 첫째가 도덕성 검증이고,두 번째가 전문성,정책능력 검증"이라며 "이는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반대의견을 폈다.

그는 "장관과 총리가 과정의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분이 되면 국민들이 따르겠나"라고 지적했다.

⊙지도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해야

지도자의 최우선 덕목으로 도덕성을 강조하는 측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즐겨 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에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에선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 등의 전통이 강했다.

이런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귀족 등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확고했는데,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이 13명이나 전사했다고 한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근현대에서도 이어졌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명이 전사한 게 대표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비춰보면 병역기피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등 자기만 잘살기 위해 법까지 어기는 사람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노블레스(귀족)만 있고 오블리주(의무)가 없는 국가는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지도자의 도덕성과 관련해선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쓰던 글귀도 주목할 만하다.

'비록 눈이 하얗게 내린 들판을 가더라도 발걸음을 흐트러뜨리지 말아라.오늘 내가 가는 길은 바로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므로' 도덕성을 갖춘 삶의 자세를 눈길 위의 발걸음에 비유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작은 허물로 큰 재능을 버리지 않는다

도덕성이 중요하지만,전문성(실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조선의 3대와 4대 왕인 태종과 세종은 작은 허물이나 과실 때문에 큰 재능이 사장되지 않게 하는 인사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세종시대에 '풍평지치(豊平之治 · 모두 풍요로워지는 통치)'가 이뤄진 것도 이런 인사원칙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태종과 세종은 '인간의 완전성'을 전제하지 않고,한 인간이 '형성돼 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인재관을 갖고 있었다.

인재는 필요할 때 사용하고 버리는 개념이 아니라,관직을 통해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태종과 세종은 대신들의 작은 허물에 대해 상당히 너그러웠다. 작은 허물을 탓하여 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조선 초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변계량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형인 변중량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카 딸과 결혼했지만,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와 같은 정치적 노선을 걸어 한때 변씨 가문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변계량 자신도 서너 번이나 결혼해 전처의 아버지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종은 "비록 성인이라도 작은 허물은 있거늘,만일 그를 파직하면 누가 그의 임무를 감당하겠는가"라며 변계량을 비호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해 변계량은 학문의 최고 벼슬이라 할 만한 대제학을 20년이나 지내며 수많은 외교문서 작성에 능력을 발휘했고 집현전 설치를 건의해 실현시켰다.

대제학은 글쓰기의 저울이라는 의미로 문형(文衡)이라고 불리며 영의정이 부럽지 않을 만큼 영예로운 직책이었다.

세종도 당시 좌의정이었던 황희가 '태석균 사건'(태석균이란 사람이 투옥되자 황희가 사사로이 사헌부에 감형을 부탁한 사건)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있을 때,"대신은 가볍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 군주는 선인도 악인도 될 줄 알아야 한다

지도자,특히 군주는 도덕적 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는 이색 주장도 있다.

근대 정치학의 초석을 놓은 고전으로 평가받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무슨 일에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스스로를 선한 인간으로만 내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악인들의 무리 속에서 파멸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필요에 따라서는 선인도 악인도 될 줄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가 상정한 이상적 군주상은 도덕군자와는 거리가 꽤나 먼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악을 위해서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현실 정치에 적합한 처방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란 본래 도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며,도덕에 연연하는 순간 침몰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그는 군주론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과 있어야 할 삶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까닭에,일어나야 할 당위만을 주시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를 보존하기보다는 오히려 파괴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도덕성과 전문성은 시대에 따라,통치자에 따라 그 중요성이 다르게 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전문성을 강조하는 통치자들의 주장도 면밀히 살펴 보면 도덕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덕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다만 어디까지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볼 것인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고위공직자 또는 국회의원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해 볼 때 최소의 기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