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30년전 백골된 111세 노인, 굶어죽는 아기들··· 일본 '무연사회'의 그늘


#1.일본 도쿄의 최고령 남성으로 등록된 111세 노인이 실제로는 30년 전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도쿄 아다치구에 살고 있는 것으로 구청에 등록됐던 가토 소겐씨는 1899년 7월생으로 살아있었다면 만 111세였다.

하지만 가토씨는 지난달 28일 자택 1층 방에서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운 채 백골로 변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도쿄 경찰청이 가토씨가 정말 생존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구청의 요청에 따라 가토씨의 집을 수색한 뒤 드러난 결과였다.

구청 측이 가토씨가 숨진 것 아니냐고 의문을 품은 것은 지난 2월부터였다.

담당 공무원이 수차례 집에 찾아가 가토씨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가족은 "2층에 있는데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수십년간 병에 걸린 적도 없다"며 계속 면담을 거절했다.

경찰은 가토씨의 부인이 2004년 8월에 숨진 이후 가토씨 명의의 은행계좌로 유족공제연금 945만엔(약 1억2800만원)이 지급된 점을 확인하고 가족이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사망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서 100세 이상 고령자 중 20여명의 행방이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4일 보도했다.

행방불명자들은 현재 주소지에 살고 있지 않거나 숨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동안 이들에게 '장수 축하장'과 선물을 보내거나 연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정부의 무성의한 행정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자 이날 각 지자체에 100세 이상 고령자의 생존 여부를 철저히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2."육아가 귀찮았다. 1주일이 지나면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일본 오사카의 한 아파트에서 세 살배기 딸과 갓 돌을 넘긴 아들을 한 달 넘게 방치해 굶어 죽게 만든 23세의 엄마 시모무라 사나에가 1일 경찰에 체포된 뒤 진술한 내용이다.

지난달 30일 "이웃집에서 알 수 없는 악취가 난다"는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뒤 현관문 열쇠를 부수고 들어간 경찰은 방 안에서 알몸으로 숨져 있는 어린 남매를 발견했다.

이미 죽은 지 한 달이 넘어 보였으며,아이들의 위장 속에선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집안은 온통 쓰레기와 오물투성이였으며 음식은 물론 마실 물도 없었다.

작년 5월 이혼한 뒤 혼자 아이를 키우던 시모무라는 올 1월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2~3일씩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다.

또 6월 말 마지막으로 집을 나선 뒤엔 호스트바에 출입하며 한번도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시모무라는 인터넷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에 남매와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착한 엄마'를 가장해 더욱 충격을 줬다.

아파트 주민들은 3월 말부터 이 집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터폰으로 '엄마,엄마'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오사카시에서 운영하는 아동학대상담소에 세 차례 신고했다.

하지만 상담소 관계자는 4~5차례 집을 방문해 초인종을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자 그냥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일본 주요 지자체에 접수된 아동학대 상담건수는 4만4210건으로 전년보다 1546건이나 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990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19년 만에 40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일본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들이 최근 일본의 고질적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무연사회(無緣社會)'의 쓸쓸한 단면을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무연사회라는 말은 지난 1월 일본 NHK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유명해졌다.

무연사회는 혈연 · 지연 등을 통한 전통적인 개인 간의 조력 시스템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타인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일본의 인구 구성을 보면 무연사회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05년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4900만세대 가운데 독신세대가 1446만세대에 달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세대 수(1465만세대)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또 일본의 30대 남성 미혼율은 지난 30년간 14%에서 47%로,여성은 8%에서 32%로 뛰어올랐다.

남성의 경우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가정생활에 대한 부담감이 늘면서,여성은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기혼여성으로서의 얽매인 삶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미뤄왔다.

하지만 이 같은 젊은 '나홀로족'의 증가는 결국 '고독사(孤獨死) 예비군' 증가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무연사회 악순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주간 다이아몬드지는 무연사회의 원인으로

△핵가족화에 따라 고령자와의 동거가 많이 줄었다는 점 △독신의 증가 △아이를 가지려 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직장에서의 비정규직과 대량 해고의 증가,또 그에 따른 빈곤 문제 등을 꼽았다.

수십년 동안 일본 사회가 겪었던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1인 가구 확대가 더해져 무연사회와 고독사라는 새로운 문제로 변이한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점점 고립돼 가며 나타나는 문제는 '고독사'다.

NHK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한 해 3만2000명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한다.

고독사의 대부분은 사망 후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되고,사망자는 가족 · 친척들과 연락을 끊은 상태로 오랫동안 지낸 까닭에 망자를 거둘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고독사가 증가하다 보니 최근에는 홀로 죽은 사람의 시신이 있는 집안을 대신 수습하고 청소해주는 '유품정리회사'가 전국에 수백 개 생겨났다.

유품정리업체 키파즈의 요시다 다이치 사장은 "우리 직원에게 열쇠만 주고 가버리는 유족들도 있고,같은 건물에 살면서 부모의 죽음을 한 달이나 몰랐던 아들도 있었다"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휴대폰도 유선전화도 없는 상태로 '도시의 무인도' 같은 환경에서 살았던 고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연간 1500건의 고독사를 처리하고 있다.

무연사회의 폐해는 일본 내 아동학대 증가와도 직결돼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08년 4월부터 작년 3월까지 발생한 67건의 아동학대 사건을 조사한 결과 해당 아동의 친부모 97명의 연령대는 '20~24세'가 21명으로 가장 많았고,'25~29세'가 20명,'19세 이하'가 6명으로 나타나 10~20대가 과반수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아동학대 및 유기의 이유에 대해 "육아에 지쳐서""계속 울어 짜증나서" 등으로 진술했다.

아리마 가쓰코 일본 아동학대방지협회 이사는 "출산율 감소의 영향으로 청년들이 자녀교육을 보는 기회가 줄었다. 사춘기 이전부터 출산 및 육아에 대해 교육하지 않으면 학대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