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10명 서명만 있으면 법안 발의

국회의원 통해 간접 입법하는 정부도 문제

[Cover Story] 국회의원은 法만들기 너무 간단해
우리가 실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법은 모두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을 대신해 입법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들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가 국회에 법을 발의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선 국회,즉 국회의원과 정부 두 주체가 법을 발의할 수 있다.

이런 권리를 입법권이라고 부른다. 실제 대한민국 헌법 40조에 따르면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돼있다.

동시에 헌법 제52조는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해 정부의 입법권도 보장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해당 법률의 집행을 담당하게 될 소관부처가 입법을 추진한다.

예컨대 증세와 감세 등 세금과 관련된 법안은 기획재정부,환경 보호를 위한 법안은 환경부가 법안을 준비한다.

정부는 입법안을 제출하면서 법령안의 입법취지와 주요 내용을 언론 또는 관보 등을 통해 20일 이상 공고해야 한다.

법안의 제 · 개정은 물론 폐지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 사전에 공청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할 때는 협의해야 할 상대도 많다.

특히 국가경제를 비롯한 서민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관계 법안은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경제관계 부처의 장 · 차관 회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법안은 국회로 넘어가기 전에 법제처를 통해 법률의 자구 · 형식 · 체계를 심사한다.

즉 법안의 내용이 법체계에 맞는지를 따져보고 사용된 단어들까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법제처는 또 내용의 타당성 등 실질적인 사항도 심사하여 원안을 수정 · 보완한다.

이에 비해 국회의원의 발의 절차는 훨씬 간단하다.

의원은 발의할 법안에 자신을 포함한 10명 이상의 서명만 있으면 입법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때문에 사안이 급한 경우 정부가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최고 이자율을 제한하는 이자제한법을 없애는 과정에서 폐지법률안을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해 하루 만에 국회를 통과시켰다.

정부 혹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우선 소관 상임 위원회에 회부된다.

상임위원회는 본회의에 앞서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의 분야별 '분과위원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관련된 법안은 기획재정위원회가 담당하며 환경 · 노동 관련 법안은 환경노동위원회가 처리한다.

모든 국회의원은 2개 이상의 상임위에서 활동할 수 있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제사법 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사위 또한 법무부와 감사원 등의 부처와 관련된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지만 동시에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에 대해 체계와 자구 등을 심사한다는 점에서 정부 내의 법제처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다만 법사위가 본회의로 가기 전의 마지막 길목 역할을 하다보니 여 · 야 의원들이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서도 법사위에서 또다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국회 본회의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한 안건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본회의에서 법안에 대한 표결을 하기 전에는 국회의원 20명 이상으로 구성된 정당,즉 교섭단체의 대표연설 및 대정부 질문 등 국정전반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서 역할도 한다.

지난 6월29일 세종시수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할 때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5년 만에 본회의 연설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안이 확정되는 과정은 이처럼 복잡하다.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열리며,표결을 위해선 재적의원의 과반수가 참석해야 한다.

현재 국회의원은 총 291명이다.

7월28일 재 · 보궐 선거를 하게 되면 8명의 공석이 채워져 299명이 된다.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은 표결을 통해 출석의원의 절반 이상 찬성을 얻어야 국회를 최종 통과할 수 있다.

문제는 개별 법안들이 막판에 무더기 통과되거나 충분한 검증 없이 확정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박신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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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부 감시에 중점둬야··· 입법만능주의는 잘못"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

[Cover Story] 국회의원은 法만들기 너무 간단해
국회의원에 무려 7번이나 당선된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사진 · 비례대표)은 18대 들어 단 한 건의 법안도 발의하지 않았다.

18대뿐 아니라 11,12,14,15,17대에서도 한 건도 내지 않았다.

오로지 16대인 2000년에 발의한 '표준시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 한 건뿐이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일본 표준시인 동경 13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쓰도록 한 것을 대한제국 때와 같은 동경 127도 30분으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로,이마저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다.

조 의원은 이에 대해 "가급적 입법을 자제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성과주의에 함몰돼 필요없는 법안도 너무 많이 발의한다는 것이 조 의원의 주장이다.

조 의원은 "지금 우리나라는 법이 너무 많아서 시행되지 않는 법도 많고 내용을 보면 불요불급한 법도 많다"며 "국회의 역할이 입법에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철저히 심의하고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되는지,견제 · 감시 기능도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회의원들이 특정 이익집단이나 지역의 이해를 대변하는 법안을 신중하지 못하게 발의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입법 실적을 내겠다는 한건주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이 꼽은 '입법만능주의'의 문제점으로 우선 국회의원들이 특정 이익집단이나 지역구의 이해를 대변해 돈 나올 곳은 생각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법을 만들고 있는 행태를 짚었다.

그는 "법안을 시행하려면 예산부수 법안을 마련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한데 그것도 없이 10명 서명만 받아서 발의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여당 의원을 통해 발의하는 최근 행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여당 의원이 정부 법안을 대신 발의하면 신속한 이점도 있지만 제대로 부처 협의를 거치지 않고 통과돼 훗날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책으로 추진해도 될 것을 법률 제정으로 하려는 '입법 만능주의'가 국회에 만연하는 점도 꼬집었다.

법은 최소한으로 제정하고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

조 의원은 "정책은 언제든지 수정하고 보완 · 변경할 수 있지만 일단 법률로 제정하면 다시 개정하기도 어렵고,결국 시행되지 않는 등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입법만능주의의 해법으로 '원칙 준수'를 강조했다.

축조심의와 상임위 개회 등 국회법에 명시된 국회의 권한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해결된다는 얘기다.

그는 "각 상임위에서 법안을 너무 소홀하게 심의하고 있다"며 "대체토론과 공청회는 물론 법 조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는 축조심의도 반드시 하도록 명시돼 있는데 관행상 생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지혜 한국경제신문 기자 spop@hankyung.com