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를 적절하게 수용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입법이 놓칠 수 있는 민생 관련 정책들을 보완할 수도 있다.
문제는 악용 내지는 남용될 때다.
법안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여야 간 내지는 국회와 정부 간 소모적인 갈등이 벌어질 수 있고 전체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큰 해악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거나 일단 폐기된 의원입법안 중에는 위헌적인 내용을 담고 있거나 한때의 대중적 인기에 편승하기 위한 저질 법안들이 수두룩하다.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법안 내용을 깊이 들여다 보면 법체계가 작동하는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발의됐던 '군복무자 취업시 3%의 가산점을 주자'는 법안은 1999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결정된 사안이었고 미취학 아동 사교육비에 대한 공제 범위를 넓혀 초 · 중 · 고교 학생의 사교육비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하도록 한 법안은 사실상 사교육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원들의 이중적 행태
최근 발의되는 의원 입법안들 중 가장 비판을 받는 것들은 비과세 · 세금 감면 관련 법안들이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글로벌 이슈로 부각된 상황임에도 의원들은 무차별적으로 국가 재정건전성을 갉아먹는 법안들을 쏟아냈다.
18대 국회 들어 지난 2년간 의원들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은 무려 200여건으로 사흘에 한 건꼴로 발의됐다.
누구누구에게는 이런저런 조건으로 세금을 깎아주자는 것이다.
세금을 덜 내도 되는 당사자야 좋겠지만 결국 전체 국민들에게는 피해를 입힌다.
물론 특정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때 비과세 · 세금 감면과 같은 세제 지원 방안이 효과적인 지원 수단으로 활용될 수는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의 수단으로 비과세 · 감면이 과도하게 이용되면서 재정건전성을 해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책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세감면 법안이 정치권의 즉흥적 포퓰리즘의 표출로 나오는 것은 다반사고,한번 만들어진 임시 세금 감면은 일몰 기한이 계속 연장되면서 상시 보조금으로 성격이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
정치권은 겉으로 '재정건전성'을 외치고 있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면 재정에 부담을 주는 각종 법안들을 쏟아내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
때문에 나라의 세금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들은 회기 때만 되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평소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던 의원들도 자신이 발의한 세금 감면 법안은 무조건 필요하다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아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말리고 반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수많은 감세 법안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것들도 제법 된다.
지난 4월 임시국회 기획재정위에 상정됐던 20여건의 비과세 · 감면 관련 법안들 가운데 △지방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 연장 △택시연료(LPG) 개별소비세 및 교육세 면제 연장 △금융중심지 창업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연간 수조원대의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법안들은 우리 학생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독자적인 경제주체가 되면 아마 국회의원을 찾아가 내가 내는 세금을 이런저런 이유로 깎아달라거나 내가 사는 동네에 먼저 무언가를 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내놓을지 모른다.
만일 국회의원이 '그것은 사리에 맞지 않으니 안 됩니다'라고 답한다면 아마 우리들은 다음 선거에서는 당신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며 협박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도 알고 보면 표의 노예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수준을 따라가게 된다. 사실 포퓰리즘의 원천은 국민들의 민도이다.
어떻든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의원들의 입법은 선거철이 되면 최고조에 달한다.
모 의원은 지난 6 · 2 지방선거 직전에 '가족 친화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에 대해 인증 유효기간까지 법인세의 50%를 감면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성의 노동을 지원하고 출산 장려라는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법안 시행에 따른 국세 감면 규모를 들여다보면 실로 엄청나다.
올해부터 2014년까지 최소한 2조2568억원의 법인세수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종합 부동산세가 가장 많이 걷혔던 2007년 한 해 징수액 2조4000억원에 맞먹는 규모다.
해당 의원 입장에선 그 법안의 필요성이 컸을지 모르겠지만 법안 시행으로 비게 되는 국고를 어떤 방식으로 채워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손원익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과세 · 감면 관련 의원입법 대다수가 선심성 법안으로 파악된다"며 "조세형평성 차원에서도 비과세 · 감면 법안을 합리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금이 지역구 표심과 연결되다 보니 너도나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될 때까지 계속 제출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18대에 조특법 개정안만 6건을 제출한 김우남 민주당 의원(제주시 을)은 골프장,과학단지,선박 등 제주지역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는 내용의 조특법을 해마다 발의하고 있다.
2008,2009년에 낸 조특법이 대안폐기되자 올해 3월엔 제주도 내 기업에 10%의 법인세를 일괄 적용하고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등의 감세기한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