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이후 최고의 성장률··· 실업률도 주요국 최저

글로벌 경기회복세 둔화·임시직 급증 등 복병도
[Global Issue] '제조업 강국' 독일, 남유럽發 위기에도 승승장구
유럽 경제의 기관차 독일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다.

올해 초 촉발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로 유럽 전체가 흔들리고,최근에는 중국의 성장 둔화,미국의 더블 딥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독일의 성장은 거침없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독일의 전 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2%로 1987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독일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유럽연합(EU)의 전분기 대비 지난 2분기 GDP 증가율은 4년 만에 최대치인 1.0%를 나타냈다.

다른 경제지표도 주요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지난 6월 수출은 전월 대비 29% 증가하며 20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실업자 수도 전달보다 2만명 감소한 321만명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가 크게 나아지자 최근 독일 연방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4%에서 2배 이상 높은 3%로 상향 조정했다.

"이제 독일 경제에서 '위기'라는 단어는 폐기처분해도 무난할 듯(한델스블라트)"

"올해 독일 산업경기가 통일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것(독일산업연합회)"이라는 장밋빛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 지속적인 제조업 육성,경제 부활 원동력
[Global Issue] '제조업 강국' 독일, 남유럽發 위기에도 승승장구
독일은 지난해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6년간 수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2000년대 연평균 수출 증가율이 13%로 미국,일본은 물론 한국(11.9%)보다도 높다.

올 2분기 독일의 경제 성장도 유로화 약세로 독일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와 기계류 수출이 호황을 이룬 영향이 컸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이후 독일이 제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이 경제 부활의 원동력이 됐다고 진단한다.

유럽피언 커미션에 따르면 독일은 2008년 설비투자 규모가 2000년 대비 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일본,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은 제조업 비중을 줄이고 서비스산업 투자를 늘린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 최대 재생에너지 연구소인 ZSW의 프리트요프 슈타이스 부소장은 "독일은 경쟁국들이 '제조업의 시대가 갔다'며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때 제조업 르네상스를 위한 로드맵을 짰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내수 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독일은 오히려 수출 제조업 지원을 위해 38.7%에 이르던 기업세(법인세+영업세) 부담을 2008년 29.8%까지 낮췄다.

중소기업이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를 유예해 주고 고용보험료,퇴직연금 등의 납부 부담도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기업지원책을 쏟아냈다.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

지난해 독일 정부와 재계가 R&D에 쏟아부은 돈은 680억유로로 사상 최대치였다.

괴츠 지거르트 독일 연방경제기술부 국장은 "외부의 충격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 진짜 위기의 시작이라는 인식 때문"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독일의 산업구조를 미래산업으로 재편하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 글로벌 위기 속 유럽 최저 실업률

7월 말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약 7.5%로 평균 10%,최대 20%에 육박하는 유럽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10.3%로 프랑스(23.3%)와 영국(19.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남유럽 위기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5%나 뒷걸음질쳤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전년 대비 0.2%포인트 오른 데 그치자 유럽 경제학자들은 '라인강의 기적이 재현됐다'며 찬사를 보냈다.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 연구원은 "독일의 노동시장 안정은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많은 나라에서 실업률이 급상승했고 일부에서는 두 배로 높아지기도 했으나 독일은 이제 거의 위기 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2008년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섰을 때 독일기업들은 해고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고 정부가 임금의 상당 부분을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50만 명의 일자리를 지키고 대량해고 사태를 막았다.

글로벌 수요침체 속에 핵심 기술인력을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의 수요가 급증하자 즉각 생산을 확대해 수출에 나설 수 있었다.

크리스티안 아펠트 헤센주립은행 선임연구원은 "근로시간,근로형태를 유연화하는 다양한 근로 방식을 도입한 데다 3년간 지급되던 실업수당을 1년으로 축소하는 등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부터 강도 높은 실업률 대책을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실업률이 급격히 떨어진 데는 최근 5년간 연평균 0.2%에 불과한 낮은 임금상승률도 한몫했다.

기업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기업들이 인적 구조조정을 최소화했고,노동조합은 그대신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다.

브르제스키 연구원은 "앞으로도 성공 스토리가 한동안 계속될 것같다"며 "독일 노동시장은 대량실업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아니라 통일 이후 최고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내다봤다.

⊙ 글로벌 경기 회복,저임금 노동 구조가 복병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하반기에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독일의 저임금 구조 등을 감안할 때 독일 경제 순항을 낙관하기만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독일의 낮은 실업률은 정부가 저임금 임시직을 늘린 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독일 근로자들 5명 가운데 1명은 시간당 9유로가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3분의1가량이 임시직이거나 박봉을 받고 있다.

임금 수준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독일 근로자 1인당 연간 순수입은 2004년 1만6471유로에서 감소세를 지속,1만5815유로까지 떨어졌다.

저임금 근로자들이 많아지면서 독일 정부가 2005년 이후 쏟아부은 보조금만 500억유로에 달한다.

독일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1998년 전체의 16%에서 21.6%까지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보다 높을 뿐 아니라 미국이 24.5%에 머물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향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도 독일 경제의 위험 요인이다.

최근 유로화 가치가 오르면서 독일의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고,유럽 전역의 긴축정책으로 당분간 유럽 내수 소비도 늘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특히 독일의 수출 붐이 '중국발 기적'으로 불릴 만큼 특정지역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둔화되면 독일의 경제적 약진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유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